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스... 에피소드
어제, 발행일인데 몸이 좋지 않아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꼭 써야 할것같아서 짧게 에피소드 하나 남깁니다
20여 년 전, 쇼핑몰 구축의 최종 관문은 결제대행사(PG) 연동이었다.
시스템 점검을 마치고 고객에게 연회비 25만 원을 포함한 계약 진행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상식 밖의 격분이었다.
연회비 존재를 왜 미리 알리지 않았느냐는 주장이었다. 분명 구두로 설명했고 계약서에도 명시된 부분임을 안내했지만, 대화는 이미 논리를 벗어나 있었다.
고객은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쏟아냈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나는 직함만 '홍팀장'이었을 뿐, 현장의 풍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인생의 수치라는 인격 모독까지 서슴지 않았다. 실수가 없었음에도 25만 원이라는 비용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나의 무능을 지적당해야 했다.
나는 고객과 감정적으로 맞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그의 폭언을 끝까지 들었다. 벽을 보고 대화하는 듯한 무력감 속에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기 위한 '종결 비용'을 제안한 것이다.
"대표님, 제가 충분히 설명해 드리지 못했다고 하시니 책임지는 의미로 연회비 중 5만 원을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내 잘못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5만 원이라는 명분을 던져주고 이 지옥 같은 대화를 끝내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할렐루야! 아멘! 홍팀장님, 역시 최고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 역시 크리스천이지만, 그 순간 들려온 '할렐루야'는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을 남겼다. 단돈 5만 원에 욕설은 찬송으로, 모욕은 찬사로 뒤바뀌었다.
전화를 끊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5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내 땀과 노력이, 그리고 나란 사람의 인격과 존중이 고작 그 정도 금액에 손바닥 뒤집듯 난도질당했다는 허탈함 때문이었다. 고객을 설득하려 애쓴 한 시간의 가치가 5만 원에 팔려 나갔다는 사실이 나를 울게 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종종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그날 내가 지불한 5만 원은 단순히 연회비의 일부가 아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합법적으로 떼어내고, 내 소중한 감정 에너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불한 '손절 비용'이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품격있는 사람으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
씁쓸하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