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별 독서기록 >
어느 새 2016년도 한 달이 지났다. 1월 1일 "지금이 내 인생의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다"라며 하루하루 마음을 다해 살고자 다짐했는데, 벌써 2월이다. 올해의 결심에도 역시나 "더 많은 책을 읽기"가 포함됐다. 세상엔 좋은 책들이 너무나도 많다. 읽고 싶은 책들, 읽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들도, 읽고 싶어질 책들도 너무 많다.
매 달 새롭게 읽거나 다시 읽은 책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읽은 책들을 정리하면서 지난 한 달도 돌아보고, 또 다가올 새 달을 기대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2016년의 시작인 1월, 욕심 만큼은 읽지 못했지만 반성과 함께 다음 달을 기약해 본다.
#짧은 감상
(맨 위 왼쪽부터 차례대로)
1. 더블린 사람들 (원제 : Dubliners),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5, 337p
아일랜드의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열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조이스는 이 책에서 섬세함, 복잡함, 비판, 풍자, 상징 등 소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천재적으로 담아냈다. 읽는 내내 섬세한 서술과 매끄러운 묘사,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상징으로 즐거웠고, 사람 사는 건 언제 어디서나 비슷하단 느낌을 받아 유쾌했다. "모더니즘 운동에 기여하고 현대 영어 단편소설 발전의 역사에서 혁명을 이뤘다"는 평이 이 책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당시 아일랜드와 유럽의 역사와 사회를 알고 나서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책 뒤편에 실린 해설의 도움을 받았다)
2.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돌베개, 2015, 428p
이 시대의 어른이 다양한 고전과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인간'과 '사회', '삶'에 대한 이야기.
3. 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수전 손택&조너던 콧(Susan Sontag& Jonathan Cott), 마음산책, 2015, 216p
시대의 지성인 수전 손택. 작가이자 사람 '수전 손택'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놀랍도록 똑똑하고, 명쾌하며 단단한 사람이다. 존경과 부러움을 느끼며, 다시금 꺼내 읽게 될 것 같다. (인터뷰에 흘러넘치는 이들의 지성에 매료되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수전 손택의 글들을 계속 읽고 있다. 그녀에 대해서, 그녀의 책들과 에세이들에 대해 조만간 정리해야겠다.
4. 타인의 고통 (원제 :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이후, 2004, 253p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녀와 같은 천재들, 지성인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지나쳤던 것, 멈추지 않았던 것, 다시 생각하지 않았던 것, 명쾌하게 파고들지 못한 것들을 날카롭고 정교하게 들추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준다.
5. 다시 태어나다 -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 수전 손택 지음, 데이비드 리프 엮음, 김선형 옮김, 이후, 2013, 409p
'일기'라는 가장 내밀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놀랍게도 작가, 소설가, 사회 운동가, 철학자,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 아내, 교수, 친구인 '수전 손택'을 한 번에 알아갈 수 있는 종합세트다.
6. 세상 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사계절, 2013, 308p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사회는 어떤 곳일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독서 목록에 새로운 책들을 한 가득 추가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가장 좋은 독서는 다른 독서를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7. 세계의 명시, 바이런 外, 그림 조수진, 삼성 출판사, 2003, 224p
시공간을 넘어 가장 아름답게 울려오는 언어의 마술. 시가 있어 인간은 외로움을 견디고, 사랑할 수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책이라 그런지 번역이 더 말랑말랑하게 되어 있는 듯하다. (인터넷에 나오는 번역들을 보고 느꼈다.) 그래서 더 순수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8. The One Thing - 복잡한 것을 이기는 단순함의 힘 (원제 : The One Thing -The Surprisingly Simple Truth Behind Extraordinary Results), 게리 캘러(Gary W. Keller)&제이 파파산(Jay Papasan), 구세희 옮김, 비즈니스 북스, 2013, 280p
당신의 The One Thing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집중하고, 몰입해라. 그리고 당신의 The One Thing을 이뤄내라.
9.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천재 심리학자가 발견한 11가지 삶의 비밀 (원제 : (The) soul s code : in search of character and calling),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 주민아 옮김, 나무의 철학, 2013, 513p
개인적으로 나에게 끊임없이 명령을 내리고, 한없는 위로를 보내는 류의 책들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모두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면, 이 책처럼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오로지 과학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글을 이끌어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적이고 신화적이며 현실적이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책을 덮으면 하나의 질문만이 남게 된다. "그러니까 내 다이몬은 뭐지?"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10. 처절한 정원(Effroyables jardins), 미셸 깽(Michel Quint), 이인숙 옮김, 문학 세계사, 2002, 112p
영화 <타인의 삶>과 연관 지어 브런치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잔혹한 순간, 가장 따뜻한 것") 그만큼 짧지만 강렬한 책이었다. 해당 글에서는 이 책의 '인간애'적 측면에 집중했지만, 사실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더 넓고 깊다. 이 책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나아가 유럽과 세계에) 역사적 물음을 던지고 과거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이야기를 통해 만들었다. 문학이 가지는 힘이 이런 것이 아닐까.
독일 출판협회가 매년 시상하는 '독일출판협회 평화상 Friedenspreis des Deutschen Buchhandels'의 2003년 수상 연설에서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위의 책 <타인의 고통>에 "문학은 자유이다"(Literature Is Freedom)의 제목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 뒤)
"문학, 그것도 세계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 모두 좋은 책이기에 '이달의 책'과 같은 것을 선정하는 것이 의미 없고 웃기지만 '이번 달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정도를 꼽아보려고 한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 외국인 친구들은 대한민국의 나이 계산법을 굉장히 신기해했다. 1월 1일이 되면 대한민국의 전 국민은 동시에 한 살을 더 먹는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새해'는 '나이를 먹어간다'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더 알아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 지나쳤던 것,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 정말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의 책을 '타인의 고통'으로 꼽아본다.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넘어 '타인'에 대해 생각하고 인정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는, 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물음을 던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서는 독서를 낳는다. 1월이 끝난 지금, 나는 수전 손택의 다른 저작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책들, 국내 시집들, 신영복 교수님의 다른 책들, 막스 베버와 벤야민 그리고 율리히 벡의 책 같은 사회 과학 고전들, 그리고 역시나 철학에 관한 책들을 리스트에 추가 해 2월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