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강구시장~강구버스터미널 1.6km
9월 15일 일요일 강구시장~강구버스터미널
아침에 대전역으로 갔다.
추석 연휴 첫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트렁크를 갖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을 때 자전거를 갖고 기차를 타다니 민폐 끼치는 듯해 미안했다.
10:40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갔다.
13:10 동대구역에서 터미널로 이동해 강구행 시외버스를 탔다.
14:30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날 급한 마음에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예매를 했었다.
15:20 차가 너무 막히자 시외버스는 터미널까지 가지 못한 채 강구시장에서 내려주었다.
빗줄기가 굵었고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다녔다.
가방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어떻게든 가보려고 했는데 자전거 앞바퀴에 머드가드가 닿았다.
분명히 학교에서 대전역까지 잘 타고 왔는데 갑자기 이상했다. 기차 안에서 입석으로 탄 외국인노동자로 보이는 남자가 내 자전거 위에 앉아있던 걸 본 장면이 떠올랐다. (나중에 자전거점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접이식을 옆으로 누이면 머드가드가 바닥에 닿아 휘게 되어 있었다. 쓸데없는 의심은 금물.)
억지로 가보려고 하다가 비를 맞으며 왔다 갔다 헤매기만 했다.
일요일이라 자전거점포는 문을 닫았고 바퀴는 아무리 해도 잘 굴러가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강구버스터미널을 찾아왔다. 6일 전에 허겁지겁 포항행 버스를 탔던 곳이다.
포항행 티켓을 발권했다가 지난번에 고생한 기억이 나서 동대구행으로 바꾸었다.
매표소 직원이 눈에 익었다. 아저씨도 내가 기억나는 모양이었다.
“지난번에 여기까지 와서 다시 이어가려고 왔는데 비가 오네요.”
“날씨를 잘 보고 다녀야지요.”
“그러게요.”
“강구에 비가 잘 오지 않는데 이상하네요.”
대기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얼마간 나를 쳐다보던 어떤 노중년 여성이 물었다.
"자원봉사 하시는 거예요?"
"네.”
"이러고 다니는 거 남편도 좋아해요?"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요에 느낌표가 붙은 것처럼 강조해서 말했다.
여자는 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위의 질문에서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첫째, 내가 남편이 있을 법한 나이로 보인다는 점
둘째, 나이 든 여성은 모두 기혼자라는 가정
셋째, 기혼 여성은 남편이 좋아해야 외부활동을 편히 할 수 있다는 인식
현대는 결혼 적령기를 함부로 운운하거나, 나이 든 여성의 기혼을 기정 사실화하거나, 기혼녀라도 남편 눈치 보며 사회 활동하는 시대가 아니다. 전근대적인 질문에 눈에 힘주고 대들기보다는 적당한 희망 사항을 웃음으로 감싸 대답한 나의 순발력이 마음에 들었다. 때는 추석 연휴에 상대는 시골 마을 나이든 여성이지 않은가. 문화적으로 많이 다름을 인정하자.
16:58 동대구행 버스를 탔다.
돈 쓰고 시간 쓰고 비 맞고 자전거 이상 생겨 순례는 허탕 치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제 9월 21일까지 나아리에 가는 건 불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