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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Jan 16. 2016

머리에서 발까지의 여행

이 시대의 어른, 신영복 교수의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처음처럼', '더불어 숲'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경제학자인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하고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 입문, 중국 고전강독 등을 강의한 그는 1998년 사면 복권됐다. 모 소주의 이름인 '처음처럼'의  원작자가 바로 그다.  이외에도 기업 광고나 건물 현판에서도 교수님의 글씨를 볼 수 있었다. 


신영복 교수님은 엄마가 평소 특히 존경하던 어른이었고, 조금  뜬금없지만 고향이 같은 밀양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열혈 팬인 엄마 덕분에 우리 집에 대부분의 저작들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대표작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아직 읽지 못했다. 사실 <담론>은 내가 몇 달 전부터 미루다 최근 읽고 있던 책이었다. <담론>은 신영복 교수가 성공회대에서 진행한 마지막 강의의 녹취록을 토대로 엮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며 마치 한 강 한 강 강의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부고가 더욱 안타깝다. 





 <담론>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이다.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그리고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대 사상가들의 사상, 저작, 일화 등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서는 신 교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신 교수는 맨 처음으로 '공부'에 대해 말한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고,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이다. 때문에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곧 공부가 된다. 공부는 대화이고, 곧 역사가 대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古典 공부를 한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이다. (19p)


그는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한다. 낡은 생각, 오래된 인식 틀을 깨는 '탈문맥'脫文脈이 창조적 실천으로의 공부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을 배운다. 또 하나의 여행인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있다. 발은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현실을 뜻한다. 공부한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면, 비로소 우리의 '여행'이 완성된다.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한다고 공부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로소 실천으로 이어지고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진정한 공부는 변화와 창조다. (19-20p)


신영복 교수는 '사람'을 가장 중요히 여긴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끝'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토대이다. 우리는 사람을 해치고  무시하면서 절망과 역경을 극복하지 않고  '사람'을 키워 내면서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는 강의를 통해 석과 불식石果不食, 즉 욕망과 소유의 거품을 청산하고 우리 삶의 근본을 지탱하는 뿌리들을 튼튼히 하여 사람을 키워나가는 희망의 언어를 말하고자 한다. (422-423p)


<담론>은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책이다. 때문에 곁에 두고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 해 읽어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올 책이다. 책에 담긴 많은 내용에 대해  꼼꼼히 설명하고  분석해 보려는 글은 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그럴 능력도 없고, 그것이 책의 목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신 교수님은 매 시간 담담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머리'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마음'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발'로써 실천하는 것은 이제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이 시대의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이런 자석 두 개가 붙어있다. <담론>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한정 부록으로 얻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있는 두 자석



'춘풍 추상' 春風秋霜.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에서 나온 성어로,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는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한테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 매섭게 엄격하지는 않나 생각해 본다.  


노자는 강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첫째는 '수선리 만물水善利萬物',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부쟁不爭', 다투지 않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싫어하는 곳은 낮고 소외된 곳이다. 물은 높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없고,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133p) 나를 추상처럼 엄격히 돌아보되, 타인을 춘풍처럼 너그럽게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곧 소외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른쪽 자석에는 작게 '함께 맞는 비'라고 적혀 있다. 혼자 맞는 비는 외롭고 춥지만, 함께 맞는 비는 덜 외롭다 못해  신나기까지 한다. 영화 '클래식'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뛰어가던 주인공들은 그 어떤 맑은 날의 연인보다 즐거워 보였다. 꼭 사랑하는 남녀여서가 아니다. '함께'의 힘은 위대하다. '함께'는 지혜고(17p) 그 지혜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크게만 보였던 어려움과 절망이 함께 일 때 작아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함께'하는 삶이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소개합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처음에는 별리別離의 아픔을 달래는 글귀로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강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 읽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한 학기 동안 수많은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담론> 426 - 427p


신영복 교수님과는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앞으로도 그분의 삶과 글, 그림, 강의들은 많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삶에 꽃처럼 피어 날 것이다.









*참고 : <담론>, 신영복, 돌베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신영복 교수 별세", 연합뉴스 기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15/0200000000AKR20160115198452005.HTML?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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