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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조금 ( feat. 유진목 )

by 시 선

"어쨌거나 나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그것이 결말이다. 그러므로 일기는 결말이 없는 글쓰기다. 완결되지 않는 행위를 매일 하면서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 유진목,『거짓의 조금』,94쪽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러다 남몰래 나의 눈물을 훔치게 되는 건 또 이런 걸까? 삶을 부정하는 사람의 글이 삶을 더욱더 긍정하게 만든다면 그건 모순일까. 삶을 멈추고 싶어 하는 사람의 간절한 바람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아니면 제목처럼 '거짓의 조금'인가. '조금의 거짓'인가.


삶을 겨우 겨우 붙잡고 애써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삶에 대한 온갖 의문을 품은 사람을 보며,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이 곧 '살고 싶다'라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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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그런 일들을 기억하고 있냐고 그만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부러 잊지 않는 것이 아니야. 기억은 생겨난 그대로 거기에 있을 뿐이야.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나는 엄마가 그 시절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엄마 나름대로 바꾸어도 좋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게 너무 힘들 테니까."


- 유진목,『거짓의 조금』,156쪽


우리는 때때로, 아니 자주, 가족으로 인해 괴롭다.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 같은 가족이 되레 상처를 준다. 내 등에 매달린 짐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 짐짝을 당장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른 척 살아가고 싶어진다. 허나 그게 생각만큼 잘 안된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내가 가족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과는 별개로 내가 가족을 버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해도 그 선택이 평생 나를 억누르고, 나를 따라다닐 것을 매 순간 예감한다. 그렇게,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면, 아주 잠시라도 웃을 수 있다면, 떠나서 살아가는 게 마땅하다. 아니면 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모른 체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있을 테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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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또래 아이들을 미워했다. 단지 그들이 가진 것을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증오했다. 그러면서 그들 앞에서는 아닌 척했다.

어떤 아이는 내가 자기를 미워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내가 자기를 증오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앞에서는 모른 척했을 것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말하고 싶다.

친구야. 너는 엄마가 다정해서 좋겠다.

친구야. 너는 아빠가 매일 집에 와서 좋겠다.

그러면 친구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 유진목,『거짓의 조금』,160쪽


내가 절대 누릴 수 없는 걸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아니 많다. 많았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도 엄마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 두 언니들마저도. 얼마 전에 나는 작은언니에게 '언니는 언제나 내 언니였어. 언니가 우리에게 오기 전부터'라는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언니도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는 각자 가정을 꾸려 엄마와 아빠 아이 가족이라는 평범한 궤도 안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게 우리가 선택한 가정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가고 있지만, 종종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가정사로 인해 외로워진다. 어쩌면 그 외로움은 전반적으로 내 삶에 깃들어있을 것이다. 그 외로움이 지금 나의 이 가정을 선택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떠나도, 버려도, 잊어도, 모른척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그런 외로움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비로소 받아들인다.




" 다른 것이 되지 못한 나는 나인 채로 살고 있다. "


- 유진목,『거짓의 조금』,146쪽


이 사람의 일기장이 편안하게 읽혔다. 결핍으로 이루어진 삶의 무늬를,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그 어떤 무늬를 보고 읽으며 가슴을 꼭 움켜쥐웠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너만 그런 건 아닌 걸. 억지로 모르는 척 살아갈 필요 더는 없어. 이렇게 네 삶이 소중한 걸.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걸. 결핍이 없는 삶은 알 수 없는 걸 너는 알잖아.


이것이 얼마나 귀한지.

이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 내가 선택한 이 삶이 얼마나 기적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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