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새해 감사

흰 눈처럼 내려온 감사의 마음

by 일곱째별 Jan 05. 2025


눈을 떴을 때 가만히 공기를 느낀다.

어둑하고 묵직한데 소리가 나는 듯 아닌 듯.


간단하게 몸을 뻗고는

난방텐트 바깥으로 나갔다.


실내 온도 16도지만 춥지 않다.

아니 견딜만하다.

극세사 잠옷과 ㅈㅅ이 보내준 수면양말을 벗고

ㅇㅋㅋ상이 일본에서 보내준 실내복을 입었다.


거실 커튼을 젖혀보니 세상이 하얗다.

눈이 오고 있었다.


ㅍㅌ가 해남으로 보내준 포트에 물을 끓이며 찬물로 세수를 했다.

ㅋㄱㅁ가 사주신 우주복 같은 은색 파카를 입고

끓인 물을 컵에 담아 사료를 챙겨 나갔다.

며칠째 주인은 오시지 않고 콩이 사료는 떨어진 지 오래.

비상용 사료를 하루 두 끼씩 주고 있다.


콩이의 꽝꽝 언 물그릇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사료 그릇에 사료를 주었다.

연말에 ㅇㄷ가 사주고 간 헝겊 집에서 자고 나온 콩이는 사료를 잘도 먹었다.

콩이에게 잘해주는 건 곧 내게 잘해주는 것.

작년에 ㅅㅇ이 그랬듯이.


개 집 옆에 버려진 빗자루를 꺼내 2층 가는 길과 주인집 계단에 덮인 눈을 쓸었다.     

지난 주말 아침에 주인이 해주셨던 것처럼.

그런데 빗자루가 부러졌다.

일주일 전 부식으로 부러진 세면대 수도꼭지 연결장치처럼.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라지만 연장은 고칠 수 있으면 고쳐주면 좋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뽀드득뽀드득

콩이와 산책을 했다.

흰 눈 위에 ㅈㅅ이 보내 준 따스한 털부츠 발자국이 찍혔다.

콩이는 길 가 풀숲으로 가서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다.


가까운 듯 먼

먼 듯 가까운

산책의 거리가 가장 좋다.


내 발자국을 보며 되돌아가려는데 저만치 고라니가 길을 건너 개울로 뛰어들어갔다.

이 밝은 오전에

차에 치면 어쩌려고.......

잠시 후 고라니는 깡충깡충 올라와 논 쪽으로 건너왔다.

거기까지 가 본 길 위에 발자국이 남았다.

이곳이 시골은 시골이구나

이 어지러운 세상에 시골에 와 있는 게 다행인가

아니면 나도 고라니처럼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브런치 글 이미지 2


콩이에게 인사하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ㄷㅂ이 설치해 준 오디오로 라디오 음악을 틀었다.

몇 달 동안 나오지 않다가 다시 나와서 더욱 기쁘다.


ㄷㅂ이 사준 앞치마를 두르고

어젯밤 남은 밥과 ㅅㅇ가 10개월 전 주고 간 일본 카레를 섞여 끓여

ㅅㅇㅊ가 사준 그릇에 담아 슬라이스 치즈 한 장을 얻고

집주인이 주신 김치랑 ㅇㄷ가 사준 테이블 위에 놓고 먹었다.


약간 적은 밥이 아쉬워 어제 반죽해 놓은 핫케이크를 부쳐

에니어그램 선생님이 주신 꿀을 곁들인다.

바닐라라떼 커피를 ㅍㄹ이 선물한 컵에 타마시다가 입에 안 맞아

사진전에서 ㅇㅋ이 선물한 블랙 캣 커피원두를

ㅁㄱ가 선물해 준 그라인더에 갈아 드리퍼에 부어

ㅍㅌ가 선물해 준 포트의 물로 ㄹㅎ이 준 컵에 내린다.


2학기 내내 출근길에 타 갔던

석 달만에 원두 한 봉을 다 마신 건 처음인

중약배전의 단맛과 구수함이 있어 모처럼 입맛에 맞는 원두였다.


핫케이크 구운 인덕션 잔열에 ㅇㄷ가 사주고 ㅍㅎㅂㄹ이 준 귤을 굽는다.

요즘은 하도 추워 귤도 구워 먹는다.


따뜻한 핫케이크와 귤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그 커피가 다 식도록 책상 앞에서

ㅍㄹ가 선물해 주신 의자에 앉아

ㅅㅁ이 선물해 준 키보드로 글을 쓴다.


ㄷㅂ이 갖다 준 책상은

작년 말에 큰 투자로 모니터 받침대와 서랍 세트를 마련하니

이젠 아주 깔끔 번듯해서 문서작업하기에도 불편하지 않다.


ㅅㅎ가 보내준 2025 WHERE THE WIND PAINTS THE EARTH 달력을 넘겨 1월을 만든다.

책과이음에서 보내준 모네의 정원 달력도 1월이다.


삶에 가득한 누군가의 도움을 기록하며

그 도움을 사랑이라 여기며

그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나 어디 즉물적 감사만 있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감사가 있다면

그건 말과 행동에 의한 게 아니던가


사실 지금 가장 감사한 이들은

무안으로 간 자원활동가나

용산으로 간 시민들


나와 상관없이

옳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

그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내년 달력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