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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l 01. 2024

동거 스무이렛날

콩이 쾌유 일지-산책과 빗질


잠들기 전 휴대폰을 손에 들면 안 된다.

스트레칭 후 그냥 전기스탠드 불을 꺼야 한다.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다 새벽 두 시가 넘어 잠들었다.

새벽 다섯 시 대에 일어났다가 또 잠들어 10시 근방에서 깼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파랗다.


콩이 짧은 산책 겸 소변.

느티나무 근처에서 누가 두고 간 플라스틱 빗자루로 지저분한 흙과 나뭇가지를 좀 쓸다가 힘이 들어 그만두고 어제 쓰러진 밤나무에게 가보았다. 밤나무는 하루새 몸을 조금 일으켰다. 보아하니 밤나무 가지 무게가 아니라 그 나무를 뒤덮고 있는 징그러운 덩굴이 문제였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낫질을 해 주고 싶지만...... 참는다. 사다리도 없고 내 팔도 예전 같지 않으니까. 그리고 콩이 하나 돌보기도 벅차니까.


콩이 물을 마시게 해 주고 빗질을 해 주고 안고 올라왔다. 문득 계단을 세어보니 스무 개가 넘는다.

콩이에게 소독약을 뿌려주고 사료 100g을 주니 먹지 않고 잔다.  


이렇게 맑은 날엔?

빨래.

입었던 옷들을 손빨래해 널고, 2층 창틀을 닦은 후 브릭색 카펫을 널어서 턴 다음 그물망에 넣고 세탁기에 돌린다. 드디어 마룻바닥 전체가 뽀송뽀송하다. 그리고 다용도실은 또 배수되는 물청소로 뽀득뽀득하다.


정오 즈음, 식빵 두 장은 부담스러워 한 장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더니 양이 딱 맞는다.


오늘은 7월.

밀린 빵 선물을 보내고, 몇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의논할 게 있어 전화를 했다.


"좋은 일이 있어요~"

"만났구나?"


누군가가 생각하는 내게 좋은 일이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니....... 수년간 사랑 타령만 했던 내 말의 대가였다. 이제 내게 좋은 일은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따위가 아니다.

그동안 목이 마르니 닥치는 대로 마시려고 들었다. 아무리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아무거나 마시고 먹을 수 없듯이 아무나 만날 수는 없다. 게다가 이제는 목이 마르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다.

덕분에 나는 독립했다. 독립은 처절한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식충 같은 덩굴처럼 칭칭 감아드는 인간관계를 단호하게 쳐내지 않으면 저 밤나무처럼 추락할 수밖에 없다. 도망칠 수 없는 밤나무는 제 힘으로 덩굴을 벗어날 수 없다. 겨울이 되어 덩굴이 말라죽기 전까지는. 하지만 사람은 나무가 아니다.

                                                                                                              

15시 넘어, 큰고모가 알려주신 대로 국수를 조금 삶아 헹궈서 두유에 넣었더니 콩국수가 되었다. 파주장단콩 두유는 당도가 없어서 가능하다. 아침식사 거르고 점심식사를 두 번에 나눠 한 셈.


콩이가 다리를 들고 모로 누웠다. 처음으로 배를 만져주었다. 쉽지 않다.

콩이가 입원해 있을 때였다.


(걱정스럽게)

"선생님, 콩이 배에 시커멓게 혹이 있는데 그게 뭐예요?"

"고환이요."

(깜짝 놀라)

"개도 고환이 있어요?"

"중성화 하지 않았잖아요."


목덜미 부근을 긁지만 넥칼라 때문에 가려운 곳에 닿지 않는 듯해서 빗질을 해주었다. 집안에서 빗질 또한 처음이다. 점점 이렇게 가까워지지만 콩이는 이번 달 말이면 다시 바깥으로 나가 살아야 한다.


17시쯤 콩이가 남은 사료를 전부 먹는다.

18시 반쯤 되자 푸른 셔츠를 걸쳤다. 옷을 갈아입자 콩이는 나가는 줄 알고 펄쩍인다. 사고 후 처음으로 300m 먼 쓰레기통까지 가서 물에 젖었다 마른 종이상자를 버리고 왔다. 콩이는 오며가며 소변을 꽤 많이 보았다. 오늘 산책 거리 1.6km, 다른 날보다 짧다.

19시 대 소독약을 뿌려주고 사료를 50g 주었지만 콩이는 먹지 않는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지만 아쉬워서 20시가 넘어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여 오늘 첫 잡곡밥을 먹었다. 아무리 유기농 밀 식빵과 국수를 먹어도 역시 밥과 된장국이 최고다.

오늘 할당량 원고를 보았으니 일찍 자고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겠다.

벌써 엎드린 콩이도 계속 잘 자~^^


22시. 불 끄고 안방에 들어왔는데 현관에서 오도독 오도독 사료 먹는 소리. ㅋ 깜깜해도 잘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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