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학기를 마치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는 길이었다.
단체버스 건너편 옆자리 학과장님이 내 뒤 학생에게 교수님(나)께 도시락을 드리라고 하셨다.
지시 받은 어떤 대답이 방심한 채 들렸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부산까지 가는 내내 뒷자리에 누가 앉았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보아선 안 되었다. 그 학생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잊을 수 없을 걸 알기에.
다행히도 모르는 목소리였다.
그 다음 주 수업 시간에 2023년 6월 <일곱째별의 정원 일기 4> 중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그리고는 한 주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박혀있던 뒷자리 목소리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맨 뒷자리에서 학생 대표 격이 사과했다. 그가 사과할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사과하는 게 맞을 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은 시키는대로 했을 테니까.
다음 날, 한 학생이 서점에서만 파는 손바닥보다 작은 시집을 선물했다. 그 시집을 보는데 내 생각이 났다며. 아마 전날 상심한 나를 위로하려는 몸짓이었을 터.
나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활짝 웃었다.
얼마 후 다른 학생이 유학시절 찍은 사진이라며 엽서 두 장을 선물했다.
나는 또 부드럽게 웃었다.
매 학기 학생들과 똑같이 잠도 푹 자지 않고 거의 실시간 피드백을 해주며 공모전 준비를 하고, 내 돈 들여 특강 강사를 모셔온다고 온갖 생색을 다 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고, 강사들과 인연이 닿게 해 주고, 강사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우리 학생들처럼 강사를 맞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학생들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강사의 저서를 사서 읽고 필사하고 질문지를 작성하니까. 오시는 분들은 질문지를 인쇄해서 답을 써오시고, 때론 제본까지 해 오는 분도 계셨다.
여하튼 그렇게 매 학기 수상작품을 끊이지 않게 이끌어내고 특강을 주최해도 격한 칭찬은커녕 한 줄 부정적인 교수 평가에 무너지는 게 겸임교수의 마음이다. 그런 내 마음에 간혹 따끈한 카푸치노처럼 온기를 주는 순간이 있으니 학생들이 그런 표현을 할 때이다. 선물은 꼭 돈으로 사야 하는 건 아니다. 서툰 한국어로 쓴 감사 카드나 본국에서 가져온 책갈피 등도 감사하다. 예전엔 카레를 해 온 학생도 있었다.
학기 초엔 지난 학기 학생들이 몇 번 찾아왔다. 본국에 다녀왔다며 인도네시아 과자를 가져오거나, 중간에 초코바를 세 개 사온 한국 학생도 있었다. 학점과 상관 없으니 진심이다.
공모전 준비로 점심시간 없이 보충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한 조에서 셋이 돈을 모아 편의점 김밥을 사 왔다. 내가 식사도 거르고 이어서 수업하는 걸 눈치채고 챙겨준 것이었다. 지난 학기에는 투덜대니 있던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 학생들이 많이 자랐다. 미국산 소고기는 웬만해선 먹지 않는데 그날 퇴근 길에 그 불고기 김밥을 남김없이 먹었다. 학생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그들에겐 김밥 한 줄도 큰 돈일 테니까.
이번 학기는 꽤 특별했다.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내 30년 지기 절친한 친구를 두 명이나 만날 수 있던 유일한 학기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1995년 지상파 방송사에서 근무할 때 만난 인연이다. 거대 방송사의 일개 소모품이라는 자괴감이 가득했던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에 나는 찬란하게 빛났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호감을 보였었다.
특히 9월에 온 방송작가는 메이저 지상파 방송 작가로 대학 강의도 오래 했었지만, 요 몇 년 간 두문불출하던 이였으니 서울에서 기차 타고 특강을 온 건 엄청난 일이었다.
매년 벌써 세 번째 특강 오시는 작가님은 내 인생에 손꼽을 강렬한 캐릭터인데 오실 때마다 학교와 학생들을 정말 좋아하신다.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는가.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둘 다 돌아가서도 학생들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었고 보충을 해주었다.
한 분은 특강 당일에도 학생들에게 강사료만큼이나 맥주를 사주셨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내가 웃는 모습이 예쁘고, 옷을 잘 입고, lms 질문 피드백이 매우 빠름을 학생 말을 통해 알았다), 3주 후에 또 그 이상을 학생들에게 베풀어주셨다. (우리 학생들도 마냥 받지만 않고 젠틀한 매너를 발휘했다.) 그러고 보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는 게 우리의 공통점 같다. 그 이유가 뭘까?
나는 글쓰기 공책에서 해답을 찾는다.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 5분 전과 혹은 매일 글쓰기를 시켰다.
그 공책을 걷어 한 권 한 권 읽으며 좋은 글에 밑줄 긋고 일일이 감상평을 써주었다. 대부분 성실했다.
그런데 그중 놀라운 공책을 발견했다.
기존에는 외국어를 번역해서 쓰는 외국 학생들 글이 현격히 논리 정연하고 감성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학생 중에도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었다.
눈알이 빠질 듯한 고통 중에 기쁨이 번졌다.
그들이 내게 선물을 준 것도, 칭찬 일색의 교수 평가를 해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희열은 내 열의와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학생의 재능을 발견해 칭찬해 주는 일, 그로 인해 그의 인생에 밝은 불빛 하나 반짝 들어오게 하는 일. 선생에게 그보다 더 기쁜 순간이 있을까.
전체적으로 궤도에 오른 학생들 덕분에 제 7회 대전특수영상영화제 산학연 전시회에서도 단연 우리 학교 부스만 특별했다. 이렇게 이번 2학기가 수료식만 남았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나를 오래오래 기억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는 게 당연하다. 대신 그들이 넓은 세상에 나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하기 바란다. 가정과 학교에서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세상을 사회에서 만나길 바란다. 그래서 30년이 지나도 자신이 부탁하면 어디라도 와 줄 수 있는 친구 두 사람쯤은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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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오디오 연결 잭이 완전히 꺾여 라디오를 듣지 못한다.
덕분에 다시 레코드 판으로 음악을 듣는다.
어제 80장의 레코드 중에 처음으로 튼 곡은
https://youtu.be/UdumCmfpR4A?si=CreQivR9NWpEhm9O
그리고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버전.
밤새 흰눈 내린 오늘 종강을 자축하며~
https://youtu.be/mB5YDXFdwaE?si=4O-U5VqXhulBza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