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나는 자꾸자꾸 웃어 보였다.
첫째는 임신부터 출산, 모유 수유, 타고난 기질까지 육아 내내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사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땐 내가 초보 엄마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서툴러서 덩달아 아이도 불안했을 거다. 안 그래도 예민한 기질이 한층 더 부풀었을 테다. 첫째와 그 운명 같은 만남은 많은 시행착오와 고된 훈련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더니, 엄마의 성장과 함께 둘째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둘째는 내게 선물 같은 아이다.
솔직히, 첫째에 하도 치여 둘째 생각은 없었다. 뜻밖에 찾아온 선물 같달까. 둘째는 임신할 때부터 첫째와 많은 것이 달랐다. 첫째 때는 건강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했으나 둘째 때는 게으르고 나른하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매운맛과 고기, 인스턴트 푸드를 즐겨 먹었고, 임신요가나 태교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틈틈이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뜨개질을 했다. 내키는 대로 그저 편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와 나는 각자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1년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연락이 뜸한 참이었다. 친구는 다짜고짜 말했다. “선혜야, 너 혹시 임신했니?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이거 태몽 같아.” 그 당신 임신초기여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때라 난 적잖이 놀랐다. “선혜야…” 친구는 뭔가 중요한 말을 꺼낼 때면 이렇게 내 이름을 먼저 부르곤 했다. 자기 말에 귀 기울이라는 듯이. “우리가 고등학생으로 돌아갔어, 내가 너한테 줄려고 전이랑 떡을 엄청나게 많이 싸서 학교에 갔거든, 내가 너 먹으라고 주니까, 네가 먹지 않고 교탁 앞에 왠 젊은 남자 선생님한테 갖다 주는 거 있지. 선혜야…! 너, 둘째는 분명히 아들일 거야.” 내가 임신했다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는 이미 둘째의 성별을 못 박아두고 있었다. “선혜야, 키가 훤칠한 훈남 스타일이야. 호호호!”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둘째가 정말 아들이었다.
둘째를 임신한 그쯤 우리 집에는 행운이라는 거북이가 살았다. 남편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아파트 쓰레기 처리장 하수구에 버려져 있는 작은 거북이를 주워 왔었다. 우리는 왠지 이 거북이가 행운을 가져다줄 것만 같아서 이름을 행운이라고 지어줬다. 그리고 행운이가 데려온 행운이 바로 우리 둘째라고 믿었다. 그래서 둘째의 태명이 행복이다. 행운이가 행복을 가져왔다면서 첫째가 지어줬다. 이게 태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임신 내내 나는 거북이 꿈을 자주 꿨다. 아마도 내가 행운이를 매일매일 들여다봐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둘째에게 말하는 공식적인 태몽은 따로 있다. 그건 내가 임신을 하기도 전에 꿨다. 하얀 털이 북실북실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이 어마무시하게 큰 호랑이가 다가오는 꿈이었다. 나는 으레 겁이 났지만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 호랑이를 기다렸다. 이윽고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 호랑이를, 그 큰 얼굴을 나는 두 팔을 벌려 꼭 안아줬다. 꿈이 예사롭지 않아 주위에 임신한 사람들을 찾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주인 없던 태몽을 둘째에게 줬다. 둘째는 엄마가 네 태몽으로 아주 크고 무서운 백호를 봤다고 얘기하면 굉장히 흡족해하는 눈치다.
나는 둘째 때에도 양수가 부족해 일찍이 자연분만을 포기하고 적당한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3월 3일, 첫째의 유치원 입학식이 있던 날이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했던 첫째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유치원에서 마련해 준 입학생 자리에 앉지 않고 아빠의 품에 안긴 채 입학식을 치렀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나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보다 첫째가 당분간 엄마도 없이 어떻게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할지 그것을 더 걱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내 둘째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담당 여의사 선생님께 농담을 건넬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 둘째의 엄마는 확실히 달랐다. 더구나 둘째는 타고나기를 식욕이 넘쳐 엄마 젖도 잘 빨았다. 그 어려웠던 모유 수유가 저절로 됐다. 내가 둘째 엄마라서 그런 건지 둘째의 기질이 마냥 순한 건지, 아이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잘 잤다. 정말이지 선물 같았다. 어딘가 신이 있다면 ‘네가 첫째 키울 때는 고생이 많았으니, 둘째는 좀 쉽게 키워보렴’ 하는 것 같았다.
둘째가 가장 선물 같았던 순간은 나를 향해 웃어 보일 때였다. 첫째는 한 번 웃기기가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둘째는 내가 웃는 얼굴 한 번 보여주면 그대로 따라 웃는 게 아닌가! 아이 웃기는 게 이렇게나 쉽다고? 어찌나 감동이고 감사한지! 아이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나는 자꾸자꾸 웃어 보였다. 자꾸자꾸 웃어 보이니 애 둘 딸린 독박육아시절에도 나의 뇌에서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던 것 같다. 아이의 웃는 얼굴은 아홉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먹힌다. 다만 그 순서가 좀 바뀌었다. 요샌 엄마를 웃게 하려고 저가 먼저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이다. 그럼 나는 화가 나고 기분이 언짢다가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아이의 웃는 얼굴은 어느새 무기가 되었다. 저도 모르게 엄마의 심장을 쿵 하고 저격한다.
흔히들 ‘둘째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둘째는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스럽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첫째가 존재만으로 사랑스럽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전적으로 엄마의 눈에 달렸다. 첫사랑과도 같은 첫째와의 경험으로 둘째의 엄마는 이제 어느 정도 숙련된 베테랑 엄마가 되었고, 아이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으며, 아이에게 자기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은 연습을 이미 수 없이 해온 터라, 둘째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모든 동물의 새 생명은 다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제야 비로소 엄마는 제대로 된 눈을 가지게 된 것뿐이리라.
둘째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한다. 허세를 떨지언정, 눈치가 없을지언정. 자신감이 충만하다. 대범하고 모험심 또한 강하다. 어딜 가나 앞서나가 이 소심한 엄마의 마음을 꽤나 졸이게 했다. 특히 둘째가 19개월쯤엔 이미 누나의 킥보드를 기막히게 잘 타게 되었는데, 그 짧은 다리로 짧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속도를 즐기며)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게 내겐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 불안하지 않은 척, 여유만만인 척 연기를 했다. 엄마는 나와 다른 너의 기질과 본성을 존중하고 그런 너를 충분히 믿고 있다고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나는 진짜 그런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 아이의 뒷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는 말을 곧잘 하고 다닌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두 아이를 향한 사랑과 노력이 언제나 나를 초과시킨다.
내 아이에겐 죽어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나 자신부터
좋은
괜찮은
건강한 어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를 성장시킨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괜찮은 어른을 꿈꾼다.
내겐 운명 같은 아이, 선물 같은 아이가 있다.
앞으로 이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갈지,
이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할지, 어떤 어른이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른다.
(물론 그전에 남편부터 먼저 만날 것을 잊지 않았다.)
-끝-
-3편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