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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던 날,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여유롭게 집에 가고 있던 길이었다.
차 안에는 라디오에서 조용하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가을을 느끼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음악이었다.
차를 타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외국 가서 살까?"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당황하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해외 경험이 많았던 나는 내심 외국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래요!"라고 바로 대답했고, 다음 해 우리 가족은 정말로 해외를 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이렇게 실천력이 강하신 분들인지 몰랐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한국을 떠나게 될 줄도 몰랐다.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겨울 2월, 우리 가족은 그렇게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제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염이 있는 나는 평소 냄새를 잘 맡지 못하지만, 지금까지도 비행기 냄새는 이상하게 잘 맡아진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도착지에 따라서 비행기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다. 타슈켄트행 비행기에서 맡았던 냄새는 내가 이제껏 다녔던 나라들을 갈 때 탔던 냄새들과는 또 다른 냄새였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가 들렸다. 얼굴에 털이 굉장히 많이 난 남자들과 한국인의 얼굴을 가진 것 같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시간이 지나서 그 당시 들었던 외국어가 러시아어와 우즈벡어였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은 낯선 나라에 도착해서 너무 신기했다, 아니면 생소하다 표현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타슈켄트 공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선 나라라는 느낌보다 나는 너무 졸렸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있었는데 동생들의 놀고 있는 목소리에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거실 바닥에 깔린 빨간색 바탕에 우즈벡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는 카펫(capet), 한국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우즈벡식 벽난로, 마치 옷장으로 착각할 뻔한 양쪽 여닫이 방문들, 높은 천장에 달린 커다란 선풍기까지. 인제야 외국으로 이민을 온 것이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는 마당에서 밤새 내린 눈을 빗자루로 치우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엄마가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가족을 위한 한식 밥상에 식탁 위에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부모님의 지인들이 무말랭이, 김치, 오징어젓갈, 깻잎 반찬 등을 세지 않게 꼼꼼히 싸서 손에 쥐여준 것이 생각이 났다. 부모님은 우리 삼 남매와는 다르게 마치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 같았다. 나는 조금의 경계심을 가지고 집 밖에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거리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곳곳에 눈이 빼곡히 쌓였고 낯선 마을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것을 보면 마치 들키면 안 될 것을 들킨 사람처럼 급하게 대문을 닫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한국 생활의 문을 닫고, 또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을 시작할 인생의 문을 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