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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Mar 19. 2016

미륵사지

彌勒寺址

당대 지역 패권을 다투던 동쪽의 신라와 서쪽의 백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된다. 역사는 신라의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백제의 역사와 문화는 우리 역사에 아주 중요한 족적을 남겨놓았다. 이렇게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신라에 황룡사가 있었다면 백제에는 미륵사가 있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사적 제150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역시 황룡사처럼 폐사지이다. 601년 백제 무왕 2년 창건된 미륵사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로 더욱 유명한 사찰이었고 폐사지에 남아있는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높이 14m의 사각형 다층석탑인데 동북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의 석탑이자 백제문화의 창조적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백제 무왕 600년 ~ 64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2009년 해체 수리중 639년 무왕 39년 건립되었다는 정확한 기록이 발견됐다. 지금 남아있는 석탑은 서탑으로 동일한 석탑이 동쪽에도 하나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7층 석탑 이였는데 현재는 서탑의 6층일 부분까지만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붕괴를 우려하여 콘크리트를 덧대는 무리한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그 훼손 정도가 심각했고 1998년 완전 해체 보수공사가 결정되어 20여 년째 진행 중이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파괴된 원형 그대로 부분 복원해야 한다. 파괴된 부분을 예측하여 완전한 형태로 복원해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과거 성급한 문화재 복원의 실패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복원되던 미륵사지 석탑이 빠른 시일 내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미륵사지는 익산의 풍요로운 평야지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산속 깊숙이 처박혀 있는 사찰과 달리 폐사지의 주출 돌만 보아도 담대하고 웅장한 느낌의 가람배치 자체가 어느 사찰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경주 황룡사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곳에 미륵사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정말 대단했을 거 같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역사가 승자 독식의 기록이기에 백제역사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미스터리이지만 미륵사지처럼 드문 드문 남아있는 문화유적들은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단면들을 살짝살짝 내비쳐 주는 것만 같다.

[ 미륵사지 웹 버전 사진 더 보기 ]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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