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없음에 대해

기우가 많다는 건 자기가 약하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by 시 선


"머리가 다시 또르르륵 굴러간다. 정말로 생각이 없을 수 있는가? 멈춰지긴 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굴러가는 생각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좀……활력이 돌기도 했다. 사실 우리를 잡아먹는 건 생각이 아니라 걱정일지 모른다. 아직 벌어지지 않는 문제. 곧 덮쳐올 것만 같은 불운하고 불길한 기운. 나는 그 모든 기우들을 '생각'으로 한데 뭉쳐버리고 이제 '그만 생각하고 싶다'라고 퉁쳐온 게 아닐까."

Axt062, 김 서해 에디터, <생각 없음 상태를 지향>


그럴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생각이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고 산다. 머리는 인테리어냐고. 생각이 많다는 소리보다는 확실히 자주 들었다. 전에 작은 언니는 내가 누군가를 판단할 줄은 몰랐다고까지 했다. 사실 나 되게 생각이 많은 편인데… 생각하느냐고 행동이 느려지는데, 나 역시 쉴 새 없이 생각하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런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생각 없음을 기우 없음으로 여겼던 거다. 기우란 무엇인가?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 옛날 중국 기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유의어로 군걱정, 별걱정, 헛걱정 등이 있고 ‘기우를 덜다’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 내게는 이 기우가 별로 없던 거다. 생각 없다고 나를 핀잔하던 사람들은 여지없이 기우가 많은 스타일의 사람들이었다. 대체로 자기 주변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많아 불안한 사람들. 그들이 보기엔 나의 이 느리고 그저 느긋느긋 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생각 없음이 눈에 거슬렸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그렇게나 생각이 많은데 (사실 대부분, 기우들) 그래서 아주 불안하고 두려운데 앞으로 닥쳐올 무언가가 겁이 나는데, 그러므로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얼굴이 저절로 구겨지는데, 앞에 있는 내가 심히 철이 없고 한심하게 보였던 거다.


그나저나 나는 왜 생각이 없는 걸까? 솔직히 어떤 면에서 나는 꽤 예민하고 소심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그냥 던진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마는 얇디얇은 자존감의 소유자다. 그렇게 스스로 위태로운 내가 기우는 왜 별로 없는 걸까? 충분히 있을 만한데 말이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귀찮음’ 때문이지 않을까? 확실하지도 않은 불운한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어쩐지 좀 귀찮은 일이다. 시간 낭비 같은 것이다. 사실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겐. 이 세상은 무수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낙관해도 잘 될까 말까, 행운이 올까 말까 한 일들을 앞서 걱정한다고 되겠는가. 아니, 절대 안 된다. 내 생각에 그런 걱정은 하고자 하는 일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그 시간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 게 낫다. 어떤 일이든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덤벼들어야 가능해진다. 그게 기본값이다.

더구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잘 된다는 생각은 잘 될 것 같은 꼬리를 내어 준다. 그러니까 생각의 방향이 잘 되어가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생각의 방향은 잘 되는 행동을 유발할 것이다. 긍정적인 씨앗이 긍정의 열매를 맺는다고나 할까. 쓰고 보니 이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여태 왜 그걸 몰랐지. (나만 몰랐나?)

기우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얘는 더 잘 문다. 희한하게.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자극에 더 취약하다고 한다. 그건 아마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일 테다. 생물학적으로 약한 인간은 그런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식동물들을 보라. 항상 예민하게 주위를 감각한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껑충하고 달아나기 일쑤다. 초식동물인 애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러니까 기우 없이) 느긋하게 햇살이나 맞으며 이파리를 따 먹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삽시간에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더 센 놈한테. 항시 그 초식동물을 노리는 육식동물한테.

그렇다면 기우가 많다는 건 본인이 약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 아닐까? 약하니까 기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어쩌면 난 생각보다 강한 인간인 것인가? 선천적인 기질로 봐서 나 스스로 약자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면 강자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저 생각 없는 초식동물인 것인가? 그러니까 난 타고나기를 강자일 수도 있고 강자들에게 먹힐만한 약자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주위에 나를 언제고 잡아먹을 만한 육식동물을 둬서는 안 되겠다. 나를 생각 없는 초식동물쯤으로 여기는 자들을 분별해서 그들과는 거리를 둬야 할 것이다.


반면에 내가 약해 보이더라도 강하다고 믿어 주는 사람들은 곁에 둬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약자인지 강자인지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강자라고 믿어 준다면, 나의 이 생각 없음을 그저 내가 강해서 그런 줄로 알고 진짜 강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도 당연한 맥락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를 믿고 존중해 주는 존재를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다. 그 믿음과 존중에 의지해 스스로 노력하게 된다. 그 노력이 결국엔 자신을 강자로 만드는 것이다.

기우 없이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강자인 것이다. 기우가 없으므로 쓸데없이 진을 빼지 않는다. 기우가 없으므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기우가 없으므로 좋은 방향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 좋은 건 계속해서 좋은 걸 곁에 두게 한다. 그게 강자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이 생각 없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기우가 별로 없음을 다행이라 여기자. 누군가 내게 "넌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하고 물어 오면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지금 정말 내가 걱정이 되어서 마음을 쓰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나를 생각 없는 약한 초식동물쯤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나의 생존을 위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 이런 건 생각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자. 반드시 생각을 하자.


내가 초식동물이든 육식동물이든 사람이든 신이든 그 무엇이든, 최소한 내 주위에 누구를 둘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나를 좋게도 나쁘게도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왕이면 좋은 꼬리를 물자. 좋은 꼬리를 따라가자. 그전에 나 역시 좋은 꼬리를 내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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