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쏘잉에 바치는 연애편지
시간의 블랙홀에 빠졌다. 내게 주어지는 모든 자유시간을 모조리 재봉에 투자했다. 재봉틀 앞에 앉아 있거나 원단을 자르지 않는 시간에는 인터넷으로 다른 이들의 작품을 구경하거나 원단을 쇼핑하고 쏘잉 책을 훑어봤다. 만들고픈 것의 목록은 점점 길어져만 가고 원단산은 높이 쌓여만 가는데, 늘,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쏘잉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식은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위 아래로 실을 끼우고 아주 조심스레 페달을 밟아봤던 재봉틀과의 첫 만남. 수십번이고 배송추적을 하며 목이 빠져라 기다려서 받아본 첫 원단 택배. 처음으로 만든, 지금 보면 총체적 난국인 옷을 입고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집 앞(이라 천만 다행이었던) 산책길과 처음 옷 선물을 했을 때 이웃집 두돌박이 아가가 내가 만든 원피스를 입고 아장아장 걷던 모습. 이 모든 순간들의 생생한 감정과 감흥이 바래지고 시들어질까 문득 걱정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쏘잉을 하며 들게 된 생각들, 새로 발견한 나의 모습들이 시간이 지나지면 무뎌지고 잊혀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지금까지 이런 취미는 없었다. 이것은 취미인가 마약인가.
쏘잉을 시작한지 반년이 지난 요즘, 과연 갓 시작했을 때의 한없이 들뜨던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 그 땐, 재봉에 관심이 1도 없는 동거인을 붙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산책 시간 내내 천의 종류가 어떻느니 오버록은 어떤 기계이니 설명해주곤 했다. 잠들기 전엔 머릿속으로 무엇을 만들까 생각하며 가지고 있는 원단과 패턴을 조합해 보거나 상상 재봉을 하다가 잠이 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재봉 책상에서 단 몇 분이라도 작업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잠들기 전 루틴은 요즘도 여전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취미는 없었다. 이것은 취미인가 마약인가.
이 에세이는 쏘잉에 바치는 나의 연애편지다.
연애 시절의 끌림과 서투른 몸짓과 설레임이 시간이 지나며 또 다른 모양의 따뜻하고 익숙하고 든든한 무엇으로 바뀌듯 내 옷장이 점점 내가 지은 옷으로 채워져 가고 쏘잉이 내 일상의 당연한 일부가 되기 전에, 아직은 모든 것이 경이로운 이 시간들을 기록해 두고 싶다. 이 에세이는 쏘잉에 바치는 나의 연애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