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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erfect Days

2025년 11월을 보내며

by 일곱째별


[영화 몇 줄 소감]


노팅힐 : 마지막 기자회견 장면에서 옆자리 모르는 여자의 흐느낌. 영화관에서 나 같은 사람을 또 보다니. 그리고 에무시네마 1층 카페에서 본 원형 테이블


복수는 나의 것 : 영화 프로그램 학생 대본의 박찬욱 복수 시리즈 중 안 본 영화라 본. 밑도 끝도 없는 순환 고리 잔혹 복수. 신하균과 배두나의 젊은 모습


8월의 크리스마스 : 정원과 다림의 아이스크림과 오토바이 씬. 그땐 군산이 휑했네. 아무리 그래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Don't look up : 멸망을 앞두고 난교 파티는 있는데 종교 집회가 없다니. 게다가 뜬금없이 티모시 샬라메 등장. 기후위기와 핵위기에 AI…멀지 않은 미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진정한 공포란 그런. 이유 없는 살인.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지인 딸 결혼식이 있던 11월 8일부터 연이어 다음날까지 본 영화 다섯 편



교토에서 온 편지 : 입장을 바꿔 봐. 큰언니와 둘째와 셋째 그리고 엄마. 타카미야역


동주 : 윤동주에게 송몽규의 존재란, 하지만 결국은 사후에 더 오래 기억되는 윤동주의 시


퍼펙트 데이즈 : 주행 씬마다에서 나오는 음악과 주인공의 일정한 생활과 도쿄 화장실 홍보


브로커 : 아이유의 연기가 궁금해서 본. 보면서도 다른 배우의 연기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 단 배두나의 분홍 철쭉 장면 인상적, 동거남 존재가 부러웠던


자산어보 : 정약용의 형 정약전. 강진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실제 산길의 두드러진 나무뿌리가 나오는데 흑, 울음이. 조우진은 등장부터 웃김. 정약전과 가거댁 이정은 나란히 앉은 뒷모습, 영화 변산 감성


-친구 엄마 장례식이 있던 11월 15일 다음날부터 새벽까지 쭉 이어서 본 영화 다섯 편



영화를 연이어 다섯 편 정도는 봐줘야 직성이 풀리는 시청.

이 선택에서 어떤 알고리즘을 찾을 수 있을까?

여하튼 11월에 다섯 편씩 두 번, 열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참 지난 지금, 열 편 중 가장 많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면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을 보면서 내 생활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가,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나 싶다가, 결국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걸까 하는 생각


영화 평을 몇 개 찾아보다가 내 해석을 적어본다.

주인공은 매일 아침 하늘을 본다. 그 하늘에 미소 짓는다.

정갈한 생활을 한다.

일도 열심히 한다.

나뭇잎과 햇빛과 바람을 사진 찍지만 잘 찍지는 못한다.

나와 닮았다.


내가 추측하는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화장실 청소부지만 전에 전혀 다른 생활을 했었다.

일단 상류층이었을 것이다. 부자 여동생의 등장으로 보아.

아들이 있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우는 남자아이 에피소드와 꿈으로 보아.-영화 평에선 아버지와의 갈등을 추측한다.

현재는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돌아갈 생각도 없다.


계속 대사가 없다가 그의 주변에 사람이 등장한다.

남자 동료. 뻔한 젊은이. 그런데 이 남자에겐 좋아하는 여자 아야가 있다. 이 여자가 주인공의 테이프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자 슬쩍하는 동료. 데이트 자금을 만들려고 남의 테이프를 팔려는 어이없는 해프닝.

테이프 돌려주러 온 아야. 첫 번째 등장하는 여자 아야의 볼 뽀뽀는 심쿵하긴 하지만 비약이 심하다.

두 번째 여자, 조카. 주인공의 과거가 드러날 수 있는 장치. 핏줄이라 그런지 주인공의 생활과 잘 섞이는. 그리고 여동생의 등장으로 설핏 비치는 주인공의 고급스러운 본모습.

세 번째 여자, 중고서점 주인. 주인공이 사 읽는 문고판의 작가평과 서평을 이 정도로 한다면 대단한 수준.

네 번째 여자, 술집 여주인. 탁월한 노래 실력. 주인공이 그 여인의 사적인 장면을 목격하지만 어떻게 알고 따라온 전 남편의 암과 임박한 죽음과 부탁과 그림자 확인. 죽는 날까지 알고 싶은 건 알아가는. 어쩌면 술집 주인과 주인공의 로맨스가 공공연히 희망 사항이 되는.

아참 다섯 번째 여자, 점심 먹을 때마다 옆 의자에 앉아서 똑같이 샌드위치를 먹는 여자. 이쪽에서 인사해도 무반응하는.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와

마지막 장면 하늘을 보고 울그락 웃그락하는 주인공의 클로즈 업 얼굴.

애락이 오락가락하는 그 얼굴이 퍼펙트 데이즈의 표정은 아니겠지. 그러기엔 연륜이 켜켜이 쌓인.


보통 생각하는 퍼펙트 데이즈-완벽한 날들이란 어떤 감정의 나날일까.

내가 콩이와 산책할 때나 노란 소국을 바라볼 때의 감정이 퍼펙트 데이즈가 말하는 평화와 다르지 않을 듯.

내 주변에도 그런 단골 서점과 단골 식당과 술집이 있으면 좋겠다.

나란히 자전거 타서 그림자가 겹치는 친구도.



해마다 11월이면 다음 해 계획을 세우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그래서 12월 보다 한 달 앞서 나만의 연말 분위기를 가졌다.

이번 11월은 결혼식으로 인한 재회와 장례식으로 인한 슬픔과 즉흥적인 선택과 실패와 좌절로 무겁고 힘들었다. 그 집 옆을 지나쳐도, 아무때나 마음 편히 전화할 사람 하나 없는 내 인생이 참으로 쓸쓸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시편 필사를 하는 도중 20편 4절 말씀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정읍 동학농민혁명의 길을 걷던 3년 9개월 전 겨울, 되뇌었던 말.

'다시는 차선을 선택하지 않으리.'


나는 감정에 치우쳐 내가 원하는 것 대신 차선으로 절충하려 했었다.

또 나 보다 남이 위주가 되는 선택을 반복하려 했었다.

남에게 나를 맞추고 남을 의식하는 행위는 그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자.

그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perfectly


이렇게 2025년 11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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