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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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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14. 2024

thanks for the three envelopes

세 개의 봉투에 감사합니다


서울 경인미술관 제3관 세월호 참사 10년 [잊지 않겠습니다] 김정용 사진전 첫날이었던 2024년 4월 9일 화요일 밤, 종로 3가 옛날집 낙원아구찜 뒤풀이 자리에서 김정용 사진작가가 말했습니다.      


"난 이 전시회를, 전국 어디든지 대관만 해주면 가서 사진 걸고 무료로 전시를 하고 싶어요."     

"전국의 갤러리에 기획안을 쭉 돌리면 되잖아요."     

"그럼 별님이 해주셔. 난 어떻게 하는 지 모르잖아요."     

“네? 제가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기업 홍보 다큐멘터리는 제작해 봤어도 사진전 홍보물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까요. 아마추어라 못 한다고 아무리 고사해도 선배는 제 진정성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갤러리의 ㄱ도 모르는 제가 김정용 선배의 사진전 홍보물을 맡게 되었습니다.      


4월 9일부터 16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전시가 끝나고,

4월 25일부터 5월 7일까지 제주 큰바다영 사진예술공간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적어도 제주 전시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제작을 해야겠기에 5월 6일에 사진전 기획안 pdf 초안을 보냈습니다.      

1차 수정안, 2차, 3차 수정안까지 보냈을 때였습니다.

선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계좌번호 문자로 찍어줘요."

"아니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예요?"     


저는 버럭 언성을 높였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세월호 일이니까 한 것이었으니까요.

5월 10일 4차 수정안을 보내고도 답이 없어서 며칠 후 전화를 했더니 계좌번호 안 부르면 답을 안 하겠답니다. 그렇게 어제 통화로 옥신각신하다가 선배가 오늘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 가본다는 겁니다.      


"저도 갈래요!"     


무턱대고 말했습니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도 아니고 '저도 갈래요.'라니.      

그리고는 어제 드디어 사진전 홍보 pdf 완성본과 홍보기획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지축역에서 선배 차를 타고 안산으로 갔습니다.      


오전 11시 25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4.16 기억저장소인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았습니다. 번듯한 기억교실의 위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진전 일정은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으로 금세 확정되었습니다.        

                   

전시 예정지인 4.16 기억전시관으로 가보았습니다.

이웃이 차린 마음, 함께 10년 <시민의 기록전 마을의 4.16>이 3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시 중이었습니다. 요목조목 아기자기했습니다. 기억이 고마웠습니다.

(4.16 기억저장소와 4.16 기억전시관에 관한 글은 따로 실었습니다.)

https://brunch.co.kr/@seventhstar/260


전시관을 보고 부대찌개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는 헤어져야 했습니다. 선배는 직장으로 저는 기차역으로.

오후 한 시. 안산시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선배는 차를 세웠습니다. 운전석에서 내려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가 시민들에게 수원역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묻고는 달려왔습니다. 그리곤 내려서 짐 챙기는 제 가방에 봉투를 쑥 넣었습니다.      


“택시비 해요. 계좌번호는 죽어도 안 불러 줄 테니까.”     

더 실랑이하지 않고 인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좌석버스를 타고 두 시 직전에 수원역까지 가서 맞춘듯이 기차에 올랐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모처럼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실은 지난 토요일 영화제 시상식에서 마음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수상 후보작이라고 해서 전혀 모르고 앉아 있다가 대상 수상작에 호명되자 기뻤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작년에 공동 제작해서 방송까지 한 작품이었는데 수상자 화면 감독/작가 이름에 감독만 있고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수상 소감에서 피디가 제게 감사 인사말을 했지만, 저는 수상자 석에 앉지도 못했고 트로피도 없었고 상금도 제 몫은 묘연했습니다. 영상물은 최종적으로 늘 피디의 공적이 되었습니다. 그게 싫어 작가만의 길로 방향을 틀었으나 소재와 주제가 훌륭하여 다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30년 동안 똑같은 일을 겪는 게 참 서글펐습니다.


그런데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며칠 고생한 제 창작물에 대해 선배는 그 노고와 가치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돈을 지불해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선배는 지하철 노동자입니다. 지하철 전동차를 정비하는 노동자도 아는 일을 화이트칼라들이 모릅니다. 아니 모른 척합니다. 우직한 곰 같은 선배의 올바른 계산법이 고마웠습니다. 대가를 바란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후 선배 성의를 생각해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평소에는 걸을 거리였지만 짐이 지나치게 무거웠거든요. 집에 와 산책을 하고는,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하죽도에서 관지가 보내주신 생선 마지막 두 마리를 꺼냈습니다. 우체국도 없는 하죽도에서 저 굶주릴까 봐 귀하게 보내주신 이름도 없는 생선. 그 생선을 담은 종이봉지가 예뻤습니다. 둘째 고모가 주신 맛간장 끝물에 4년 전 친구가 준 고춧가루를 병에 덜어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고추를 빻는 내내 지켜보았다는 고춧가루 담은 비닐봉투도 예뻤습니다. 제가 막 묶어서 그렇지 처음에는 풀기 쉽게 동그라미가 있는 지혜로운 매듭이었습니다. 그런 소소한 배려심 담긴 것에 감동합니다. 그때 선배가 준 봉투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누룽지 반 그릇 끓여 먹고 오전부터 기차 타고 시상식 갔다가, 피디 인터뷰하는데 옆에서 칭찬만 하다가, 피디는 상패와 상금 모형 챙겨 휑하니 가버리고 저는 철철 내리는 빗속에서 쫄쫄 굶고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쫄딱 젖은 채 밤 7시에 가까운 성당 특전미사에 갔습니다. 지갑에 남은 마지막 지폐 한 장을 헌금하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했습니다.


그런 제 빈 지갑에 맨 처음으로 선배가 돈을 채워준 것이었습니다. 이 돈은 종잣돈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중물처럼 돈을 불러오게 될 겁니다. 그 말은 곧 앞으로는 제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과만 일할 거라는 다짐입니다. 모르는 척, 착한 척, 바보짓 그만할 거란 말입니다. 선배가 그걸 알려주었습니다.      


자박자박 간장 고춧가루 양념으로 조린 생선과 모락모락 김 나는 잡곡밥을 먹었습니다. 한식조리기능사 실기과정 수료 이후로 제 음식에 맛이란 게 생겼습니다. 돈과 생선과 고춧가루. 이 셋을 담은 봉투를 찍어보았습니다. 생선 담은 봉지엔 생선 냄새가, 고춧가루 담은 봉투에선 고춧가루 냄새가. 꼭 필요한 것들이 제각각 다른 냄새와 모양에 담겨서, 오늘 저를 무척 행복하게 해 줍니다.

이 봉투를 주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순례자인 저를 돌보셨으니 복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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