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대한민국 웹 에이전시의 여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인식은 개선되었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무례함의 본질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은 실무 역량이 아닌 가사 업무에 관한 것이었다.
"집에서 밥은 하고 사나요?" "집안일은 누가 합니까?"
상대방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가벼운 대화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은 나의 전문성을 사생활 뒤로 숨기려는 무례한 접근일 뿐이다. 나는 실제로 요리를 꽤 잘하는 편이지만, 비즈니스 테이블 위에서 내 요리 실력은 무슨상관인가. 나는 엄마가 아닌,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표로 그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례함은 때로 폭언의 형태로 선을 넘기도 했다.
과거 한 고객이 우리 직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무리한 수정을 요구한 적이 있다. 울고 있는 직원을 대신해 전화를 넘겨받자, 상대는 "아 진짜, 여자들하고 일하기 힘드네!"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나는 욱하는 감정을 누르고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돈, 대표님이 다 가지세요. 그리고 다른 업체 알아보세요.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대로 수화기를 차분히 내려놓았다. 그것은 감정적인 분노가 아니라, 리더로서 내 직원의 인격을 보호하는 것이 당장의 잔금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결정이라는 판단이었다. 다행히 그 결정은 옳았고, 그때 그 직원은 지금까지도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때로는 유흥을 비즈니스의 연장선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식사 자리에 예고 없이 지인을 동행하고, 식사가 끝나자 당연하다는 듯 노래방으로 이끌어 도우미를 호출하던 고객. "사실은 대표님이 좋아서 용기가 없어 그랬다"는 역겨운 궤변을 늘어놓던 그에게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남은 잔금을 떠올리며(ㅜㅜ) 그를 정중하게, 그러나 얼음처럼 차갑게 뿌리치고 그 자리를 나왔다.
돌아보면 이런 일들이 여자라서, 혹은 여대표라서 겪은 일이었을까?
어느 날 한 친구가 자기 회사의 무례한 대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대표가 온갖 몰상식한 행동을 해도 아무도 말 못 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자산'이 많아서라고 했다. 그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들으며 나는 당혹스러웠지만, 동시에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인격보다 그 사람이 가진 '힘'의 크기에 따라 예의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성장해야겠다 생각했다.
회사를 성장시켜서 나와 내 직원에게 함부로 할 수없는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자라듯 자연스럽게 커져가는 정도의 성장이 아닌 진짜 성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