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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아이, 선물 같은 아이 1

by 시 선

누군가 내게 결혼을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추천한다고 답하겠다. 그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아니라면 사랑하는 남녀가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다시 곧 물어올 게 뻔하다.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나요?”


주변에 아이를 키우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매일 울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겠다.


불행히도 그건 사실이다. 나도 매일 같이 그랬다.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그럼에도, 난 기꺼이 결혼을 추천하겠다.

평생 살면서 내 아이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소중한,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를 만날 수 있을까? 나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 그렇기에 나의 한정된 모든 자원(시간과 에너지와 관심)을 모조리 쏟아부을 수 있는 존재. 내가 더 이상 나이기만을 거부하는 존재. 끝내 나를 벗어나 나를 초과시키는 존재를 말이다.

누군가는 이제 이런 의문이 든다. ‘그런 존재를 꼭 만나야 하는가?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나?' 그냥 이대로 나인 채로 머물러 살아도 되지 않냐는 말이다. 왜 안 되겠는가. 당연히 되지. 되고말고. 그건 단지 그대에게 달렸다.


한 마디 덧붙여보겠다. 내가 키운다는 그 아이가, 나를 매일 울고불고 미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그 존재가 오히려 나를 어른으로 키워준다면, 그대는 과연 믿겠는가? 그 존재가 내게 더할 수 없는 기쁨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준다면, 이 또한 믿겠는가? 이것으로 그대는 '결혼하겠노라’ 설득당하겠는가.

물론 아이가 아니어도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도 행복한 순간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없어도 사는 건 누구나가 힘든 일일 테다. 사실 정답은 없다. 그것을 누가 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각자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삶을 선택해 봤으니까, 이 세상에 그런 존재를 만났고 알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그 존재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으니까.




나에겐 나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둘이나 있다. 남매다. 첫째는 딸이고 현재 중학교 1학년이다. 둘째는 아들이고 초등학교 2학년이다. 틀림없이 나와 남편에게서 온 두 아이는 참으로 많은 점이 다르다. 그런 두 아이를 대할 때면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예언자(The Prophet)』 속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삶이 스스로에 대한 갈망을 통해 온 아들딸들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 오지만 당신에게서 오지 않는다. 비록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소유물은 아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아이는 잠시 나를 거쳐 가는 것이지 결코 내게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는 더 큰 존재(신, 삶, 우주)의 산물이지 내것이 될 수 없다. 품 안에 자식이지 결국엔 나를 떠난다.

그걸 알기에, 나는 그저 두 아이에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기에, 그들이 정말 나를 스쳐 지나가기 전에, 지금 이 순간이라도 마치 두 아이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귀중한 보물처럼 간직하고 싶다.


첫째는 내게 운명 같은 아이다.

내가 그 누구와 결혼하더라도 내 아이로 태어날 것 같은 아이다. 내 인생에 있어 꼭 만나야 하는 운명 같은 아이다. 이 운명을 만나지 않고서는 지금의 나는 여기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가 오면서 내 모든 게 바뀌었다. 그 당시 나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자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을 꿨다. 남편과 둘이 나란히 앉아 일출을 바라봤다. 떠오르는 해가 커도 너무 커서 남편에게 해를 가리키며 말했었다. “저 해 좀 봐. 정말 크다!” 빨갛고 노랗게 타오르듯 선명한 해가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온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추던 그 찬란한 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꿈이 나의 사업을 번성시키는 소위 말하는 대박 나는 꿈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후 나는 사업에 대한 열정이 점점 식어 갔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 같아 보였다. 다른 잘 나가는 쇼핑몰과 비교하면서 심한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나 자신을 마구 비하하면서 괴롭혔다. 그때까지 내겐 옷! 옷! 옷! 옷이 전부였는데, 그게 다 부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업을 그만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의 심리적 입덧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몸과 마음, 나를 이루고 있는 내 호르몬 하나하나가 다 옷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동안 나를 지탱하고 나를 움직이게 했던 나의 꿈을 매몰차게 내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몇 달 전 대박 나는 꿈이라고 믿었던 건 다름 아닌 태몽이었다. 그래서 첫째의 태명이 ‘해’다. 이름도 ‘세울 建(건)’, ‘빛날 輝(휘)’를 써 ‘세상을 빛나게 한다’라는 뜻으로 ‘건휘’라고 지어주었다.

나는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임신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내겐 좋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내게 숙명이었다. 더구나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 사업을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막막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과감히 사업을 포기했고 나는 슬기로운 임신 생활에 돌입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 나 자신을 위해 살았던 때가. 그걸 온몸으로 느꼈다. 물론 내 안에 아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건 나를 위한 거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난 나를 위해 아주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몸에 좋은 것을 먹었고, 특히 과일을 좋아했다. 오전엔 뒷산으로 산책하러 다녔고, 요가와 그림을 통한 심리학도 배웠다. 책도 많이 읽고, 역사 공부도 한참 재미있게 했다. 생활의 모든 리듬을 내게 맞췄고 계획했다.


그리고 옷은 싹 다 잊었다. 아예 옷을 모르던 사람처럼 옷은 그만 다 잊어버렸다. 잊기로 작정한 듯 옷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그전까지 만해도 내겐 옷이 전부였는데 내 모든 열정을 다 바쳤었는데, 이제 옷 대신 그 자리에 나의 첫째 아이 ‘해’가 들어선 순간이었다. 아니 좀 더 명확히 따지면 ‘해’가 내 꿈이었던 옷을 강제로 쫓아내고서 나를 장악한 거였다. 나를 완전히 차지한 거였다. 그러자 ‘해’는 더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스스로를 괴롭히며 집착해오던 헛된 꿈인 '옷’을 내려놓고 내 안에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받아들이자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임산부처럼 머리가 아프다거나 토한다거나 하는 등 보통의 입덧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10개월을 넘게 임신 생활을 꽉 채우고나서 첫째를 출산했다. 아주 힘들게. 정말 개고생을 다 했다. 병원에서 12시간을 넘게 진통하다 결국엔 제왕절개를 했다. 당시 난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가 좋은 엄마의 표본인 줄 알고 그토록 자연분만을 원했다. 양수가 적어서 자꾸 유도분만을 권하는 여의사를 피해 나이 많은 남자 의사를 찾아가 자연분만하게 해달라고 했다. 여의사만 고집하던 내가 자연분만을 하고자 막달에 의사까지 바꿨지만, 진통 중에 내 골반은 끝내 4cm 이상 벌어지지 않았고 안 그래도 적은 양수가 중간에 터지는 바람에 탯줄이 아이의 목을 감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쳐 그날 퇴근했던 의사를 다시 불러 급하게 제왕절개로 어렵게 나의 ‘해’를 만났다. 아이 머리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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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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