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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잉툰 Feb 14. 2021

쏘잉과 고양이의 공통점

감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병원에서 정식으로 검사를 받아 본 적은 없지만 내 뇌피셜에 의하면 나는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게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밟는 수순인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로 시작한 이 증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난 어렸을 적 부터 묵은 옷 정리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재채기와 콧물이 났고 오래된 책을 펼치면 손과 코끝이 간질간질해졌다. 사학자나 고대 문학 연구자는 절대 못 되었을 체질인데 마침 그 쪽으로 재능이 없어 천만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재봉틀을 사려고 알아보던 중에 내심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었다. 

"먼지가 많이 나요. 공기청정기도 돌려야해요." 먼지기피자인 나, 괜찮을까? 


먼지기피자인 나, 괜찮을까?

재봉틀을 사고 보니 과연 재봉과 먼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특히 내 맘에 쏙 들었던 린넨 원단이 유독 그랬다. 티셔츠 원단처럼 늘어나지 않아 초보가 재봉하기 쉬운데다 워싱된 린넨은 촉감도 좋고 흡습력도 좋았다. 옷으로 만들어 놓으면 잘 구겨지긴 해도 그 자연스러운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재단하려고 가위를 댈 때마다 작은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다. 고 작디 작은 아기 가디건을 재단하는데 몇 번의 가위질만으로도 금새 목이 칼칼해져왔다. 재단할 때도 그렇지만 재봉틀로 봉제 작업을 할 때도 바늘로 원단에 구멍을 내어 실을 꿰는 작업이다보니 먼지가 제법 나온다. 오버록 기계는 원단을 자르며 두 개의 바늘로 구멍을 내니 먼지가 말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일반 면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만 그 양이 많으면 바로 몸에서 신호가 왔다.


올 겨울에 유행한 뽀글이 원단?


그러다 F/W 시즌이 와서 새로운 종류를 원단을 접하게 되었는데 기모원단은 과연 보온성이 좋았지만 먼지가 린넨 못지 않게 나왔고 골덴은 배송되어온 비닐봉지에서 꺼내자마자 단면에서 가루가 마구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어렸을 적에 촌스럽다며 싫어했던 골덴, 나이드니 옷도 소품도 왜 이리 예뻐 보이는지. 과연 레트로가 유행인가보다) 내 취향은 잘게 잡힌 골덴보단 존재감 있는 “왕골덴”이나 “중골덴”이다. 그러나 잔골덴이나 왕골덴이나 부스러기가 떨어져서 다른 원단에까지 죄다 붙어 있는 건 매한가지. 올 겨울에 유행한 뽀글이 원단? 뽀글이 토트백 만들고 싶긴 한데. 먼지가 어마어마해서 테이프를 붙혀 놓고 재단한다지. 어휴, 겁나서 아직 엄두도 못 냈다. (이 글을 묵힌지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뽀글이 원단은 고이 옷장 안에 접혀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아, 봄이 오는데. 그 대신 최근에 작업한 타올지는 골덴보다 훠얼씬 많은 가루를 생산하여 아직도 집안 곳곳에서 핑크색 가루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먼지를 뿜는 원단으로 작업을 해야하거나 다소 긴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될 때는 귀찮더라도 마스크를 장착하려고 한다. (아직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코로나의 종말이 도래하더라도 KF마스크는 여전히 나의 필수품의 범주에 남아 있을 듯 하다.


아니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니?!


쏘잉 공간을 자주 청소해 주는 것도 필수다. 먼지가 많이 나는 원단을 다룰 때는 아예 무선 청소기를 곁에 끼고 수시로 빨아들여준다. 돌돌이도 써 준다. 옷 한 벌만 만들어도 오버록 안에 원단 조각과 먼지가 꽉 차기 때문에 솔과 청소기로 제거해야한다. 변변찮은 공기청정기라 별 효과가 안 느껴지는 듯 하긴 하지만 공기청정기도 형식상 한 번씩 가동시켜준다. 아니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니?! 기숙사에 살던 시절의 룸메이트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넌 누구냐고 할 것이 분명하다.


애정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가장 싫어하는 먼지와의 사투를 벌여야 함에도 재봉을 놓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공기청정기와 돌돌이를 쓰며 청소를 훨씬 더 자주 해야하더라도, 이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 애정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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