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땐 언제나 불러낼 수 있는 내 손 안의 친구 핸드폰은 역시나 불러내자마자 지루한 공기를 싹 지워 버렸다.
개명 전 갤럭시의 이름이 괜히 애니콜이 아니다.
오늘 올린 인스타 피드에 좋아요가 몇 개 눌렸는지 확인하고 피드에 달린 댓글에 정성 듬뿍 담아 답글을 남겼다.
일면식도 없는 인친들에게는 이렇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 행세를 하면서 현실세계 친구들에게는 그 흔한 카톡 하나 날라지 않는,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는 화이팅이라거나 힘내 같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한탄을 해본다.
반성과 한탄의 시간을 넘어 내일은 연락 끊긴 오래된 지인들한테 카톡이라도 보내봐야지라는 기특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추억팔이 시간이 시작되었다.
추억팔이 하면 역시 싸이월드지.
두 달 전쯤인가 되살아났다는 소식에 환호하며 그 어렵다는 십수 년 전 아이디와 패스워드 기억해내기 신공까지 발휘해가며 들어가 본 싸이는 황량하고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진첩이 복원되지 않은 싸이는 장기하가 빠진 얼굴들이었고, 손흥민 빠진 토트넘이었고, 여자 친구가 다른 놈 만나러 나간 걸 모르고 갔다가 여자 친구 가족들만이 어색하게 맞아주는 여자 친구 집이었다.
이게 뭐냐 하며 나와버렸는데 복원해야 할 자료가 너무 방대하여 계정이 활성화된 순서대로 복원작업을 한다고 해서 그럼 기다려보자 하고 그냥 잊고 지냈다.
'와~ 사진첩 복원되면 판도라 상자 열리겠네ㅋㅋㅋ'
그냥 딱 이 정도로 생각했다가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거 아니라도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무엇보다 그게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두 달 만에 싸이월드 아이콘을 지그시 눌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원된 사진첩이 짜잔~~ 하고 나타났다.
오호라, 어디 보자.
이렇게 인생이 즐거운 티 없이 밝은 청년이었었다;;;
첫 번째 폴더를 여니 역시 판도라의 상자였다.
온갖 추접스럽고 기괴하고 촌스러운 사진들의 압박.
그래도 사진에 함께 등장했던 자들과의 나름 아름답던 추억이 마구마구 떠올라 혼자 큭큭거리며 봤다.
아, 근데 그 많던 댓글들은 다 어디 갔을까.
사진첩의 또 다른 재미는 그 아래 달린 온갖 디스가 난무하는 살벌한 댓글들이었는데 못내 아쉽다.
아직도 몇몇 주옥같은 댓글들은 기억이 난다.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이 미친 벌쓰와 라임의 연금술사들 다 어디 갔나.
그리고 다음 폴더를 열었다.
아들 1호를 얻고 나서 그 이름을 따 만든 폴더였다.
신생아 시절부터 백일 정도까지의 사진들이 쭈욱 이어졌다. (아마도 싸이의 수명은 그때 까지였나 보다.)
이때 이렇게 귀여웠는데 뭐가 힘들다고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오는 동시에 그때의 그 녀석을 만난듯한 기분에 정말 말 그대로의 엷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내려가다 한 사진이 나왔다.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갓난아기인 아들을 안은 우리 엄마와 누나, 그리고 매형과 조카가 너무나도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그 사진 앞에서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젊고 건강했던 누나와 역시나 활력 있고 즐거웠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항상 든든했던 매형과 착하고 반듯했던 조카까지.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들의 대학 생활을 끝내 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떠나간 누나와 그 충격으로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살아가게 된 엄마, 그리고 누나의 부재로 멀어지게 된 매형과 조카.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벌써 잊은 듯 살았다.
다시는 그때의 당연했던 일상으로, 미처 몰랐던 행복함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우리 네 식구 말고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가 없어진 상실감이 다시 무겁게, 그리고 두렵게 다가왔다.
예전의 가족은 없어졌지만 지금 우리 가족의 이 당연하고 행복한 일상들을 지켜내기 위해 사느라 잊고 지냈던 그 상실감 말이다.
가슴 뻐근함과 무너져 내림을 지워내 보려 TV를 켜고 손흥민 하이라이트를 봤지만 가시지를 않던 그 감정 때문에 나는 싸이월드에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