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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Dec 13. 2023

첫 출판기념회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언젠가 책을 낸다면 꼭 만들고 싶은 크기가 있었습니다. 

출판사 편집부에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놀랍게도 딱 그 크기만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오후였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장 많이 도와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끝까지 표4 축하글을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책이 나오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축하해주었습니다. 

친구 손에 들려온 꽃과 케이크가 놓인 자리가 제 첫 출판기념회입니다. 



친구는 물었습니다. 

책에서 어느 구절이 제일 마음에 드느냐고.

출판기념회에 아주 적합한 질문이었죠.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를 때마다 예쁜 이름 나아리(羅兒里), 신라의 아이 마을.

그러나 경주는 핵발전소를 유치하는 순간, 

신라 역사와 문명의 지존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풀벌레 소리가 자잘한 종소리처럼 밤새 울린다. 

어쩌면 내 글도 풀벌레의  작은 소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무리 울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언어.

몇몇이 비우고 아낀들 핵발전소 전력량에 영향을 미칠 리 만무하다.

그래도 이 가을에 나는 구애도 아닌데 풀벌레처럼 나지막한 소리를 낸다.

안전하게 생명을 지키고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자고.' 



저는 그 친구에게 표4 축하글을 자필로라도 써달라고 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 책이 와야 저자 소장본이 생길 텐데 말입니다. 



친구는 그날 집주인에게 새책을 드리지 않느냐고 물었고  

저는 시골에서 제 사상이 드러나는 게 염려스러워 마다했습니다. 

두 달쯤 지난 겨울 어느 날 

저는 주인 할머니께 제 책을 드렸습니다. 

친구가 드리라고 했다는 말씀을 덧붙여서요.

나아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 부위원장과 집주인은 비슷한 연배십니다. 

어느 곳에 사느냐에 따라 어떻게 살게 되는지가 달라집니다. 

어디에 살든 거주 이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제 책이 나아리에 살고 있지만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이주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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