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山寺
금산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태조 왕건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였다. 후백제의 왕 견훤이 아들에게 유폐되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투항하게 되는 과정에서 아들이 아버지 견훤을 유폐시킨 백제의 사찰이 금산사였다. 그리고 금산사를 기억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슈는 금산사 미륵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목조건축물 중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가 그리 많지 않다. 유난히 전쟁과 외침이 많았던 탓에 별로 남지 않은 우리의 목조건축물 목록을 정리하다 보면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을 발견하게 된다. 이 건물 하나를 보기 위해 한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금산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느낌은 한마디로 “역시!”였다. 10여 년 전이라 금산사 경내의 너른 구릉 위에는 미륵전만이 덩그러니 서있어서 그 모습이 몹시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참으로 웅장하고 담대한 목조건축물이구나 하는 느낌은 똑같았다. 절집의 전각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국보 제49호 수덕사 대웅전밖에 없었던 거 같은데 금산사 미륵전 앞에서 동일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오른쪽에서 보고 왼쪽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한참을 미륵전을 맴돌다 해가져서야 금산사를 내려왔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 서기 599년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이후 신라 혜공왕 2년 서기 766년 진표율사가 다시 중창하였으며 이때 금당을 짓고 미륵 장육상을 봉안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충숙왕 15년 1328년 원명 해원이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처영 뇌목대사 가 금산사를 배경으로 일천 승병을 지휘했던 곳이 금산사이다. 선조 29년 1596년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다가 인조 13년 1635년에 수문 대사가 다시 중창하였는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미륵전은 이때 만들어진 목조건축물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가람배치라는게 한 가지도 동일한 것이 없지만 금산사의 입지는 일반적인 절집의 위치와 비슷하지만 가람배치는 미륵사상에 기반하고 조성된 사찰이라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금강문 천황문을 지나 보제루를 거치면 너른 구릉지의 경내에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른편으로는 미륵전과 방등계단이 들어오고 정면에는 최근에 지어진 대적광전이 위치하고 있다. 주 전각인 미륵전의 위치와 방등계단의 위치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어 얼핏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 하지만 방등계단을 올라 바라보면 왜 이런 구조로 전각을 배치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불교의 미륵사상 같은 복잡한 불교 교리나 절집의 분위기에 관심이 별로 없는 분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금산사 미륵전만큼은 꼭 한 번쯤 찾아보기 바란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고 해도 만들어진지 400여 년 된 우리나라의 대표적 목조건축물 금산사 미륵전은 그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금산사 웹 버전 사진 더 보기 ]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