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비극의 서막

by 김팀장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 중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직접 보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때 그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므로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었고, 그 당시 태극전사들은 비록 본선 진출국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조국의 명예를 위해 경기장에서 쓰러지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 있었다.


우리 국민들은 태극전사의 선전을 기원하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고 싶었으나 북중미의 멕시코와 우리나라 사이의 시차로 인해 1차전 아르헨티나 전과 3차전 이탈리아 전의 킥오프 시간이 평일 새벽 3시였던 관계로 위성중계를 보며 실시간 응원을 하려면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나마 2차전이었던 불가리아 전은 일요일 아침 7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경기만 지켜보려고들 하였다. 그나마 승산이 있어 보였던 상대이기도 했으므로 다들 그 경기에만 집중했었고 나머지 경기들은 (그땐 그런 말 자체가 없긴 했지만) 축덕들이나 백수 또는 스포츠에 심취해 있던 국민학생 정도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맞다, 그 국민학생이 바로 나다. 그깟 수업쯤 얼마든지 빼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날 밤 머리맡의 탁상시계 알람을 3시에 맞춰놓고 혹시 잘못 맞췄을까 봐 몇 번이나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있었나 했을 때쯤 따르르릉!!! 하는 알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나는 마치 기상나팔 소리에 튕겨져 일어나는 신병처럼 요만큼의 삐댐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있던 어머니와 누나가 잠시 뒤척이긴 했지만 이내 다시 잠들었다. 터질듯한 가슴으로 텔레비전을 틀고 식구들이 깰까 봐 줄여놓은 볼륨처럼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브라운관을 응시하던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86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의 늠름한 모습. 윗줄 왼쪽부터 오연교-김용세-최순호-조민국-차붐-박창선-김주성-김평석-허정무-박경훈-정용환


역시나 우리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차전 아르헨티나 전은 메호대전(메시와 호날두) 이전 축구계 최고 화두였던 펠레냐 마라도나냐 중 마라도나의 전성기 기량에 탄복하며 3대 1로 졌다. 우리는 박창선 선수가 월드컵 사상 첫 골을 넣으며 나름대로 분전했지만 역시 세계의 벽은 높았다는 상투적인 말에 딱 걸맞은 과정과 결과를 보여줬다.

그 후 2차전은 장대비를 뚫고 터진 김종부 선수의 헤딩 동점골로 1대 1 무승부. 3차전은 최순호 선수와 허정무 선수의 골로 이탈리아를 똥줄 타게 만들긴 했지만 3대 2 석패.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1무 2패 승점 1점의 전적으로 예상대로 조기 탈락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상대였던 아르헨티나는 그 대회 우승팀이었고 이탈리아는 전 대회 우승팀이었으니 태극전사들은 선전했으며 대한 건아의 힘을 세계만방에 과시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다운로드 (1).jpg
다운로드 (2).jpg
아르헨티나 전 허정무와 마라도나/ 불가리아 전 김종부의 동점 골 순간
다운로드 (3).jpg 이탈리아 전 최순호의 동점 골 장면. 졌잘싸의 표본 같았던 경기.


어린 맘에 상대에 비해 너무나 약해 보이는 우리 팀의 모습을 보느라 분하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팀과 선수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공놀이를 보며 가슴 한편에 뜨거운 것이 차고 올라옴을 느끼며 대망의 결승전이 끝나고 마라도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까지 우리와 상관없는 경기까지 챙겨보았던 내 생애 첫 월드컵은 일생일대의 흥분되는 이벤트로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비단 월드컵뿐만이 아니라 나의 스포츠 사랑은 전방위적이었다. 그 옛날 농구대잔치에서의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전, 백구의 대제전에서의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비스의 라이벌전은 반드시 시청해야 하는 이벤트였고, 기업은행 대 한국은행 같은 비인기팀끼리의 경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매년 열리는 전국체전 역시도 나의 시야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평일 낮에 집에 돌아오면 KBS와 MBC를 교대로 틀어가며 육상, 수영 등의 기초종목부터 근대 5종 같은 누군가는 있는지도 모를법한 종목들까지 닥치는 대로 보며 즐거워했던 어린이였으니 국민 스포츠인 야구야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않겠는가.

다운로드 (4).jpg
다운로드 (5).jpg
삼성의 故 김현준과 현대의 이충희/고려증권의 장윤창과 현대자동차써비스의 강만수



1982년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의 일환으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가슴 벅차오르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이 땅에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비록 의도는 불순했으나 오늘날 국민 스포츠이자 최고의 여가 수단이며, 누군가에겐 삶의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으니 그가 했던 몇 안 되는 좋은 일 중의 하나라고 해야겠다.


애초에 자생적으로 시작할 환경이 못 되었으므로 정부 주도하에 몇몇 기업들이 반강제로 발을 들여놓게 되어 원년의 KBO 리그는 6개의 팀으로 시작되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MBC 청룡, 부산과 경남을 아우르던 롯데 자이언츠, 대구 경북권의 삼성 라이온즈, 광주를 기점으로 호남을 대표한 해태 타이거즈(지금의 기아), 대전과 충청권을 배정받은 OB 베어스(지금의 두산), 마지막으로 인천과 경기를 구역 삼은 삼미 슈퍼스타즈가 참여하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지역 연고제를 공고히 했던 것이 이 땅에 팽배해 있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팬덤 형성과 리그의 조기정착에 크게 기여하였다.

여기서 비하인드 썰을 하나 풀자면, 원래 OB는 창단 조건으로 서울 연고를 강하게 주장하였으나 대전을 제시받았고 3년간 대전을 홈으로 한 후 서울로 입성하는 것을 약속받고 리그에 참여했다고 하니 충청권의 팬들은 기껏 응원하던 팀이 서울로 옮겨간다고 했을 때 상실감이 컸을 듯하다.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 팀명 변경 없이 현재까지 유지된 삼성과 롯데는 그 자체로 대단하다.


다운로드 (7).jpg
다운로드.gif
가카께서 직접 개막전 시구를 하실 정도로 그 관심이 지대하였고, 그 관심으로 인해 훗날 감독 한 명이 옥고를 치르게 된다.


서울 출생에 스포츠 성애 기질이 강했던 내 맘속에 MBC 청룡이 들어오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프로야구 최초의 승리팀이 바로 청룡이었다.

개막전에서 삼성과 맞붙어 연장 10회 말 당대 최고의 좌완 투수였던 이선희를 상대로 한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짜릿한 승부를 연출하며 야구 열기의 불쏘시개가 되었음은 자랑스러운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어린 꼬맹이의 마음에도 불을 질렀고, 나는 엄청 쎈 우리 팀 앞에 꽃길이 펼쳐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운로드 (8).jpg
종도오.gif
MBC의 찬란했던 시작. 하지만 찬란했던 마지막 기억;;;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그해 우승은 개막전의 청룡에 이어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도 삼성의 이선희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뺏어 난 OB의 차지였으며 청룡은 그다음 해 후기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당대 최강 왕조의 시작을 알렸던 해태에 1무 4패라는 참담한 패배를 당한 이후로 매년 중하위권을 오가는 평범한 팀으로 전락하였다.

그 MBC가 바로 내 사랑 LG 트윈스의 전신이었다. 애초에 그런 팀에 빠져 들었으니 이후의 비극은 필연적이었다고 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Prologue. 애증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