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순위
아이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짓는 굉장히 큰 요소 중 하나는 '출생순위'다.
보통 첫째 딸은 양보를 잘하고, 잘 참고, 무덤덤하고, 자기 몫은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첫째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뭔가 모를 '눌린' 감정도 생긴다. 오죽하면 'K-장녀'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둘째가 태어날 때부터 첫째가 소외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둘째를 한 번 칭찬하면, 첫째는 두 번 칭찬했다. 그래서인지 첫째도 동생을 시샘하기보다는, 자기가 받은 사랑을 둘째에게 흘려보내는 느낌이다.
문제는 셋째가 생기면서다.
가운데 낀 둘째가 자신이 사랑받을 위치를 찾느라 바쁘다. 원래 응가만 해도 칭찬을 받는 위치에 있었는데 이제 그 자리는 셋째가 물려받았다. 그림을 그려도, 운동을 해도, 청소를 해도 언니만큼 따라가긴 힘들고, 기어가기만 해도 귀여운 막내를 따라 퇴화된(?) 행동을 보이면 따라오는 건 언니의 '구박' 뿐. 그래서인지 둘째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장모님이 오셨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외할머니는 둘째 하늘이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으신다. 하늘이가 칭찬받을 작은 행동 하나만 해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우리 하늘이가 따봉이야!" 하고 외쳐 주신다. 첫째 빛이의 표정이 굳는다.
'눈치백단' 외할머니는 하늘이가 없을 때 빛이를 따로 불러다가 오른손 엄지손가락 하나를 치켜올리며 말씀하신다. "하늘이는 따봉인데", 그리고는 나머지 왼손 엄지까지 치켜올리며, "우리 빛이는 따따봉이야!"
참 하나하나 맞춰주기 힘들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빛이가 막내를 안고 있는 내게 말한다.
"아빠, 내가 별이 한 번만 안고 타면 안 돼?"
"응, 안 돼."
"왜애, 조심해서 잘 안고 타도 안 돼?"
"어, 조심해서 잘 안고 타도 안 돼."
"딱 한 번마안~"
"그럼 딱 한 번마안~ 안 돼."
딸의 부탁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지만 안전에 대해서는 단호박 아빠다. 그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오늘따라 계속 졸라대는 딸의 성가심에 철통방어가 뚫렸다. 사실 별이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던 건 안 비밀.
"까르르까르르."
언니에게 안겨 신세계를 맛본 별이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놀이기구에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많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생각 이상으로 무척이나 좋아한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괜히 막았나?'
별이가 신나서 자지러지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 하필 그 순간, 빛이의 몸이 뒤로 '쑤욱' 미끄러지며 빠진다.
'쿵.'
얼른 달려가 아이들을 확인했다. 별이는 떨어진 언니의 품에 안겨 여전히 생긋생긋 웃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빠르게 별이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조용히 있던 빛이가 세상 떠나가라 울기 시작한다.
"아파아아아아~"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다만 본인도 우긴 게 있어서인지 별이가 다쳤을까 봐 적잖이 놀랐었나 보다.
그네에서 떨어지면서도 끝까지 막내를 안고 있는 책임감, 동생이 멀쩡히 웃는 모습을 확인하고야 아픈 8살.
너도 첫째는 첫째구나.
빛이가 묻는다.
"아빠, 할머니가 나는 따따봉이고 하늘이는 따봉이래. 그럼 별이는 봉이야?"
그네에서 떨어져도 언니 품에 안겨 웃을 수 있는 거 보면 '봉'이 맞는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