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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May 20. 2022

아무한테도 터치 받기 싫어? 그럼 책을 읽어.

독서와 필사의 즐거움

 그래, 나도 한때는 문학소년이었다.

 어릴 적 집 책장을 빼곡하게 채웠던 세계명작 전집과 세계 위인전을 한 권도 빠짐없이 읽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에 빠져 들고,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독서와 공부를 통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된 링컨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었었더랬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나는 어휘력도 풍부하고 글씨도 잘 쓰고 글도 잘 쓰는, 그리고 무엇보다 똑똑한 -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아이였다.

 물론 그런 아이들은 전국에 수십만 명 있었다.

 그저 내가 그런 사실을 몰랐을 뿐.


 그 수십만 명 중 하나가 어른이 되고 나니 이번에는 수백만 명 중의 하나로 살게 되었다.

 돌아오는 카드값을 위해, 다가오는 휴가에 여행을 가기 위해, 우리 가족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그저 그런 수백만 명 중에서도 그다지 높은 위치는 아닌, 그저 그런 존재로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남들 하는 만큼, 남들이 보기에 적당한 수준까지는 따라가려 했고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거라 믿으며 살았다.


 그렇게 수십, 수백만 중의 하나로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책에서 멀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대한민국 성인 독서량 수치를 떨어뜨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은 자부할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 물으면 기습 공격에 당한 듯 당혹스러운 맘으로 중학생 때 읽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답해야 했으니까.

 누구보다 안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던 내가 작년 12월부터 독서 스터디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이 문학소년 타이틀을 반납한 30년 동안 읽은 책의 서너 배는 족히 된다.

 그래 봐야 다독하시는 분들의 두 달 정도 분량밖에 안되지만 말이다.

 

 시작은 독서가 아닌, 생존을 위한 투자와 경제 공부였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독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경제를 공부하기 위한 책,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책을 읽다 보니 투자 마인드를 가다듬기 위한 책으로 연결이 되고 그 길은 다시 자기 자신과 인생에 대해 고찰하는 책으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의 세계 앞에 서니 이전과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 시작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까지는 아니어도 100도 정도는 달라지게 되었다.

 아직은 독서량 수치를 갉아먹으며 그냥저냥 살아가던 습성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 몇 달간 읽은 책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인생을 바꾼 것은 바로 책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기엔 기간도 그렇거니와 읽은 책의 양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알 수가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있다.


책을 읽고 필사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책을 쓴 이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정해져 있겠지만 그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필사 역시 내가 받아 쓰고자 하는 부분을 고르고 써 내려가며 느끼는 것에는 다른 어떤 이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럴 거라 믿는다.  

 그러다 보면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겠지 하는 것 또한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수십만, 수백만 중의 하나로 바깥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요즘 나의 행복지수를 한껏 끌어올려 주는 즐거움이다.   

 워낙 악필이라 필사 노트를 다시 읽었을 때 이게 뭔 말인지 못 알아볼 때가 종종 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언젠가 나만큼 책을 멀리 하던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책 읽는 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필사는 대체 왜 하는 거지? 글씨 연습하나?"

 "그러게 말이야. 무슨 학교 노트 필기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그 친구가 같은 질문을 하면 확실하게 답해줄 수 있다.


 "야, 너 아무한테도 터치 안 받고 싶댔지? 책 읽고 필사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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