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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Sep 26. 2024

포항에서 경주 나아리까지

20240921 일 구포휴게소~감포 17km+봉길터널~월성핵발전소 3km


2024년 9월 21일 토요일 자전거 17km+도보 3km=20km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강구까지 380km를 혼자 자전거 타고 왔다.

이제 단 하루 남았다.

전날인 금요일에 출근하며 영상과 통화했다.

이러저러한 변수를 예상하며 자전거와 자동차로 루트를 짜던 중 영상의 마지막 말이 마음을 울렸다.


“최선을 다하면 되죠.”

“그래요. 최선을 다하면 되죠.”


그날 강의 후 출발하려다 비가 심상치 않게 쏟아져서 못 갔다. 그날 저녁 논의 벼가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 간밤의 비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닥쳐서였다.      


그날 밤 내 휴대폰의 문자량은 평소에 비해 매우 많았다.

경주의 주미와 울산의 영상과 주고받은 문자였다. 재난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비가 오니 안전하게 걷는 게 어떻겠냐는 주미와 포항까지 와서 합류하겠다는 영상.      


사실 이 약속은 지난 1월 호미곶에서부터 흥환간이까지 영상과 함께 걸으면서 나온 계획이었다. 내가 7번 국도를 도보순례로 완주한 후 나아리 10주년에 맞춰 자전거로 다시 순례하겠다고 하니 영상이 합류하겠다고 했었다. 나는 '7번 국도 순례길 10화 – 고독은 아무나 하나'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영상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올 초에 약속했으니까 자전거가 위험하면 걸어서라도 갑시다.

나아리 10주년에 뭐라도 합시다.’     


단단히 준비하고 사고만 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몇 시간 잘 수 없었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났다. 전날 챙겨놓은 자전거복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영상이 자동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으므로 큰 DSLR 카메라도 넣었다.      


새벽 다섯 시가 못 되어 현관문을 열었다.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길가로 물웅덩이가 생겨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파도처럼 물보라가 일었다. 번개와 천둥까지 위협하는 호우주의보 수준이었다. 대전역까지 가는 25km에 한 시간이나 걸렸다.      


자전거 뷔나를 대전역 주차장에서 기차역까지 옮기는 잠깐 사이에 신발과 양말이 다 젖었다. 플랫폼에서 기차 도착 몇 분 전에 영상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이라도 무리다 싶으면 기차표 취소하고 자전거 두고 경주로 갈까요?’     


영상의 답이 오기 전에 6시 4분 기차가 몇 분 연착해서 먼저 왔다. 하는 수 없이 탑승했다.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역무원이 이렇게 비가 오는데 자전거를 타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나도 덩달아 걱정된다고 했다.


KTX는 무척 빨랐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차창에 부딪히는 빗발이 약해졌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겁으로 졸아든 내 마음은 숨도 간신히 쉬고 있었다.      


7시 반, 포항역에는 영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은 내가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에 비상등 켜고 뒤에서 따라오며 보호하기로 작정하고 자기 자전거를 싣고 오지 않았다. 포항의 비는 대전에 비하면 보슬비였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구포휴게소로 향했다. 지난 1월 유일하게 버스로 이동했던 포항 포스코 공단 구간을 이번에도 차로 넘어갔다. 고개도 넘었다.      


구포휴게소에는 지난 1월 영하 10도에 방문했던 나를 보고 놀랐던 국밥집 부부가 있었다. 그 집으로 다시 가서 국밥을 먹었다. 밥을 먹다가 영상이 제안했다.      


“운전 잘하세요?”

“그럼요.”     


운전은 30년 동안 했기에 익숙한, 내가 잘하는 몇 가지 중 하나다.      


“그럼 반씩 타면 어때요?”

“오~, 좋은 생각인데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순간 4년 전 대진항 부근에서 자동차를 놓고 올 수 없어 도반과 번갈아 걸었던 게 떠올랐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 그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곳에서 주미가 준비하고 있을 감은사지 삼층석탑까지는 30여 km. 약사인 영상이 이과인데 문과인 내가 말했다.     


“8km씩 타면 되겠네요.”     


그 사이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는 주미와 김한이 현수막을 들고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식사를 다 하고 나갈 채비를 하자 주인 부부가 지난번엔 강추위에 걸어서, 이번엔 빗속에 자전거로 다니는 내게 이유를 물었다. 노란 조끼에 답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사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병에 걸리는데 안타깝잖아요. 다른 동네 살아도 함께하는 거죠.”     


9시 15분. 출발은 구포휴게소. 내가 먼저 자전거에 올랐다. 빗속을 달리는 내 뒤로 영상의 자동차가 따라왔다.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이었다. 다행히 짐가방이 차에 있어 자전거 뷔나는 평소보다 가벼웠다. 1단으로 오르막 끝까지 올라갔다. 내리막을 거쳐 다시 오르막.

다음에 신창간이를 지났다. 거리를 일찍이 좁혀왔다면 신창간이에서 자고 행사 당일에 그곳에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 자전거로 스쳐 지나가는 해송 피크닉장에선 지난 1월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영상이 찍어준 나


약간의 상념에 젖어 달리는 어느 순간 영상의 차가 가로질러 내 앞에 섰다. 나도 따라 섰다. 지난 1월 도보순례 첫날 숙소 양포항이었다.

     

“7.7km”     


9시 45분. 영상이 뷔나의 안장을 올려 타고 내가 영상의 새 자동차 핸들을 잡았다. 뷔나를 탄 영상이 출발하고 내가 그 뒤를 따라갔다. 도로는 1차선. 뒤에 오는 자동차 중 추월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빗발이 굵어졌다. 헬멧이 없는 영상의 챙모자는 흠뻑 젖었고 눈으로 들어오는 비를 손으로 훑어내는 영상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영상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도로 위에 떨어졌다. 나는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섰다. 그 순간이야말로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로부터 내가 영상을 지켜줘야 하는 시점이었다. 영상은 비에 젖은 모자를 아스팔트에서 주워 다시 머리에 쓰고 자전거에 올라 달렸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풍경. 우리는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가.      


영상-감포읍 진입


10시 10분. 중간 목적지는 지난번 쉬었던 감포 무인카페. 해가 반짝 났다. 아까운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좀 쉬었다.


10시 반쯤 다시 출발. 내가 운전대를 잡고 영상이 탔다. 비 오지 않을 때 내가 타라는 영상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종착지에 내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나정에서 교대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오류에 가까워서였다. 작은 자전거 뷔나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는 영상이 힘들어 보였다. 옆으로 가서 창문을 내리고 파이팅을 외치려는 찰나,

“어?!”

영상의 표정이 이상했다.

내려보니 뷔나 뒷바퀴 기어 변속기와 행어가 떨어져 나갔다.   

(나중에 수리하면서 알고 보니 변속할 때 페달을 세게 밟으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10시 50분. 서둘러 근처 자전거점을 검색해 40여 km를 달려 경주 시내 황오동까지 갔다.


11시 40분. 자전거점 주인은 부속이 없어서 못 고친다고 하셨다. 영상은 그곳에서 자전거를 수리해서 택배로 부쳐주고 싶어했으나, 나는 내 뷔나를 낯선 곳에 맡길 수 없었다. 우리는 망가진 뷔나를 차에 싣고 서둘러 봉길터널로 왔다.


12시 38분. 주미와 김한은 봉길터널 끝 지점에서 시커멓게 변한 현수막을 들고 빗속에서 서 있었다. 나는 주미와 교대해서 현수막을 들고 걸었다. 영상은 차를 어디쯤 갖다 두고 다시 돌아와 김한과 교대했다. 영상의 차가 나타날 즈음, 다시 김한이 들고 영상은 월성원자력홍보관에 차를 두고 왔다.

어찌 보면 원시적인 만큼 정직한 왔다 갔다 도보순례. 지나가는 차 안에 탄 사람만 우리를 볼 뿐, 비가 오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우리는 무모하게 걷고 있었지만 마음은 신이 났다. 걸음에서 나오는 흥이 있었다. 뷔나는 망가졌지만 내 마음은 멀쩡했다. 우리는 장렬하게 순례를 해내고 말았다.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영상과 주미와 김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한과 주미



13시 10분. 천막 농성장 앞은 한수원에서 심어놓은 식물 화단으로 막혀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려는 유치한 술책이다.      




2024년 9월 21일


13시 18분. 우리는 농성장 맞은편 솔밭에 도착했다.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 월성핵발전소 인접지역주민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 10년 대회를 했다. 5주년 때도 이렇게 비가 왔었다. 그 빗속에서도 전국에서 모였다. 청주와 울산과 삼척과 광주 등지에서 온 친구들이 반갑고 고마웠다. 남은 이주대책위 회원은 네 분이었다. 인사말과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상여시위를 했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이 모두 비를 맞으며 이주대책위원회 회원들 뒤를 따라 함께했다.

늘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주대책위원회 네 분과 이상홍 사무국장





대회가 끝나고 영상이 경주역까지 나와 자전거 뷔나를 태워주었다. 기차 안까지 뷔나를 실어주고 가는 영상의 뒷모습에 ‘책임감’이라는 세 글자가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많은 이들이 영상을 좋아한다. 그의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와 소년 같은 웃음은 덤이고, 내게 보여준 모습처럼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책임지는 모습 때문에 많은 단체에서 영상을 찾을 것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 대표로 평양까지 갔다 왔다는 영상이, 내로라하는 큰 단체 대표를 여러 개나 맡고 있는 영상이 이렇게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아주 작은 나의 순례에까지 함께해 주는 모습은 그가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고성에서부터 나아리까지 혼자 자전거 타고 왔다고 놀라워하지만, 사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언젠가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는 도와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함께 자전거를 타려고 했다가 폭우 때문에 주춤거리던 내게

‘내일 경주 계속 비 오네요. 재난문자도 온다고 하는데... 걸을까요?’

제안해 준 주미. 그리고 주미와 함께 현수막을 들고 폭우 속에 험한 길을 걸어온 김한. 그리고 울산에서 포항까지 빗길에 자동차를 몰고 와 나와 뷔나를 지켜주고 함께 순례를 이어준 영상. 이렇게 나의 순례는 이번에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끝났다.      


나는 원래 그날 행사를 마치고 포항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포항부터 강구까지 이으려고 했었다. 그렇게 고성부터 나아리까지 동해안 길 순례를 완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뷔나의 변속기와 행어가 박살 나면서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만하면 됐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것으로 부끄럽지 않다.      


다음 날 황분희 부위원장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제 고생 많았지.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내서 미안해. 다음에 또 만나자.’     


2024년 8월 25일부터 열흘 동안 서울과 고성, 서울과 간성, 서울과 울진, 대전과 동대구 거쳐 강구, 서울과 포항을 오고 갔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면 단 며칠에 완주할 수 있는 거리와 코스를 나는 생고생을 하며 한 달 동안 타면서도 완주하지 못했다. 그간의 고단함이 그 문자 하나로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곳에 살고 계신 한 분이라도 내 진심을 알아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나의 이런 어리숙하고 비효율적이고 무리한 순례가 기특하다.


언젠가 남은 구간을 완주할 거냐고?

오늘 자전거점에 다녀온 뷔나는 이제 예전의 뷔나가 아니다.

노란 타이어 빌리는 죽변항 오토바이점에서 왕창 뿌려준 오일 때문에 시껌둥이가 되었고, 변속기는 자전거점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평소 싫어하는 중고로 교체되었다. 정말 이상하게 오늘 집에 있는 큰 스피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래된 것들은 모두 변형하다 고장이 나고 수명을 다한다.

그러니까 노후원전 수명연장 말고 중수로인 월성핵발전소 조기폐쇄하자고.


10년이 되어도 나아진 것 없는 이주대책위원회.

그들을 위해 고성에서부터 나아리까지 자전거로 그들의 ‘이주만이 살길이다’를 함께 외친 400km.


뷔나야 수고했어.

우리 이제 그만 쉬자.

      

양포항에서의 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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