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새가 되어

20250813 수요일 수라갯벌~새만금개발청 4km

by 일곱째별


20250813 수요일 저어새의 날


수라갯벌~새만금개발청 4km


수라갯벌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남북로를 달리는 아침이었다. 저 멀리 가마우지 떼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다리를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와 남북로 사이에는 가마우지 떼들이 아침 먹이를 찾아 내려앉아 있었다. 인간이 변화시킨 환경으로 텃새가 되어버린 철새의 모습은 볼 때마다 만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반대편 수라갯벌이 보이는 쪽으로 가보니 대중교통수단이 하나도 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본 사람 이들과 진보당원들이 수십 명 모여 있었다.


오전 9시, 딸기의 사회로 <수라의 외침_새, 사람 함께 살자 행진단 선언>을 했다.

맨 먼저 완두가 선언했다.


“법이 큰 뒷부리도요를 살릴 수 있을까?

전북지방환경청에서 5개월 가까이 천막농성을 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 5개월은 반평생 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들

생존권을 지키고자 했던 노동자 투쟁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사상에 대한 억압

동맹이라는 이름 속에 치외법권적으로 군림해 온 주한미군의 온갖 범죄들

그로 인해 울면서 떠나간 옛 동지들, 대추리 황새울 벌판의 아름다운 노을과 그 앞 솔밭에 살고 있던 솔부엉이를, 강정 앞바다 구럼비 바위와 붉은발말똥게를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던 것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기엔 너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빛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얻게 된 이재명 정부는 어떨까?

지난 7월. 이재명 정부는 내각을 인선해 꼴을 갖춰 직무에 들어갔다.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새만금 관련 대책회의를 한다는 소문이 이곳저곳에서 들렸는데, 1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전북지방환경청의 기류가 바뀌었다.

‘제발 정치적 개입 없이 과학적 사실로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공무원이 ‘새만금 신공항이 생긴다고 100%로 조류충돌이 생기냐’며 정색을 하고 말한다.

하루아침에 자연 현상이 바뀐 것일까? 관세율 협상에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용인하고 미군기지증설을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정치가 개입한 것일까? 분명한 건 과학적 사실을 포기하고 정치가 개입해, 법의 이름으로 발표하여 집행하려는 형식적 절차만 남은 것 같다. 이제까지 그래왔는데 이재명 정부라고 무엇이 다르겠느냐만, 이곳에 서서 수라를 바라보면 80년이 넘도록 반복되는 비극의 정치를 그냥 앉아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길을 떠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변방에서 성실한 노동으로 땀을 흘리며 잘못된 세상을 바꾸려는 현장의 동지들을 믿는다.

백지화를 요구하며 1,235일째 진행된 천막농성 지킴이들,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을 진행한 동지들, 숱한 나날을 기록으로 남긴 동지들, 폭염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서각 새김질, 손으로 하나하나 붙여 만든 큰뒷부리도요와 새 모자, 한땀 한땀 따 내려간 몸자보, 수라 도감을 고무판에 새기고 어설프지만 흥겨운 풍물과 노동요로 우리를 즐겁게 한 팽수,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손수 만든 맛있는 점심과 간식을 준비한 동지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이미 내 속에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하라는 노래, 학교를 마치면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화은이, 비록 건강이 지금은 좋지 않아 함께하지 못하지만 22년 전 3보 1배 길을 따라 걷던 문규현 신부님과 여기 있는 보석 같은 동지들과 함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며 내 살아있는 동안 수라 갯벌을 살리자고 약속할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행진합니다.”


듣고 있는데 목소리가 설핏 떨렸다. 옆에서 보니 가느다랗고 그을린 그이의 왼 손목이 발발 떨고 있었다. 아니 떨리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그 떨리는 손목을 지탱하려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일생을 바쳐 투쟁해 온 반백의 청춘 완두가 그렇게 떨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 떨림이 아주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린 마음, 초심이었다. 수도 없이 해 온 또 다른 투쟁이 아니라 그렇게 해도 해도 역시 또 처음인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긴장과 기대와 그 무엇이었다.


이어 니키와 청명과 나와 다운과 알알이와 더덕과 김연태 대표와 가지가지와 인디와 토니와 오이가 개인 선언을 했다. 모두 8월 12일부터 9월 11일 서울까지 새, 사람 행진에 전 일정 참가할 이들이었다. 나는 이번 새, 사람 행진 260km를 하면 2017년부터 이어온 도보순례 거리 3000km를 채울 듯하다는, 그런데 이번에는 각 날짜에 있는 이름의 새가 되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해남에서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천막으로 왔다가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머물고 있는 나무가 왔다. 30여 년 전 바다였던 곳, 수라갯벌이 뒤편으로 펼쳐진 그곳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그이가 돌연 흐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듣지 못하는 바다의 울음을 새들은 내내 듣고 있지 않았을까? 바다가 울면 새들도 울 테니까.


저어새의 날이라 저어새 모자를 여섯 명이나 쓰고 있어서였을까? 다운이 수라갯벌에 대한 설명을 할 때쯤이었을까? 황새가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날아왔다. 화알짝 펼친 대형 날개로 우리를 쓰다듬듯 휘잉 돌아갔다. 잠시 후 가마우지 떼가 수라갯벌 위를 낮게 비행했다. 마치 새들도 우리 행진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친구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남북로는 중장비 차량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위험한 도로였다. 땡볕 아래 그 위험한 도로를 새 모자를 쓴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그사이 지난 7월 30일에 삭발한 오동필 시민생태단장이 온 힘을 다해 수라갯벌의 실상을 토로했다. 그런데 동 시간대 우리의 행진을 의식한 것일까. 하필이면 미군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폭주했다. 새만금신공항의 주목적이 미공군기지 확장임을 드러내듯이.




뙤약볕 아래 쉬지 않고 4km를 걸어서 새만금개발청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스포츠음료와 캔커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공처를 알지도 못한 채 음료수를 마실 때였다. 딸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우리는 시원한 음료수를 원하는 게 아니라 속 시원한 해결책을 원합니다.”


그처럼 시원한 요구가 또 있을까? 행진 내내 방송하던 딸기의 재치와 기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 음료는 새만금개발청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그것이 환대일 리는 없었고 개발을 반대하는 목마른 이들을 대하는 인정이라고 봐야 할까? 마신 음료를 다시 게울 수도 없는 채 새만금개발청이 보이는 맞은편 지점에서 새, 사람 행진 두 번째 날인 저어새의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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