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벌렁거렸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이제는 사실 큰 감정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 중 하나가 망각이라던데, 나는 안 좋았던 기억이나 힘들었던 순간들이 오래되어서인지,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가물가물하다.
다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깨닫는다.
'아, 나 정말 오랫동안 찌질하게 울었구나. 참 찌질하게도 이야기했구나.'
나는 이 찌질함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서른 살이 되자 회사의 직원이 다시 열 명을 넘어섰다. 업력은 벌써 10년 차. 이제는 그저 먹고살기 위해 급급할 때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경영의 플렉스(Flex)'가 필요했다.
비전을 설명하지 않아도 따를 플렉스...
그동안은 운영이란 걸 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 대신 급여를 정산하고 세금을 계산하며, 고객을 관리해 줄 '팀장'이라는 조직이 생겨났다. 비로소 대표인 내가 '경영'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확보해서 경영이란걸 해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잘나가는 회사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네이버에 검색결과로만 보던 그 회사의 대표님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조언을 얻고 싶었지만, 보잘것없는 나를 만나줄 리 만무했다. 무턱대고 찾아가 노하우를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웹에이전시협회'의 문을 두드렸다. 가입을 앞두고도 수없이 망설였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가 저런 곳에 가입이나 할 수 있을까? 그 쟁쟁한 사람들 틈에서 내가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용기를 내어 들어간 그곳엔 내가 롤모델로 삼던 대표들이 임원을 맡고 있었다. 정모 날, 나는 마치 연예인을 보듯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네이버에서나 보던 회사들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술잔이 오가며 그들이 회사를 차리고 키워온 '역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모임에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 그만큼 열심히 활동했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듣고 꼼꼼히 기록했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면 새로 받은 명함들을 펼쳐놓고 해당 회사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다. 때로는 직접 회사를 방문해 책상 배치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회의실 인테리어는 어떤 모양인지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직장을 다녀본 적 없이 10년을 사업해온 나에게, 다른 에이전시의 현장은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고 즐거운 놀이터였다. 나는 마치 새내기 직장인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의 체계를 흡수했다. 한 달에 몇 번씩 있는 크고 작은 모임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79년생 동갑내기 대표 모임 등 온갖 이유를 만들어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나는 상당히 내성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웹에이전시 경영의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워 내성적인 기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궁금해했고, 그대로 따라 했다.
'홈페이지 제작'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갇혀 있던 내 시야가 넓어졌다. 분야는 다양했고 협업할 파트너는 널려 있었다. '아, 사업의 확장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특히 매월 신규 프로젝트를 수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에이전시 업의 한계를 극복할 고정수입 내가 평소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유지보수가 당장은 돈이되지 않아도 얼마나 크 수입원이 될지 그때 깨달았다. 따라다니며 배우다 보니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업력만 오래됐을 뿐, 매출 구조나 체계는 구멍가게 수준의 주먹구구였다.
나는 마음이 엄청 분주하고 불안했다.
성격 급한내가 좋은걸 보고나니 모든걸 동시에 다 따라하고 싶었으나 그럴 역량이 없었고 마음만 급급했다. 하나씩 하자. 차분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렇게 나의 '구멍가게 탈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실행은, 부끄러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우리 회사의 얼굴, '회사소개서'를 완전히 찢어발기는 것이었다. (자료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내가 최초로 만든 회사소개서를 한번 보여주고 싶다)
다음편에는 회사소개서작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