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크리스마스가 끝났다. 이렇게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데. 그날만큼은 몹시 진지해진다는 게 문제다.
사실 올해는 내가 특별히 준비한 것도 없었다.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고 하면 그건 아마 핑계일 거다. 핑계는 어떤 일이든지 게을러지거나 무신경해도 되는 이유가 되어준다. 그런 핑계에 기대지는 않겠다. 그건 좀 비겁하다고 느낀다.
크리스마스 아침, 아홉 살 아들은 방문을 열고 내 이불속으로 들어와 안겼다. 얘는 밤새 이불을 덮지 않은 것인지 팔과 다리가 차가웠다. 자기 전에는 하도 춥다고 해서 이불을 두 개나 덮어줬는데. 팔베개를 내어주고 작은 어깨를 꼭 감쌌다. 두 발로 아이 다리를 비벼서 열을 냈다.
“엄마, 일어나니까 내 책상에 간식 상자가 놓여 있었어!”
“어, 정말?”
어라? 비몽사몽 머리를 굴려본다. 누가 간식 상자를 두었을까? 설마 애 아빠가 그랬을까? 나보다 늦게 잔 두 사람이 있다. 애 아빠와 열네 살 따님. 요새 딸에게는 ‘님’ 자를 붙여야 할 것 같다. 나는 자꾸 딸의 눈치를 보게 된다.
따뜻한 이불속에 아들만 남겨 두고 나는 거실 밖으로 나왔다. 식탁 위에 무언가 정신없이 그러나 다시 보면 신경 써서 꾸민 듯한 것들이 한가운데 어질러져 있었다. 그 사이 ‘뽑기’라고 적힌 종이가 보였다. 뽑으라는 소리 같았다. 엄지손톱만 하게 접힌 조그만 쪽지들이 두 카드 케이스에 나뉘어 담겨있었다. 그게 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뽑았다. 하나는 내가 ‘모험가용’이란다. 다른 하나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노력한 만큼 나와, 믿을게’ 대체 뭘 믿는다는 것인가? 누군가, 내가 요즘 투고하느라 신경이 곤두서고 진을 빼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인가? 내가 노력했다면 출간을 제안하는 메일이 올 것이고 노력을 덜 했다면 거절의 메일이 다시 또 올 것인가? 그래, 거절의 메일이 온다 해도 그저 내가 노력을 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고 마음먹는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거절의 메일을 받는다는 건 어쩐지 더 비참하고 서글퍼질 테니 말이다. 그래 딸아. 한 번 믿어 볼게. 의도치 않게 딸의 심심한 응원에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 이 깜찍한 뽑기 이벤트나 아들의 간식 상자는 딸의 작품일 테다. 딸이 아니라면 이런 걸 할 사람이 우리 집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했나? 그동안 무엇을 해왔고 올해는 하지 않았나.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건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였다. 트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엔 식물들이 꽤 많다. 매년 ‘아라우카리아’ 이 키 큰 나무가 때마다 희생을 했다. 전자파를 내뿜는 반짝이는 별 모양의 조명을 가지마다 칭칭 감고 장식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았었다. 딸이 생기면서 하기 시작했다. 어린 딸은 아주 환장했다. 그걸 보는 게 더없이 행복했다. 아들이 태어난 후엔 셋이 다 같이 합세하여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트리 꾸미기 이벤트를 치렀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년 한 달 이상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을 누렸던 거다. 지난주, 그전부터 아들은 “엄마 우리 크리스마스트리 꾸며야지”라고 재촉했다. 그런 아들에게 시큰둥하게 답했다.
“오, 그러게, 며칠 안 남았네, 그런데 식물이 아프지 않을까?” (식물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아들은 그럼 거실 천장에 조명만 달자고도 했다. “그래 그럼 내일 하자” 하다가 결국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말았다. 이 일은 아들에게 좀 미안하다. 아들은 아직 한참 좋아할 나인데.
그러고 보니 아들한테 찔리는 게 하나 더 있다. 그런데 이건 그럴 만했다. 핑계가 아니고. 요새 어린이들은 책을 읽어서 그런지, 영상을 봐서 그런지 참으로 똑똑하다. 현실성이 있다. 언젠가부터 아들은 조금 집요하게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내게 물어오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들은 아무 의심 없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카드를 썼다. 누나와 함께.
“딸아, 우리 동생의 동심을 지켜주자!”
6학년이었던 딸은 이미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간파한 뒤였지만, 엄마의 부탁도 있었고 또 엄마가 준비했을 선물을 받기 위해 기꺼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카드를 쓰고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두고 잤던 거다. 산타할아버지의 실체에 대해 아들에겐 비밀로 하기로 했다. 딸은 그에 걸맞은 연기까지 해주었다. 동생과 자기는 밤새 자지 않고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몰래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겠다며 약간은 거들먹거렸다.
올해 아들은 이 모든 것을 의심했다.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의 모든 게 너무나 수상쩍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사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땐 양말을 문 앞에 걸어 두고 소원을 빌고 잠이 든 적도 있었다. 말 잘 듣고 얌전했던 착한 어린이는 다음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자기 양말을 보고 크게 실망했었다. 바로 그때 나의 동심은 깨져버렸다. 산타할아버지는 다 거짓이라고. 차라리 거짓이라고 믿는 편이 내겐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우리 집은 25층이고, 굴뚝도 없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와? 그리고 전 세계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할아버지 혼자서 다 선물을 줄 수 있어? 루돌프는 또 어떻게 날아다니는 거야? 할아버지는 영어를 하는데 내 편지는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거야? 또 내가 원하는 선물을 어떻게 정확히 아는 거야?…”
끝없이 질문했다. 그게 아주 똑똑해진 자신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들은 자기의 똑똑함을 한껏 자랑했다. 나는 한 마디로 대응했다. 올해 커밍아웃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니, 그냥 이참에 ‘커밍아웃해 버리자’라는 심정으로.
“아들아, 산타할아버지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야. 네가 산타 할아버지를 믿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네 선물을 들고 찾아오실 것이고, 네가 믿지 않으면 산타 할아버지는 안 오실 거야. 그러면 넌 선물도 못 받겠지.”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그냥 믿으란 소리였다. 어린이가 똑똑해지는 건 다 소용없다는 말이었다.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답게 순수한 동심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다.
똑똑하기만 하지 눈치 없는 아들이 그걸 알아들을 리 없다. 결국 매년 써왔던 크리스마스카드를 쓰지 않았다. 혹시 카드를 써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서 안 쓴 걸까? 매년 해왔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지 않아서일까? 이제 와 괜한 생각을 한다.
대신 아들은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을 콕 집어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 난 그걸 로켓으로 주문했다. 아주 간단했다. 아들은 배송 날짜를 따져가며 마음에 들어도 해외 배송이라 오래 걸리는 것은 지체 없이 제외시켰다.
어린이가 똑똑해진다는 건 이런 걸까? 동심을 잃는다는 건 이런 걸까? 이렇게 간편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동심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되는 걸까?
크리스마스 당일, 아들은 로켓 배송이 도대체 언제 완료될지 그것만을 추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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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