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되어야 할 누군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 ‘여전히 누군가가 되려는 중인 나’ ‘그 누군가가 되고 싶은 나’를 되뇌는데 코끝이 찡해온다. 두 눈이 벌게진다.
그냥 날이 좀 이래서 그래, 스산해서…, 나무에 이파리들이 다 메말라서,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이파리가 그런 줄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안쓰러워서…, 하천에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어서, 그중엔 누군가의 서류 가방 같은 것도 있어서, 그런데 새들의 노랫소리는 너무나 맑고 청량해서…라고, 해야 하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다. 어제 큰언니를 만나고 왔다. 우리는 홍대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난 30분 먼저 도착했다.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그 넓은 공간엔 나까지 딱 세 테이블만 찼다. 모두 햇살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천장과 외벽이 유리로 된 창가였다. 언니는 예약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왔다. 우리는 파스타와 샐러드, 리소토. 수프를 시켰다. 생각보다 음식이 빨리 나왔다. 식사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을 때 직원이 테이블 타임이 1시 30분까지라고 알렸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여기 자리에 앉을 때 얼핏 1시 30분이란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음식도 다 먹었고 이제 슬슬 나가려고 립스틱을 다시 바르는데 아까 그 직원이 다시 나타나 난처한 듯 테이블 시간이 다 지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테이블 타임이라는 게 1시 30분까지가 아니라 1시간 30분 동안이라는 말이었다. 예약 시간은 12시였고 내가 30분 먼저 와서 기다린 시간까지 포함해 우리의 테이블 타임은 이미 다 끝났다는 소리였다. 정확히 우리 보고 어서 나가라는 뜻이었다.
언니는 계산하면서 음식은 맛있게 먹었는데 나갈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직원은 입으로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했지만, 전혀 죄송한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자리가 없어서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건 차치하더라도 예약 시간보다 먼저 왔다고 동석이 오지도 않았는데 테이블 타임을 카운팅 했다는 것부터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AI도 아니고 이곳 운영 원칙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내가 보기엔 전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음식이 나오고 한 시간도 안 돼 나가라는 밥집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아, 이래서 사람이 없었구나’ 누가 봐도 빤한 비밀 하나를 풀어낸 것 같았다. 이 황당한 에피소드를 같이 곱씹으며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언니에게 준비한 선물을 꺼내 놓았다. 나름 포장한 게 그럴듯해 언니가 혹시 뭔가 비싸거나 한 그런 것을 기대할까 싶어 진작에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해둔 터였다. 그럼에도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언니가 꺼낸 것은 모과청 한 병이었다.
“아들이 주워 와서 한 번 만들어봤어.”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사실 내겐 굉장한 별일이었지만 말이다.
“세상에! 이 귀한걸!”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귀한 것이라는 걸 언니는 알아줄 것 같았다. 워낙 가만히 있지 않고 손이 빠르고 요리도 잘하는 언니는 전에 내게 이런 귀한 것들을 종종 손수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중에 단연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봤던 밤 조림이었다. 영화만 보더라도 만들기 무척이나 번거로운 그걸 언니는 내게 아낌없이 선물했었다. 한참 두 아이의 집중 육아 기간에 육퇴를 하고 난 밤에 두세 개씩 꺼내 혼자 야금야금 아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언니가 직접 담근 포도주를 함께 마시며 육아 스트레스와 집안일에 지쳐 피곤한 몸을 자위하곤 했다. 그때 어찌나 눈물 나게 고마웠던지. 얼마 전 모과청을 유리병에 담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우리 큰언니였다. 요즘 혼자 미용실 운영으로 일상이 바쁠 언니에게 이번에는 내가 이런 귀한 것을 선물할 생각에 몹시 설렜다.
그리고 또 하나 준비한 게 더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써왔던 원고였다. 이제 투고만 남은 그 원고를 프린트해 엮은 작은 책자를 언니에게 보여주고자 일부러 챙겨 왔다. 사실 그동안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는 언니에게 하지 않았었다. 언니가 알고 있는 나의 글은 2년 전 교육청에서 출간한 문집에 실은 것이 다다. 현재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라는 것도 알리지 않았었다.
그걸 알면 언니는 내 브런치 스토리를 구독할 것이고, 내 글을 매번 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을 언니가 읽을 것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찌릿찌릿 저리기 때문이다. 내가 쓴 어떤 문장도 언니에겐 예사롭게 읽히지 않을 거라는 걸 왠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언니는 도저히 내 글을 그저 가벼이 편안하게 읽고 넘길 수 있는 무심한 독자가 못 되기 때문이다. 그런 열렬한 독자의 존재는 내게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 책자의 제목은 <도서관 가는 길>이다. 직접 찍은 사계절 사진과 에세이와 시를 담았다. 표지 사진에는 길냥이 두 마리가 있는데 그걸 보자마자 귀엽다며 언니는 콧소리를 냈다. 네가 이걸 다 쓴 거냐며 놀라워했다. 지은이의 사진을 보고 목차를 훑었다. 프롤로그를 소리 내어 읽었다.
“꼭 너 같은데?”
“내가 썼으니까 나 같겠지?”
그래서, 그 글들이 죄다 너무 나 같아서, 그동안 언니에게 글 쓴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내가 커피를 받으러 간 사이 언니는 <나의 케이트 모스, 큰 언니>라는 글을 읽었다. 어렸을 때 내겐 우상과도 같았던 큰언니를 주인공으로 한 꼭지 글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언니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언니의 눈물은 금세 내 눈에도 고이기 시작했다.
나의 브런치 스토리도 보여줬다. 내가 이렇게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편씩 꼬박 여기에 글을 발행하고 있노라고,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 다닌다고도 말했다. 브런치를 쓱쓱 내리다 읽어 주고 싶은 글이 있어 언니 앞에서 낭독을 했다. 글의 제목은 <축복받지 못한 아이>였다. 축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 내가 기억할 수도 없는 그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대신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누구보다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을 언니였다. 그 아이에게 분유를 타 주고 잠 못 들고 보채면 재워주기도 했을 여덟 살 더 많았던 어린이가 바로 큰언니였다.
그 기특한 어린이가 지금 내게 무심하지 못한 열렬한 독자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눈물 콧물 쏙 빼가며 끝까지 낭독을 마쳤다. 눈물로 젖은 휴지 더미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평소 내 얘기는 잘하지 않던 내가, 언니 얘기를 대개 들어주던 내가, 오늘은 이 글로써 내 얘기를 왕창 쏟아냈다. 이제는 괜찮다는 듯이. 내가 언니에게는 이래도 된다는 듯이. 축복받지 못한 그 아이는 실컷 응석을 부렸다.
언니가 먼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나는 또, 다시 눈물을 글썽인다. 어렸을 적 할머니 시골집에서 살 때 언니가 이따금 왔다 가는 날 같았다. 언니가 맹장에 걸려 집 앞마당에서 데굴데굴 굴다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같았다. 난 더 이상 그 시절 어린아이도 아닌데, 지금 언니와 작별하는데 왜 눈물이 나려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언니는 내 작은 책자를 천천히 넘기면서, 내 글을 수고스럽게 읽으면서,
‘내 동생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출간한 것도 아닌데,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여전히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데, 누군가 완성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언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언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내내 누군가가 되고만 싶어진다. 그냥 이대로 나 혼자만 만족하는 나 말고 누가 봐도 멋지고 근사하고 부러운 자랑할 만한 누군가로 완성되고만 싶다. 이것 역시 무슨 감정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되어야 할 누군가’에 대한 열망이 이토록 간절하다는 것, 그것만큼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