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축복받지 못한 아이

by 시 선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는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가끔 인상 좋은 어르신을 보면 내 아버지였으면…! 내 아버지라면…! 상상하곤 한다.

가까이 시아버지도 계시지만 그 이상 다가가지는 않는다.

시아버지는 이미 세 남매의 사랑과 존경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쳐 보인다.

내 아버지도 원치 않았던 나의 사랑과 존경이 굳이 필요할까 싶다.


몇 년 전 시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나와 시댁식구들은 다 같이 결혼식 당일 웨딩홀에서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았다. 일찍이 메이크업을 마친 시아버지가 나와 시누이가 메이크업받는 자리에 오셨었다. 시아버지는 내게 한 마디 농담과 시아버지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툭 던지시고는 나를 지나쳐 큰 딸 옆자리에 앉으셨다. 딸에게도 유쾌한 농담을 건네시며 얼굴에는 한가득 함박웃음을 띄운 채였다. 그때 시아버지가 하셨던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시아버지의 눈빛만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사실, 한동안 내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아무 때나 반복 재생되곤 했다. 그 영상에는 시아버지의 눈빛만을 클로즈업했다. 딸을 보고 있는, 너무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예쁘다는 듯이, 그저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햇살 같이 따뜻하고 환한 눈빛을.


어쩌면 그 눈빛은 내가 평생 바라던 것이었다. 평생을 바랐지만 받을 수 없었던. 앞으로도 받을 일이 전무한. 그래서 난 그 눈빛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것일 테다. 나를 향한 눈빛은 아니었으나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봤을 어떤 한 사람을, 나는 상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내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쁘다는 듯이 내 존재가 그저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봐주는 사람이 내게도 필요했다. 그 어떤 한 사람,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나, 왜 나를 버렸나.


(그는 끝내 나를 버려두었다.)


나는 그 사람을 딱 두 번 마주친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은 내가 열 살쯤 되었을까. 학교 끝나고 버스를 타러 시내를 가로지르던 중 그 사람이라 생각되는 어떤 아저씨와 마주 걸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진짜 내 아버지였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시골 할머니집에 있던 엄마의 결혼사진을 보고 미루어 짐작하여 내가 그 사람을 내 아버지였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 난 너무도 확신에 찬 나머지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고 자신의 딸인 나를 보고도 모르고 지나쳤을 그 사람을 내내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 찰나의 마주침과 동시에 지나침이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창피하여 아무에게도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저 혼자 곤두박질쳤던 가슴 어딘가를 문지를 뿐이었다.


또 한 번은 내가 대학생 때였다. 그 사람이 엄마에게 잠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오래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로 그 사람과 이혼하고도 마치 줄곧 그를 기다려온 사람처럼 한 여자의 어리석은 순정같이 쉽게, 너무도 쉽게 그를 받아주었었다. 그 어느 날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외식을 했었다. 아빠라는 사람과 마주 앉았다.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소주잔도 부딪쳐봤다. 지난 세월 같은 건 아예 없었다는 듯이 원래부터 우리는 이렇게 밥을 먹고 있었다는 듯이. 이상하리만큼 낯설지가 않았다. 20년 넘게 나를 모른 체하던 그 사람을, 크는 내내 원망만 했던 그 사람을 나는 (엄마처럼 쉽게, 너무도 쉽게) '아빠'하고 불렀고, 그게 또 겸연쩍어 엄마를 위해서 그런 거였다며 자신을 기만했었다. 솔직히 내 눈과 똑 닮은 그 사람의 눈을 마주하면서 내 뿌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와 언니들과 다르게 유달리 크고 짙은 나의 이 눈매가 그 사람에게서 온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아늑함을 느끼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사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지 못한 아이였다. 모두를 실망시켰다.


'딸이야, 또 딸이야, 아들이기를 바랐었는데, 아들이어야만 했었는데, 그래야 네 아비가 돌아올 텐데, 네가 아들이었어야 그 인간이 돌아오지, 네가 아들 일 줄 알고 너를 낳았는데.' 갓 나은 너를 품에 안으며 스물아홉 살 엄마는 가슴속으로 울었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또 딸이군, 그럴 줄 알았다니깐, 난 아들을 원해, 딸은 지금도 충분해, 딸은 더 필요 없어, 아무 쓸모없다고.'


두 부모의 이혼을 코 앞에 둔 너는,

아직 너무도 어린 갓난아기인 너는,


그저 잠자코 있어야 했다. 순해야 했다. 착해야 했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했다. 그게 너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그것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너는 생리적 불편함과 욕구에 무뎌야만 했다. 예민하여 금세금세 알아차렸다면 그렇게 까다로운 아이라면 너는 구박을 더 받거나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버려질지도 몰라 불안에 떨었다. 너는 그저 그렇게 무디고 순하고 가만히, 얌전히 있어야 했다. 그래, 너는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다행히,

아니 기적같이!

버림받지 않았고 다른 집에 양녀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껏 너를 탓하며 살아왔다.

(넌 성격이 왜 그 모양이냐고, 바보 같냐고, 생각이 없냐고, 머리는 인테리어냐고, 넌 화낼 줄도 모르냐고, 넌 왜 그리 똑 부러지게 말도 못 하냐고, 넌 자존감도 없냐고, 넌 왜 남들에겐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엄격하냐고, 넌 왜 너를 비웃느냐고, 비하하냐고, 작은 실수에도 너는 왜 너를 용서하지 못하냐고, 남들은 그냥 지나칠 말에도 너는 왜 그리 얼굴을 붉히냐고, 부끄러워하냐고, 벌벌 떠냐고, 기냐고,,,)




누군가는 내게 '삶을 살아가는 생에 뜨거운 무언가가 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생에 뜨거운 무언가! 그것이 무엇일까?


그런 것이 내게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저 살고 싶어서 그랬어. 악착같이 숨을 쉬었어. 입술을 옴직거려 젖병을 빨았어. 엄마 젖은 나오지도 않았어. 나는 아예 엄마 젖 맛도 못 봤데. 갓난아기에겐 엄마 젖이 생명줄인데 그 생명줄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어. 길거리에 개나 고양이도 엄마젖을 빨아먹는데, 나는 엄마젖도 빨지 못했어, 빨 수 없었어. 엄마 젖조차 나를 반기지 않았어. 모두가 나를 축복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래도…, 그래도 난 살고 싶었어. 태어났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너는 그렇게 내게 응답했다.

생은 내게 절로 얻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너를 모른 체하며, 너를 숨죽이며, 너를 잃어가며 겨우 겨우 지켜낸 생이라는 것을.



그토록 절실했던 무언가였음을.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기어코 피어나야 했던 꽃이 바로 '나'였음을.



말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갓난아기에게 마저.




keyword
이전 19화하얀 봉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