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도도 없이, 나는 바로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컨설팅 직군이었다.
이전 회사와는 모든 게 달랐다.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배정받은 층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책상은 정돈돼 있었고,
불은 켜져 있었지만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 회사의 사람들은 대부분 상주를 나가 있었다.
각자 프로젝트 현장으로 흩어지고,
사무실은 잠시 들르는 공간에 가까웠다.
입사 첫날,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 소개를 듣고
조직도를 설명받고
업무 흐름을 익히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없었다.
“오늘부터 프로젝트 들어가셔야 해요.”
그 말과 함께
프로젝트 계획서 한 부를 프린트해서 건네받았다.
그게 전부였다.
조직도도 몰랐다.
누가 팀장인지,
누가 PM인지,
이 회사에서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메일 주소는 생성됐고,
사내 메신저는 깔려 있었지만
어디에 말을 걸어야 할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프로젝트 계획서를 넘겼다.
문서는 친절하지 않았다.
이미 이 일을 오래 해온 사람들을 기준으로 작성된 문서였다.
배경 설명은 없었고,
약어는 당연하다는 듯 등장했고,
‘공유된 이해’를 전제로 한 문장들이 이어졌다.
나는 연필로 조용히 메모를 했다.
모르는 단어,
추측해야 하는 흐름,
이해되지 않는 역할들.
그 순간,
이전 회사가 떠올랐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누가 옆에 앉아 있었고,
점심시간이 있었고,
모르면 물어볼 사람이 눈에 보였다.
여기서는
혼자 알아서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게 바로 내가 선택한 세계라는 생각도 들었다.
컨설팅.
빠른 투입,
빠른 이해,
빠른 결과.
이곳에서는
‘천천히 배우는 사람’보다
‘바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입사 첫날,
나는 회사의 사람이기보다
프로젝트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직보다 과제가 먼저였고,
관계보다 결과가 앞서는 구조.
낯설었고,
조금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이 또렷해졌다.
나는 프로젝트 계획서를 덮고
노트북을 켰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아마 하나뿐일 것이다.
조용히,
빠르게,
증명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