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_레프 톨스토이 (문예출판사)

by 서리다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좁고 컴컴한 자루에 넣고 자꾸만 더 깊숙이 밀어대는데 자신은 중간에 걸려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끔찍한 상태는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루 속으로 완전히 떨어지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 p.85


뭔지 알 것 같아! 속으로 소리쳤다. 이반 일리치가 죽음으로 이끌리는 고통을 묘사한 대목이다. 나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고통을 이처럼 느꼈던 것 같다. 4년 전에 유방암 3기 선고를 받았다. 나와 암은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 20대에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 계약한 생명보험에 암 특약을 제외했었다. 40대에 여러 보험사들의 꼬임에 넘어가 암보험을 들어 놔서 다행이었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옆지기는 눈에 띄게 손을 떨었다. 나보다 충격이 더 컸나 보다. 1년이 채 되기 전에 지인이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그때 이것저것 검색해 보고 우리나라가 유방암 발병률이 제일 높고 동시에 유방암 치료가 세계 제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인도 수술 경과가 좋다. 그래서인지 난 당황스럽긴 했지만 옆지기보다는 덜 걱정한 것 같다. 병원에서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고 이것저것 검사 일정을 잡았다. 멍하니 그러세요~ 하며 있었다.

항암부터 들어갔다. 암덩어리와 전이된 부분을 최대한 줄이고 유방 전 절제술을 한단다. 그 당시에 통증은 없었다. 유방에 혹이 만져지는 정도뿐 아무 곳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멀쩡하던 몸이 항암 한 번에 무너졌다. 항암주사를 맞고 일주일이 지나자 증세가 나타난다. 바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 고통과 같은…그 당시 내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거대한 덤프트럭 아래 깔려 짓이겨지는 느낌이다'… 약 사나흘을 그렇게 고통을 겪고 나니 근육에 힘이 없다. 입은 써서 식욕은 떨어지고 시원한 것만 당긴다. 암은 차가운 걸 좋아한다고 찬 거 먹지 마라고 했는데 냉면, 냉모밀만 먹고 싶었다. 그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먹고 싶었다. (못 참고 몇 번 먹었다.) 보름이 지나고 머리 감다가 악! 소리를 질렀다. 머리카락이 손에 뽑히는 거다. 뽑힌다고 하는 게 맞나? 그냥 흘러내렸다. 젖은 채로 수건으로 감싸고 미용실에 갔다. 생각보다 밉지 않은 민둥머리의 두상을 보고 속으로 눈물 한 바가지 흘렸다. (난 겉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게 아마 유방암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히는 스타일이다) 잘 신던 신발이 끼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양발 엄지발톱이 들렸다. 계단은 숨이 차서 피하게 됐다.(어르신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3주마다 하는 8번의 항암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의 근육 상태로 돌려놓지 못했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이미 갱년기의 나이대에 들어와서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은 항암도 수술도 방사선 치료도 끝났고 정기적인 검사도 경과가 좋다. 5년이 지나야 완치 판정이 나는데 아직 1년이 남았다. 마음은 이미 완치되었다. 난 다행히 옆지기의 지극정성 간호 속에서 잘 견딜 수 있었다. 얼마 전 친정식구들과 식사 중에 옆지기는 그때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면서 성격이 이상해졌었다고 한다. 가만히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고생 많았어. 고마워.




이반 일리치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병과 죽음을 그저 타인의 죽음일 뿐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취급했다. 게라심이라는 농부만이 순수한 친절을 베풀었다. 그로 인해 신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인 괴로움과 외로움이 더 컸다. 그동안의 정상적이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삶은 모두 가짜로 여겨진다.


"죽음만이 진실이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 p.73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 p.87


"그 모든 것이 삶과 죽음을 가려버리는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똑똑히 보았다." — p.94




나는 한국의 의료기술을 믿고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옆지기의 애씀으로 육신의 고통만을 견디면 되었다. 물론 너무 아플 때는 아무도 이 고통을 이해 못 한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을 제외한 주변인들의(말 그대로 주변인이었다.) 무심함과 위선적인 말과 행동들로 외로움의 극치를 느끼고 동시에 육체적인 고통이 배가되었다. 이반 일리치와 나의 상황은 달랐지만 죽음 가까이(?) 가 본 유경험자로서 누구나 결국엔 죽는다, 남의 일이 아니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실천적인 부분은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 일단은 이렇게 글로 다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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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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