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의미
'하아. 오늘은 진짜 운동 가기 싫다.'
매일 밤 똑같이 투덜대며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놀고, 밥하고, 먹이고, 씻기고, 아이들 재울 준비까지 마치면 이미 체력은 바닥이다.
터벅, 터벅.
운동하러 가는 길은 뭔가 활기찬 느낌이어야 할 것 같지만, 오늘도 패잔병처럼 무거운 몸뚱어리를 어렵사리 끌고 간다. 스스로에게 가끔 묻는다.
'이렇게 하기 싫은데 왜 하지?'
살기 위한 발버둥 같다. 육아의 기본은 체력이니까.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 이상의 고차원적인 욕구를 생각하기 힘들듯, 체력이 바탕에 없으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기쁨을 맛볼 여유가 없다. 육아의 행복은 체력 위에 쌓는 거다.
체력이 없으면 몸이 아프고, 몸이 아프면 짜증이 난다. 그리고 그 짜증의 종착역은 아이들이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자녀에게 건강한 마음을 유산으로 남기는 중요한 열쇠다.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들용 요리도구를 사줬다. 손이 베이지 않는 칼부터 하트, 꽃, 별 등의 모양을 찍어낼 수 있는 틀, 흔히 감자칼이라 불리는 '필러'까지. 아이들의 요리 의지가 불타오른다.
"우리 가족이 먹을 샐러드를 만들 거야!"
첫 상대는 오이와 방울토마토. 8살 빛이가 필러로 오이 껍질을 벗겨내는 동안, 5살 하늘이는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썬다. 다 벗겨낸 오이는 1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썰어 하트나 꽃, 별 모양으로 찍어낸다.
"난 왜 계속 자르고, 찍고, 빼내고만 해?"
빛이가 손목을 움켜잡으며 묻는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네 사람 분량(하나씩 주워 먹는 돌배기 막내까지 하면 5인)을 만들다 보니 벌써 질린 듯하다. 엄마가 대답한다.
"원래 살면서 중요한 일은 다 반복적으로 하는 거야."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그의 저서 '나는 포기를 모른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복의 진짜 목적은 한층 더 강해지고, 견고한 기반을 다져 어리석고 안타까운 실수를 막는 데 있다. (중략) 스타들이 불 켜진 무대에서 우리를 사로잡고 열광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힘들고 귀찮은 일을 죽도록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귀찮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 육아가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도 훌륭하지만, '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반복'은 더욱 고귀하다.
운동 마치고 돌아오는 길.
생각만큼 아주 개운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운동 갈 때보다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도 살아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삶의 뿌듯함을 찾아가는 건 육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숙제다.
'귀찮다', '가기 싫다.'를 반복하며 운동을 다닌 지 2년이 넘었다. 아이들 속에서 떼어낸 매일의 30분, 그 짧은 시간이 쌓여 근육도 쌓였다. 매일 빠지지 않고 꾸준히 했더니, 체지방이 8킬로그램 빠졌다. 인바디에서 내겐 불가능할 줄 알았던 D형 그래프가 만들어졌다.
육아는 여전히 힘들지만, 몸이 가벼워지고 근육이 붙으니 조금은 더 수월하다. 아이들의 소중한 말을 주워 담을 약간의 여유도 생긴다. 반복되는 지루함에서 얻은 체력 위에 오늘 선물로 받은 '삶의 의미'를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