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MBC 청룡 어린이 회원

by 김팀장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전 우리 집은 파란 대문 집이었다. 차가 지나다니는 큰길에서 구멍가게 모퉁이를 돌면 좁은 골목이 나왔는데 그 골목 끝에 있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골목 양쪽으로 집들이 몇 채 있었는데 그 끝에 있던 우리 집은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보였고, 양쪽으로 쭉 다른 집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 같아서 골목 입구에서 보던 그 파란 대문은 그 당시 심취해 있던 전자오락 게임에 나오는 끝판 대장을 만나러 가는 문처럼 어딘가 모르게 위풍당당함이 느껴지곤 했다.


대충 이런 느낌의 집이었다. 물론 저 바퀴 달린 목마 빼고...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옆쪽으로 여닫이 문이 달린 방 세 개가 줄지어 있었고 그 방들은 좁은 마루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방들을 지나쳐 걸어 들어가면 줄넘기 정도 할 수 있는 크기의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 끝의 수돗가를 지나 얕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짜리 양옥이 있었다. 그 2층짜리 양옥은 병호네 집이었고 우리 집은 파란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방이었다.

그때는 그냥 병호네랑 성준이네랑 우리랑 같이 사는 건 줄 알았는데 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우리랑 성준이네는 병호네 세입자였다. 우리 집은 병호네 집에 사글세로 살고 있었고 알고 보니 그건 수입이 곤궁한 자가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주.《부동산 용어 사전》. 방경식 저. 부연사. 2011)


병호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성준이는 동갑이었으므로 우리는 매일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냈다. 부모 간에는 벽이 있었겠지만 우리 사이에는 그저 그 나이 개구쟁이들끼리의 끈끈함이 있을 뿐이었다. 병호는 형들을 잘 따르는 착한 동생이었고 성준이는 순둥순둥 한 성격으로 항상 즐거운 녀석이라 내가 좀 까칠하긴 했지만 삼총사가 함께 할 때는 대부분 즐거운 기억들이 가득했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저렇게 일진 포스는 아니었고....

우리는 서로서로 죽고 못 살듯 잘 때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고 같은 기억들을 공유했다. 단 한 가지 그것을 제외하고는...

나와 성준이가 병호랑 함께 하지 못 했던 게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이름도 찬란했던 MBC 청룡 어린이 회원!! 당시 연회비가 5,000원이었다. 겨우 그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 하던 시절이니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지금으로 치면 6~7만 원 정도 됐는데 혜택이라고는 조잡한 퀄리티의 유니폼 한 벌에 모자 하나, 가방 하나, 용도가 불분명한 스티커 몇 장 정도였으니 부모 입장에선 아무리 토끼 같은 자식이 졸라대도 선뜻 허락하긴 쉽지 않았을 거다.

대충 이런 물건들이었으니;;; 가운데 삼성 모자 아님 주의...

그런데 그 어려운 걸 병호네 부모님은 해내셨다. 하긴 야구 직관이 지금처럼 흔치 않던 그 시절에도 병호는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갔다 왔던 적이 꽤 있었다. 때때로 일요일에 "병호야~~ 노~올 자~!!" 하면 병호네 엄마가 병호 아빠랑 나갔다고 하셨는데 그런 날이 직관 날이었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병호가 보여줬던 MBC 청룡 어린이 회원 굿즈들은 나의 소유욕을 한껏 자극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탐났던 건 반짝반짝 빛나던 회원카드였다. 플라스틱 재질에 청룡 캐릭터가 딱 박혀있고 햇빛을 받아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던 아름다운 자태의 그 물건. 내가 정말 사랑하는 MBC 청룡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증표. 서울 사내아이들의 로망을 이루었다는 영광스러운 표식.


너무너무 갖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병호에게는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그 정도쯤이야 해줄 수 있다는 여유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야구의 '야'자도 관심 없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안될 일인 것 같다는 조금은 때 이른 철딱서니만 있었다. 아이들끼리는 몰랐던 그 벽은 이미 그 사이에 굳건히 쌓아 올려져 있었다.


그렇게 나와 병호의 차이를 인정하며 나의 국민학교 시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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