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소울메이트가 하필 OB 팬 #1
나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도 아무도 예상 못한 성적을 거두며 당시 비평준화였던 우리 학교에 차석으로 들어가는 나마저도 당황스러운 대이변을 일으켰었다.
세계 랭킹 47위쯤 하는 선수가 올림픽에서 갑툭튀로 은메달을 따낸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로 향했기에 이룰 수 있던 값진 결과였지만 평균 회귀의 법칙에 따라 고등학교 입학 후 첫 번째 시험에서 나는 원래 나의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 돌아갔다.
그리고 시험 결과 떨어진 등수만큼 빠따를 치겠다던 담임선생의 공언대로 나는 무려 53대를 맞고 교실 바닥에 그대로 달라붙어 버렸다. 구둣발에 밟힌 껌딱지처럼.
1반부터 10반까지 다 수소문해봐도 나보다 하락폭이 큰 녀석은 없었다.
성적 하락폭 전교 1등.
입학시험에서 못 따낸 금메달을 그렇게 따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내내 다시는 입학 당시의 성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어서 공부 곧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학교의 큰 기대를 받는 학생은 전혀 아니었다.
야금야금 50위권에서 랭킹을 조금씩 끌어올려 고3 때는 10위권까지 올라갔지만 나는 그저 경기도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잘하면 어쩌면 입상권 진입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선수였던 것이다.
나 역시도 꼭 메달을 따겠다는 욕심을 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고 최선을 다하자는 소박한 목표를 잡기는 또 조금 아쉬운 그런 마음이었다.
한 마디로 매우 애매한 위치였다.
그러던 내가 SKY 대학생이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몰려와 수능 상위 2% 내의 성적을 올렸다.
그해 수능이 불수능이어서 보통 모의고사 점수보다 10~20점 정도씩 낮게 나왔었는데 나는 모의고사 점수와 큰 차이가 없었으니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었다.
수능 당일 저녁에 함께 재수하자며 시장 지하에서 깡소주 나발을 불었던 친구 녀석들에게 조금 머쓱하긴 했지만 녀석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야, 너라도 잘 돼서 다행이다."
그렇게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작한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입학도 하기 전부터 선배들이 불러내서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노래시켜주고 하니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운 좋게 입학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실력으로 따지면 나는 과에서 최하위권이었고 원래부터 놀기 좋아하던 나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내가 취할 스탠스는 분명해졌다.
공부와는 담쌓고 그냥 노는 놈.
O.T 때부터 조금씩 눈에 띄던 나는, 입학식 후 신입생 환영회에 혼자 정장을 입고 가 DJ DOC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며 쐐기를 박아버렸다. (물론 대학교 입학식은 정장 입고 가야 한다는 구라를 쳤던 동네 형과는 연을 끊었다.)
막걸리와 투박함이 교풍처럼 여겨지던 학교에서 술 마시고 안치환이나 김광석의 노래가 아닌 DJ DOC의 랩을 때려 박는 녀석이 나타났으니 본의 아니게 핵인싸의 길로 들어서게 된 나는, 급기야 학기초에 열린 체육대회에서 교수님의 부름을 받고 대낮에 학교 운동장에서 맨 정신으로 DOC의 노래를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낙인찍힌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동기 모임에 나가면 DOC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니 DOC는 나의 영혼의 단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쌍방은 아니고. 나 혼자만.
생전 처음 별종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처음 보는 선배가 "아, 네가 XXX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게 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갔던 미팅 자리에서 "얘는 랩 잘해요."라고 나를 소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어머, 정말요?"라며 관심을 보이는 여대생들의 눈빛도 맘에 들었다.
"아이,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소지품으로 삐삐를 내놓는 손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뿜뿜하던 아름답고 찬란했던 리즈 시절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나처럼 노는 걸 좋아했다.
처음에는 내가 DOC 노래 부르는 걸 지켜보던 그 녀석은 언제부턴가 합류하여 창렬이로 시작했다 하늘이로 변했다가는 다시 재용이에 빙의하는 자유자재 스위칭 스킬로 어느새 한 팀이 되었다.
우리는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과방에 있던 낡아빠진 소파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바뀌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박혀있는 것처럼 늘 있었고 선배들과 동기들은 우릴 '덤 앤 더머'라 불렀고, 내가 그 녀석에게 "야, 내가 덤앤이다."라고 하면 녀석은 그걸 "아, XX 웃겨."라고 받아주며 낄낄댔고, 아무튼 우린 잘 맞았고 녀석과 함께 있으면 늘 즐거웠다.
게다가 우리는 야구라는 매개체로 더욱 단단하게 묶였으니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