<월별 독서기록>
또다시 새 달력을 두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름부터 독서 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여유도 없었지만 핑계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고 싶진 않다. 좋아서 남기는 글들에 혼자 부담을 추가하고 싶지 않음은 자발적인 이기심의 호사 정도로 생각하려 한다. 조금 더 봐줘서, 하나하나 기록하기보다 2016년 하반기에는 이런 책들을 읽었다고 흔적만 일단 남겨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소개들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과 고은의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가 그것이다. 보통 책들을 보면 책날개에 작가 소개가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의 소개는 정말 단순하다. "태어났고, 정착했다." 세상에는 말도 많고, 글도 많고, 정보도 많다.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없는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요즘엔 식당을 가려고 하면 30초 안에 그 지역 맛집을 검색하고, 주요 메뉴 사진을 보고,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면서 직원의 친절도까지 미리 알아버리는 세상이다. 더 많은 정보는 더 높은 만족감을 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가끔은, 모른 채로 들어간 곳에서 뜻밖의 만족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게 삶이 아닌가?
때로는 극도로 절제된 정보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쩌다가 체코에서 프랑스로? 그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고 그 후엔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체코가 아니라 체코 슬로바키아 때네? 75년은 어떤 해였지?' 생각이 태어난다. 물론 이 작가들은 워낙 유명 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들에 대해 알고 있으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꼭 명성 때문은 아니지만, 문득 이들이 부러워진다. 짧은 두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인생을 남들에게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여 년의 시인 생활, 그리고 시집 여럿. 이보다 더 시인다운 시인의 삶이 있을까?
나의 2016년을 두 문장으로 말해 보자면, '몸은 여유로웠지만 마음은 가장 바쁜' 해였다. 아직 새해 다짐을 상세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나 있다면 '조금 간단해 지자'다. 다양한 의미를 담은 문장이다.
처음 읽은 책도 있고, 여러 번 읽었지만 또 읽어본 책도 있다. 사서 본 책도 있고, 빌려 본 책도 있다. 줄을 쳐가며 읽은 책도 있고, 서점에서 어쩌다 다 읽어버린 책도 있다. 읽다 말았거나 다 읽었지만 별로여서 사진조차 남기지 않은 책들이 있다. 이러니 저러니, 많지도 적지도 않게 책을 읽어 갔던 해였다. 이 중 따로 글들을 써보려는 책들이 몇몇 있다. 미래의 내가 곧 시간을 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