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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Dec 30. 2023

다시 비움 실천 1

     

지리산에 다녀온 후 날도 추워졌지만 마음이 더 추워서 쇼핑을 했다.

마음이 공허하고 우울할수록 쇼핑하는 심리 통계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져 있다.      

내게 적당한 크기의 공간으로 옮겨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건 어려운 일이다. 계약 기간 1/4이 지났을 뿐이다. 6개월을 살았다고 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입주 축하금 5만 원을 통장으로 보내주었다. 고마움이 망설임을 낳는다.  

      

겨울나기가 두려워 방한용품을 들여놓았다. 침대 대신 방한 텐트와 올리브 그린 겨울 이불과 패드와 베개 커버. 감색 캠핑용 시트를 깔다가 아이보리 극세사 매트를 까니 기분이 확 좋아졌다. 캠핑용 26cm 냄비도 샀다. 코펠 말고는 큰 그릇이 없었는데 꽤 유용하다. 여기까지는 생필품이고 오래 고른 것이라 후회가 없다. 그런데 소파는? 다음 집에서 사려고 아주 오래 망설였지만, 자꾸만 허공에 뜨는 마음을 눌러 가라앉히기 위해 무거운 가구가 필요했다. 마침 80% 단독특가 할인하는 게 있어서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쉬운 대로 주문했다.      


지리산 종주 이후 나는 정말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 집안 정리를 못 하고 있다. 옷을 벗어놓으면 갤 줄 모르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하지 못한다. 그동안 어디에 있든 아주 깔끔하게 살았다.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그때 내게 허용된 공간은 6평에서 10평 남짓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세 배는 넓은 공간에 살고 있다. 넓기만 한 공간은 마음을 어수선하게 한다.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넓은 공간과 넓기만 한 공간은 다르다.     


10월이 가고 11월을 맞으면서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려 한다.

이 생각은 얼마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지리산에서 하산하던 마지막 날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특별한 이유로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척했음을 알아차렸다. 좋은 거라고 얻은 중고스틱을 들고 지리산에 올랐는데 하산 끄트머리에서 자동차 트렁크에 두고 온 내 파란 스틱에게 미안했다. 선물 받아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지낸 그 애에게 지리산 구경을 시켜주었어야 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그래서 다시 비워야 할 물건의 조건을 따져보았다.      


첫째, 출처를 알지 못하는 물건

둘째, 낡고 구질구질한 물건

셋째,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     


마침 검정 고무신을 신고 산책하는데 발이 이상해서 돌아와 보니 양말 양 뒤꿈치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한 번 꿰매 신고 있던 건데 더 꿰맬 수 없을 정도로 구멍이 났다. 버리기로 했다. 낡은 옷에 대한 미련은 접착 부분이 다 떨어진 스포츠 브라와 팬티를 버리면서 함께 버리기 시작했다.      


또 비우기 시작한 건 음식.

친구 생일 미역국 끓이려고 사두었던 국거리용 한우 유통기한이 지나서 더 두면 상할까 봐 하죽도에서 온 미역과 함께 끓여 먹어버렸다. 선물 받은 밤도 소금물로 깨끗하게 씻어 냉장고에 소중하게 보관했는데 벌레가 생기기 시작해서 얼른 삶아 먹었다.

그날 또 하죽도에서 생선이 왔다. 택배에는 쪽지가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 주고 잘 돌보면 외롭지 않답니다. ^^’     


그래서 생선도 한 마리 쪄서 먹어버렸다.      

산책하다가 책을 보내 드렸는데 아직 못 받은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어디서 사느냐고. 이러저러해서 어디에 있다고 하니 보헤미안이나 히피처럼 자연에서 살 줄 알았다고 한다. 대학 강의도 하고 다큐멘터리 제작도 한다고 하니 다시 제도권으로 돌아온 게 섭섭하다는 듯 들렸다. 나도 정착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지금 사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내 이름처럼 사는 게 맞지 않겠냐고 했다. 내 이름처럼 사는 건 어떤 것일까? 작년 담양에서는 자꾸 그러는 거 갱년기 증세라고 얼른 돌아가라고 했던 선배다.      


마침 주문한 소파를 배송 전이라 취소한 후였다. 소파에는 로망이 있다. 포근히 앉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다 포개 눕고 싶은 상상.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기에 취소하고 나니 개운했다.      


전날 책 보내드리려 어렵사리 통화된 시인도 그랬다. 한 3년 안 보여서 어디 아픈가 했다고. 지난 3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아봤다. 어딘가에 정착할 곳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입주한 이곳에서도 안정을 못 한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 마음속 집에 간다면 만족할까? 마음이 뜨면 뜨는 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살려면 무엇보다 짐을 늘이면 안 된다. 특히 크고 무거운 짐은 조심해야 한다.

다시 비우는 재미를 찾아야겠다.      


1031 비움 실천 1일째

구멍 난 양말, 재활용하려고 말려둔 비닐들, 유통기한 지난 영양제.

쇠고기, 미역, 밤, 생선 한 마리 먹어 비움.      


1101 비움 실천 2일째

당근사과주스병과 플라스틱 병.

그런데 산책하다 노란 은행잎 두 장을 주워왔다. 그래서 버리지 못하던 영수증 두 장을 버린다. 아껴두다 유통기한이 지나고 있는 냉장고의 도토리묵도 먹어 비운다. 손님이 올까 싶어 사두었던 함박스테이크도 유통기한이 지나 먹어 비운다. 역하다. 다 먹지는 못하고 고양이 먹으라고 밖에 두었다. 무거운 마음도 비워지면 좋겠다.      


1102 비움 실천 3일째

장롱 속에 틈틈이 사서 고이 모셔두었던 선물을 비웠다. 예전에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옷을 사주는 게 사랑의 표현이었다. 한동안 그런 소비가 거의 없다가 일 때문에 서울에 오가는데, 기차역에 백화점이 있으니 달콤한 자본의 맛이 솔솔 느껴져 이전 버릇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비움 후에 새로운 것들이 생겼다. 튼실한 배추 한 통과 귀여운 무 여섯 개와 단감 일곱 개. 그리고 아주 멋스러우면서도 소담한 노란 소국 나비금옥. 그저 ‘누님같이 생긴 꽃’인 줄로만 알았는데 집에 와서 찾아본 노란색 국화의 꽃말은 ‘짝사랑, 실망’. 기가 막혔다. 울다가도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는.      


1103 비움 실천 4일째

퉁퉁 부은 눈으로 무청 자른 무를 신문지에 싸고 비닐에 싸서 냉장실 과일 칸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자른 무청을 굵은소금 한 스푼 넣어 끓인 물에 데쳤다. 캠핑용 냄비가 작아 여러 번에 걸쳐서 해야 했다. 데친 무청을 헹궈 베란다 옷걸이에 널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배추 겉잎도 뜯어 씻어서 끓는 물에 데쳐 잘게 썰어 항균 지퍼백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시린 겨우내 귀하게 먹을 양식이다. 덕분에 항균 지퍼백 小를 다 썼다.

김치가 떨어져 가니 이젠 김치를 담가봐야 하나 고민 중이다.

초가을날 마트에서 샀는데 곧 시들어버린 보라색 소국을 주인집 정원 화분에 심어주었다. 보라색 국화의 꽃말은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내 모든 것을 다 주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어도 후회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상대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도 되지 않을 때.     

종이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 배출을 했다.      

시들어가는 내 모습이 처량해 처음으로 손톱을 전문가에게 맡겼다. 짧게 깎아달라고 했더니 불편할 정도로 짧았다. 손톱을 보니 내가 참 좋아하는 깨끗한 손톱이 생각났다. 손톱을 버렸다.      

4년 된 하얀 운동화를 버렸다. 약간 작아서 가끔 신었는데 그 가끔 때문에 공간 차지하는 게 싫어서. 그 운동화를 신고 팔짝 뛰어 화단 위에 앉았던 여름날의 종로가 생각난다.      

데쳐서 썰어놓은 배추 우거지에 국거리 한우와 된장을 넣고 끓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맛이다. 배추에 담긴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과 농부의 힘과 땀과 정성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배추 우거지 한 봉지를 먹어 비웠다.      


1104 비움 실천 5일째  

책 한 권을 드림으로 비웠다. 지리산 갈 때만 해도 45kg대이던 체중이 43kg대로 줄어들고 있다. 진이 다 빠져 얇아지겠다. 그 몸에 한여름에도 자주 먹지 않는 팥빙수를 먹었다. 올해 마지막이려니 하며. 좋아하지 않던 걸 좋아하게 된 닮음을 비울 수 있다면.......      


1105 비움 실천 6일째  

앙증맞고 귀여운 무를 물로 씻었다. 감자 깎는 칼로 도려내는 껍질도 아까와 수세미로 박박 씻어서 네모로 썰었다. 썰다가 한 조각 입에 넣어보니 달콤함이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국거리 한우를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붓고 네모난 무 조각들을 넣었다. 한소끔 끓인 후 다시 약한 불로 계속 끓였다. 국간장 조금과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춘다. 대파가 없어 국물의 시원한 맛은 좀 아쉽지만, 달콤한 가을 무가 보랏빛 씨앗의 꿈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자그마한 무 한 개를 먹어 비웠다.      

스크랩하려고 모아두었던 시사 잡지를 버렸다.      


1106 7일째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휴대폰만 들고 나감. 지리산에서 짐만 가벼웠더라도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주 오랜 습관인 무거운 짐. 이젠 정말 지겹다. 불안에서 온 생활습관을 비우기 시작한다.  

정형외과에 가서 드디어 주사를 세 대나 맞았다. 관절통, 경추통, 어깨의 유착성 관절낭염, 근근막통증후군. 지리산 종주 이후 몸이 아주 망가졌다. 염증과 극심한 통증을 비운다.      


1107 8일째

어깨 충격파 치료 후 홍대 앞 스튜디오 실습에 심사차 방문. 휴대폰과 볼펜만 들고. 항상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던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변화.      


1108 9일째

아주 작은 아기 무 하나와 시래기 조금을 함께 된장국 끓여 먹어 비움. 사랑스러움이 속을 채운다. 얻어서 오래되고 낡은 코트 버림     


1109 10일째

종이류 정리.

올봄 전주국제영화제 갔다가 산 선글라스 자전거 순례에서 처음 쓰자마자 다리 부러진 거 과감히 버림.

묵은 김치를 꽁치 통조림과 나박하게 썰어 넣은 무와 함께 끓여 먹어 비움. 남은 무는 채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고춧가루와 매실청과 설탕과 깨 넣고 생채로 무쳐 비움.     


1110 11일째

일부분 말랑해진 단감 하나 먹어 비움.

친구들이 대전에서 <출판기념회> 해 줌. 사들고 간 성심당 빵 두 상자 선물로 주어 비움.      


1111 12일째

단감 두 개째 먹어 비움. 원주에서 온 빼빼로 한 통 먹어 비움. 해진 양말 버림.

반면 2년 반 전 하동군 악양에서 앞치마 선물 받으며 사고 싶었는데 못 산 네팔산 울로 된 고래 방석을 서울 영등포에서 발견. 작년 6월에 다시 악양에 갔을 땐 가게 문이 닫혀있었다. 간절히 바라면 결국 만나게 되는구나. 그런데 심지어 그때보다 훨씬 쌈. (앞치마 가격 바가지였음이 맞았음.) 망설임 없이 삼. 이런 건 낭비가 아님.


1112 13일째

다 늘어져 어깨 드러나는 내복 상의 버림. 항상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겨주었는데 이젠 자신을 챙겨야겠다. 지리산에서 생긴 발 물집이 말라 뜯어졌다. 한 달 이내에 피부 상처는 낫는구나.      


1113 14일째

정형외과 주사 2차 접종. 출강 외 가방 안 들고 다닌 지 8일째.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게 무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지리산 등반 전후 비정상적으로 급격히 감소한 체중 42kg대. 이것도 비움이라면 매우 심각한 비움. 산부인과에 가봤더니 갱년기에는 살이 쪄서 오지 빠져서 오는 경우는 없다고 내과로 가보란다. 병원 쇼핑도 아니고 안 감.      


1114 15일째

어깨 충격파 치료 후 책 한 권 증정 비움. 말랑해진 단감 세 개째 먹어 비움.      


1115 16일째

마지막 김치를 물에 씻어 같은 지역에서 온 양파와 자연드림 참치와 함께 들기름에 볶고 통깨를 뿌렸다. 이제 김치는 없다. 해남에서 받은 조미김도 다 먹어 비움. 말랑해진 단감 네 개째 개 먹어 비움. 푸팟퐁 카레 데워 먹음. 담양 카페에서 준 보이차 다 마셔 비움. 20일째 식재료 사지 않고 냉장고를 비우고 있다.


1116 17일째

말랑해진 단감 다섯 개째 먹어 비움. 무 생채 다 먹어 비움. 큐브 닭을 식용유에 볶아 모짜렐라 치즈 남은 한 봉을 얹어 비움. 밥 해서 유부초밥 만들어 먹어 비움.      


1117 18일째

남은 유부초밥 세 개와 사과 한 개 아침에 먹어 비움. 오후에 싹 난 감자 네 개와 남은 달걀 세 개 전부 삶아 으깨 냉동실 식빵과 먹어 비움. 한 모금 남은 짐빔과 진로토닉제로 한 병 마셔 비움. 마지막 김치볶음과 남은 밥과 상추 다 먹어 비움. 냉장고가 텅텅 비어 가고 있음. 발효비타앰플과 클렌징 오일 다 써서 비움.      


1118 19일째

냉장고를 거의 비웠는데 생각지도 못한 자연 식물식 요리연구가에게서 택배가 옴. 김치가 똑 떨어졌는데 배추, 보랏빛 동치미, 파, 갓, 무청 총 다섯 종류 김치가 생김. 사라진 입맛이 돌아올 만큼 아름다운 김치 빛깔과 맛. 밥을 막 해서 김치를 우적우적 먹었다. 사는 맛이 이런 건가. 비워야 채울 수 있음.

      

1119 20일째

얻은 빨간 후드티를 버렸다. 검정과 흰 폴라티와 검정 니트를 비웠다. 유통기한 지난 로션을 버렸다.

반면 새 내의를 두 장 샀다. 이제 후줄근한 건 입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지리산에서도 선물 받은 속옷을 하산하는 날 당당히 입으려고 아껴두고 첫날 낡은 속옷을 입고 올랐다. 결국 마지막 날 입긴 입었지만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누군가에게 작은 새 팬티 세 장이 내 몫이 되었다.       


1120 21일째

24일만에 달걀, 두부, 우유, 사과 삼. 두부와 달걀에 새우젓을 넣어 두부국 끓여 비움. 압착유채유 다 먹어 비움.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 전액 하죽도 은혜교회 게스트하우스 건축헌금으로 송금.     


1121 22일째

이사 왔을 때 싱크대에 있던 철 수세미 버림, 모르는 남이 쓰던 건 비울 작정. 민트색 수세미 내려오고 노랑하양분홍 수세미 새로 꺼냄. 물만두 다 먹어 비움. 사과 한 개 먹어 비움.

초록 리넨 커튼 세탁.

오후에 향적산 올라가다 향국암 코앞에서 하산하는 승합차 얻어 타고 내려옴. 끝까지 가려는 고집 비움.

1학기 보충수업비가 11월에 입금. 전날 헌금의 10배 다시 함.

2년 반 전에 묵었던 민박집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가 영 찜찜해 근처 파출소에 신고해서 경찰관 출동. 불법카메라 없음 확인. 오랜 걱정근심 비움. 신속 해결 경찰관 고마움.

하죽도 반건조 생선에 무와 호박 썰어 넣고 달짝지근한 간장 고추장 양념에 조려 먹어 비움. 맛있음.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었음.      


1122 23일째

향적산 등반 후 현관 초록색 리넨 커튼 떼어서 작은 방에 걸고 중문엔 겨울용 리버풀 면 체크 커튼 닮.

유기농프락토올리고당 고구마탕 해서 다 먹어 비움.

단감 여섯 개째 먹어 비움. 사랑스러운 마지막 단감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면 취소할 틈이 없어 소파가 들어옴. 작고 푹신하지 않고 깔끔한 소파. 내가 원하는 용도로는 못 쓸.      


1123 24일째

매실장아찌 다 먹어 비움. 사과 한 개 먹어 비움. 유통기한 살짝 지난 떡볶이 떡과 남은 호박과 양파 반 개로 떡볶이 해 먹어 비움.      


1124 25일째

서천앞바다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김마을 재래김 먹기 시작. 아껴두다 유통기한이 두 달이나 지났다.      


1125 26일째

모아두었던 종이와 재활용 쓰레기 모두 비움.

군산 팽팽문화제 가는 길에 복성루에서 짬뽕을 사 먹어 먹고 싶던 욕구를 비움.

김치를 주신 주인께 이성당에서 사 온 단팥빵과 야채빵 절반을 드려 비움, 이라기보다는 나눔.      


1126 27일째

무얼 비웠을까? 음...    


1127 28일째

첫 음악 로열티 입금 확인하자마자 전액 하죽도 은혜교회로 헌금. 오랜 습관, 첫 소산은 주님께.

4주간의 정형외과 치료 마침. 통증은 사라짐. 어차피 할 것을 지리산 가기 전에 치료 받을 걸...      


1128 29일째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산 군산 이성당 슈톨렌을 하죽도 은혜교회 대강절 장식으로 드림.      


1129 30일째

서천앞바다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김마을 재래김을 며칠에 나눠 다 먹어 비움. 챙겨준 따스한 마음은 간직한 채.      


1130 31일째

새벽 4:55 긴급재난문자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깸. 기상청에서 온 내용은 경북 경주시 동남동쪽 19km 지역 규모 4.3(이후 4.0으로 발표) 지진발생/낙하물 주의, 국민재난안전포털 행동요령에 따라 대응, 여진주의. 경주 나아리가 걱정돼 탈핵 벗들에게 문자를 넣었다. 황분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 부위원장님도 대피 준비를 하신다고 전해 들음. 여진 걱정으로 날 밝을 때까지 깨어있음. 강의 후 낮에 부위원장님과 직접 통화하니 그냥 댁에 머물러 계신다고 함. 재난이 닥쳤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그제서야 우리는 강제적으로 모든 걸 비울 수 있을까?

그런데 핵발전소 위험으로 걱정하는 중에도 집이 추워 전기난로를 삼. 연료가 LPG라 요금 걱정에 보일러를 마음 놓고 켜지 못함. 더위는 참아도 추위는 참기 힘듦. 생존 앞에서 무력해지는 신념. 그럼에도 난로 위에 유리 포트로 차를 끓이니 수증기가 나와 낭만적임. 집에서 난로를 켜다니 하....... 난로 하나에 의지해서 겨울을 나던 공방이 생각난다. 그땐 추운 줄도 모르고 어떻게 매일 그리 지냈을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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