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데 똑같다.

그래서 같이 산다.

by 김팀장

사람 1 :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으며 매우 둔한 편인 40대 남성.

사람 2 : 냉탕과 온탕을 자주 오가며 감정 변화에 민감한 40대 여성.

사람 3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서너 시간 정도는 의자에 엉덩이를 접착시키는 초 5 남성.

사람 4 :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임계치를 넘어서면 몸이 베베 꼬이는 초 3 남성.

개 1 : 토이 푸들인 줄 알고 데려왔더니 점점 스탠더드 푸들화 되어가고 있는 3세 수컷.

캡처.JPG 그나마 우리 가족과 가장 유사한 구성의 <검정 고무신> 기영이네 가족

즐거운 1층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지 길게는 14년부터 짧게는 2년 반 정도 됐다.

가장 길게 묶여있는 두 사람, 사람 1과 사람 2는 이제는 정말 '가족'이 된 듯하다.

'가족끼리 왜 이래' 할 때 그 가족 말이다;;;

가장 짧게 묶인 개 1도 이제는 정말 '가족'이 된 듯하다.

그 녀석이 없는 우리 집은 지금보다 좀 더 조용하고 쾌적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막상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으니 말이다.(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녀석이 싸 놓은 똥을 치워야 상쾌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거야...)


우리 가족들은 참 다르다.

사람 1과 사람 2는 어쩌면 각각 남극점과 북극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달라도 너무 달라서 온갖 문제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문제없이, 꽤 괜찮게 지낼 수 있는 매뉴얼이 생긴 듯하다. 14년 만에...

하지만 매뉴얼이 생겼다고 해서 항상 매뉴얼대로 사는 건 아니기에 언제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13년 동안 활화산이었다면 이제는 휴화산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 3과 사람 4도 신기할 만큼 다르다.

정말 한 부모 아래서 나온 녀석들이 맞을까 싶을 만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너무 달라서 재미있는 경우도 많지만 너무 달라서 이를 어쩌나 싶은 때도 많다.

한 놈은 아침으로 빵을 좋아하고 한 놈은 시리얼을 좋아해서 꼭 둘 다 준비해야 한다. 피곤하다.

한 놈은 서너 시간 걸리는 보드게임을 같이 해줘야 하고 한 놈은 그 시간에 대여섯 가지의 놀이를 해줘야 한다. 피곤하다.

그냥, 대체로 피곤하다.


사람 1, 2와 사람 3, 4는 당연히 다르다.

40대와 10대(?)라 다르다.


사람 1, 3, 4와 사람 2는 또 다르다.

남성과 여성이라 다르다.

사람 3,4도 '아들'이라는 이름의 남성이니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인 사람 1이야 사람 2의 주적 아니겠는가.


아, 피곤하다.


개 1은 뭐 그냥.

개니까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해 두자.




달라도 너무 달라서 피곤하다.

근데 같이 산다, 그것도 꽤 재미있게, 그것도 꽤 행복하게.


다른 줄 알았는데 똑같다.

사람 1과 사람 2는 이제 서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응원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사람 3과 4가 학교에서 받아온 통지표를 보며 그래도 애들 잘못 키우지는 않은 것 같다며 함께 흐뭇해한다.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을 보며 그래도 우린 결혼 잘한 편이지 않냐? 하며 서로를 바라볼 줄도 안다.


사람 3과 4도 레고로 자기들 마음대로 동네를 만들 때는 한 마음이다.

여름방학이 짧은 것에 함께 분노하다가 겨울방학이 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함께 너그러워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방구뽕을 보고 똑같이 신나 한다.


사람 2는 언뜻 생각해 보면 사람 3, 4와 별 교집합이 없을 것 같은데 사람 1이 기분이 안 좋거나 조금 처져 있을 때는 전혀 못 알아차리던 녀석들이 사람 2의 미묘한 표정 변화만으로도 귀신 같이 그 감정의 변화를 눈치채고 그에 맞는 행동들을 취한다.

닌텐도 마리오 카트 4P 플레이하는데 사람 1만 쏙 빼고 지들끼리 한편 먹을 때처럼 3대 1의 구도가 그려져서 살짝 빈정 상할 때도 있긴 하지만, 사람 2만 쏙 빼놓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으니 그냥 받아들인다.

대개의 경우 사람 1이 골탕 먹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할 때 나머지 3인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 1, 2, 3, 4가 모두 한 마음일 때는 없냐고?

있다. 역변의 아이콘인 개 1 보고 못생겼다고 놀릴 때. 그 녀석도 애기 때는 예뻤다.

개 1에 대한 애정 표현은 모두가 똑같다. 괜히 가만히 있는 애 틱틱 건드리는 초딩들처럼.

사람 1, 3, 4에게 애정 표현은 다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입식 교육을 하는 사람 2조차도 개 1에게는 같은 방식이다.

밥을 줄 때도, 산책을 시킬 때도, 산책 후에 목욕을 시킬 때도 그냥 곱게 하는 법이 없다.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배를 살살 긁어 주면서도 꼭 한 마디씩 한다.

"아이고, 못 생겼네~~ 우리 하트~~"


개 1도 이제 그냥 익숙한지 그런 말에 신경도 안 쓰는 느낌이다.

응, 맞다. 개무시.


네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모두 한 뜻이 될 때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 <슈퍼밴드 2>를 볼 때, <아는 형님>을 볼 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볼 때 등등...

거실 소파에 모두 모여 앉아 하하호호 웃다가, 배꼽 잡고 깔깔대다가, 슬퍼서 눈물 흘리다가, 벅찬 감정에 다들 아무 말도 없다가... 소파 밑에 가만히 앉아서 함께 보고 있는척 하는 개 1을 보고 또 웃다가...

그렇게 한 곳을 보고 있다가 불현듯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일순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것.

신기하고 재미있고 감사한 일 아닌가.

거기에 개 한 마리까지 더해지니 행복한 일 아닌가.


행복이 별건가.

투닥투닥거리다가도 또 다 같이 모여 한 곳을 바라보고 울고 웃는, 별것 아닌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다른데 똑같아지는 게 '가족'이라는 사람들끼리의 행복이 아닐까.

다른데 똑같은 다섯 식구가 사는 1층 집은 그래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