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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라는 단어의 정의

어둠 속에서

by 윤슬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잘 알려진 라틴어 '카르페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혹은 '오늘을 꽉 붙잡으라'는 이 명언을 가장 성실히 실천하는 건 아마 아이들일 것이다.


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노는 아이들에겐 하루가 저무는 게 너무나 싫다. 자려고 불을 끄려 하면 아이들은 절대 끄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 지나가는 오늘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매일 밤 잠을 자는 줄 알면서도 눈을 감는 게 어찌 그리 억울할까.


'피곤하면 알아서 잠들겠지' 하는 마음으로 불을 안 끄면 큰코다친다. 실제로 몇 번 시험해 보니 취침 시간이 최소 두세 시간은 늦어진다. 자정이 넘어도, 아이들은 감기는 눈을 부여잡고 버틴다.


불이 꺼진 세상에서도 즐거울 수 있음을 알려줘야 할 숙제가 생겼다.




"살아 있는 건가요?"


어둠과 함께 게임의 막이 오른다. 시작은 보통 '스무고개'다. 이제 불이 꺼져도 하루가 그리 시시하게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아이들도 잘 안다.


"움직이는 건가요?"

"아니요."


"먹는 건가요?"

"아니요."


"크기가 하늘이보다 큰가요?"

"아니요."


"다 아니네?"


문제를 낸 하늘이가 전부 '아니요'만 대답하는 게 조금 얄밉다. 이미 열여덟 번이나 질문했는데 별다른 단서를 못 찾았다. 간혹 5살 아이의 상상 속에만 사는 엉뚱한 답안도 나오기 때문에 이쯤 되면 의심을 살짝 품게 된다.


"하늘아, 이거 우리도 다 아는 거지? 그럼 힌트 좀 줘봐."

"알았어. 이거는 건물 같은 거야. 집이긴 집인데, 들어갈 수는 없어. 큰 구멍도 있고, 작은 구멍도 있어."


상상이 가는가. 집이긴 집인데 들어갈 수는 없고, 들어가지는 못 하는데 큰 구멍, 작은 구멍은 있다?


'꿈나라에서 본 요상한 건물인가?'


의심이 확신이 되어갈 무렵, 하늘이의 대답을 듣고 온 가족이 "와아!" 탄성을 지르며 껄껄대고 웃었다.




"정답은 거미줄이야!"




오늘 밤은 '끝말잇기'다.


"악보"

"보라색."

"색종이."


다음은 하늘이 차례다. 어둠 속에서 잠시 숨소리만 들리더니, 침묵을 깨고 아주 자신감에 찬 해맑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빛이와 엄마, 나 셋은 동시에 뒤집어졌다. 빛이가 말한다.


"하늘아, 단어로 해야지이~"

"단어가 뭔데?"


엇. 5살에게 단어나 명사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순간 고민하고 있는 나와 달리, 빛이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거."


8살 아이가 끝말잇기를 위한 '단어'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꽤나 그럴듯한 대답이 고슴도치 아빠의 귀엔 참 매력적으로 들린다.


'사랑, 행복, 기쁨 같은 단어는 어떻게 그릴 건데?'


이런 어리석은 질문은 무의미하다. 아이들은 저런 감정조차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니까. 어쨌든 5살 아이는 8살 언니의 설명을 곧바로 이해했다.


"아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거? 그럼 이오."

"이오가 뭐야?"


내 머릿속에 하늘이 생일이 25일이라 숫자를 나열해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하늘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오이 꺼꿀로. 이오는 그릴 수 있자나아. 오이를 그려서 이렇게 꺼꿀로 하면 되지이!"


모두가 또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묘하게 설득된다. 어떻게든 '끝말'을 이어가는 저 노력이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얘들아, 살다 보면 어둠이 찾아올 때도 있고,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도,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끝말을 이어갈 단어를 그려봐. 오이를 거꾸로 들듯, 세상을 뒤집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생의 게임을 즐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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