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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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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15. 2024

thank you teacher

스승님 고맙습니다


어쩌다 들어간 대학교에서 2학년 때 과 선배가 교수님과 대학원생들과 하는 논어 스터디를 함께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했습니다.

복도 맨 끝 오른쪽 방 고전문학 교수님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매주 논어를 공부했습니다. 교수님이 강독해 주시는 걸 조용히 듣는 방식의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렸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엄숙한 공부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때 저는 과 사무실에서 한 명뿐인 근로학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은 집에서 대주셨지만, 용돈 받은 기억은 1학년 때 한 번 뿐입니다.

연년생 동생도 대학생이라 등록금 납부일이 겹치면 언니인 제가 학자금 대출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타학교에서 편입해 온 조교가 업무시간에 스터디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노크하고 연구실에 들어가서 교수님께 그 말을 전하며 이젠 스터디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좋았었나 봅니다. 그때 제 눈에 눈물이 좀 글썽거렸습니다.


"못된 것."


교수님이 읖조리셨습니다. 조교를 향한 말씀이었죠.

내심 교수님이 조교를 나무라시고 저를 스터디에 들어오게 해주시진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저 대신 조교에게 욕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상대에게 들리게는 아니었지만요. 그만큼도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저를 도와줄 만한 어른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그 후였겠죠.

교수님께서 제게 손바닥만 한 논어역주論語譯註를 주셨습니다.

속표지에는 세로로 제 성과 이름 석 자가 붓펜으로 적혀있습니다.

교수님 성함은 없었습니다. 누가 준다는 생색 없이 그저 제 책이란 표시였습니다.

이후 교수님의 수필집도 몇 권 주셨는데 그것들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형설출판사에서 1984년에 나온 1,500원짜리 논어역주는 전국의 온갖 정원을 찾아 떠돌던 지난 4년 간 제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었습니다.

뒷표지와 속표지 사이에는 메모지로 쓰시던 일력 뒷장에 박일봉 논어 육문사, 김학주 논어 서울대출판부, 김종무 논어신해 민음사라고 쓴 교수님의 글씨가 있네요. 아마 혼자 공부할 때 참고하라고 써주셨나 봅니다.


이후 저는 그 교수님이 주간으로 계시던 계간지 출판사에서 3~4학년 2년 동안 편집부원으로 일했습니다.

말이 편집부원이지 직원은 저 한 명이었고, 경리는 제 옆자리에서 다른 출판사와 함께 업무를 보는 이가 담당했습니다. 사장이 한 분이고 주간이 두 분인 그 출판사는 2층이었고 우리 둘만 1층에서 근무했습니다.


교수님이 편집회의 후 명단을 주시면 필진들에게 전화나 우편 청탁 또는 재촉을 해서 마감일까지 우편으로 원고를 받아 편집대행사에 넘기면 됐습니다. 그리고 책이 나오면 발송을 했겠죠. 30여 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당시 제 월급은 30만 원. 월급을 타자 월 8만 원 납입 1년짜리 적금을 부었습니다. 제 첫 적금이었습니다. 이후로 수입이 있으면 적금부터 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죠. 그 은행은 제 주거래 은행이 되었고요.


졸업 직전 교수님께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면 어떨까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단호하게 말리셨습니다. 거긴 현직 교사들이 가는 데라고. 막막하던 때 의논할 어른이라곤 그나마 어려운 교수님뿐이었습니다.  


졸업 후 교수님 연구실로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가 인사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스승의 날이었을 겁니다.

교수님께서 웃으시며 좋아하셨습니다.

학부생이 졸업 후에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고보니 따박따박 2년간 월급을 받았는데도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걸 코치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니 무슨 일이었는지 교수님 댁에도 갔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은 얼마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60대 초반 아니 어쩜 50대 후반이셨을 지도 모르는데 낚시하러 가셨다가 심장마비로.......

왜 하늘은 특별히 좋은 사람을 그리 빨리 데려가실까요?


장례식장에 갔더니 출판사 경리 담당자가 있었습니다.

아마 약속해서 만났겠죠.

출판사에 있을 때 저랑 제일 친했으니까요. 둘 다 마이너리티였으니.


"너무 아까운 분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마도 그런 말을 나눴겠죠. 아직까지 이름도 기억하는 그이는 몇 년 더 연락하고 만나다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릅니다.


제게 스승님이 계시다면 그 고전문학 교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지금 제가 학생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일일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그 교수님의 영향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하늘에서도 논어를 가르치고 계시다면 나중에는 꼭 서설부터 제20권까지 전부 배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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