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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May 24. 2022

아파트 1층 살기의 즐거움.

 재작년에 용인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 집은 필로티 1층이 되었다.

 한창 질풍노도 시기의 사내아이 둘이 있기 때문에 넓은 평수에 1층이 좋겠다 하고 왔었는데,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업체 사장님이 집에 와 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 집 좋네. 남향이고 바로 앞에 금송도 딱 있고. 금송이 행운을 불러온다잖아요. 


 그때는 그냥 "아, 그래요?ㅎㅎ" 하고 흘려 넘겼고, 솔직히 이 집으로 이사 온 후로 행운이라고 부를만한 일보다는 불행에 가까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다.

 인테리어 공사할 때도 그랬지만 그 사장님 말은 맞는 게 없다. 

  거 참....


 비록 금송은 아직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 나와 우리 가족들은 1층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집값이 다른 층에 비해 조금 싼 건 뭐 어쩔 수 없다. 그 정도 차이는 우리 가족들의 삶의 만족도 상승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하니 말이다.

 투자 물건으로 대한다면 1층은 당연히 기피대상이지만 그냥 내가 사는 집이라면 1층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 만만치 않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뿐만 아니라 연세 지긋한 분들이 살기에도 1층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주방 창에서 숲이 보인다.

아파트 1층이 좋은 점

1. 아들 1,2호가 온갖 태권도 품새뿐만 아니라 겨루기를 해도 걱정 없다.

2. 닌텐도 <저스트 댄스>를 온 가족이 함께 해도 걱정 없다.

3. 지구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쿵쾅쿵쾅 러닝머신을 뛰어도 걱정 없다.

4. 바쁜 아침 시간에 엘리베이터 기다릴 일이 없다.

5. 더운 여름에 엘리베이터 점검 중 불이 들어와서 15층까지 걸어 올라갈 일이 없다.

6. 엘베에서 나는 치킨 냄새에 혹해 쿠팡이츠를 켤 일이 없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7. 음쓰 버리러 갈 때 편하다.

8. 분리수거할 때 편하다.

9. 바로 앞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들어오라고 부르기 편하다.

10. 짜장면 시켜 먹고 그릇 내놓기 편하다. (우리 동네엔 아직 그릇 다시 걷어가는 집이 있다. 상 줘야 한다.)

11. 설거지하면서도 숲 속에 있는 기분이다. (이거 생각보다 꽤 많이 좋다.)

12. 거실 소파에 앉아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물론 그랬다간 추락사고가 나겠지만)

13. 거실 소파에 앉아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햇빛을 받아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초록을 느낄 수 있다.

14. 거실 소파에 앉아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새빨간 단풍을 보며 내장산이 따로 없단 소리를 할 수도 있다.

15. 거실 소파에 앉아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금송 위에 핀 눈꽃을 보며 역시 눈은 집에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을 사진이 빠졌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이 참 좋다.

 더 생각해 보면 1층이라 좋은 점이 더 있을 것도 같다. (어떤 게 있을까요?)

 

 못 믿을 인테리어 사장님의 금송 행운론도 그냥 믿어보려고 한다.

 공사할 때야 말한 대로 되는 게 없어서 속 터졌지만 까짓 금송 얘기야 틀린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이제 금송만 자기 몫을 해준다면 우리 집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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