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사유를 잃지 않는 방법
요즘 AI를 열기 전에 잠깐 멈추는 연습을 합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아직 질문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요.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는 언제나 불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프롬프트를 쓰곤 합니다.
더 정확하게, 더 똑똑하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AI가 먼저 알아차리길 바라면서.
AI 프롬프트의 반복은 사실 질문을 잘하기 위한 연습입니다.
무지를 줄이기 위한 기술이고, 조금 더 나은 답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이죠.
문제는, 이 반복이 너무 잘 동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프롬프트 주문같은 ‘재귀적 프롬프트 개선’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재귀적 루프 워크플로우를 무한반복으로 실행하는 메타 프롬프트입니다.
전문가를 설정하고, 검수자를 붙이고, 맹점을 찾고, 다시 고치고.
디자인 프로세스와 닮아 있습니다.
리서치 > 가설 > 시안 > 테스트 > 개선.
실패를 관리하고, 결과에 책임지고, 언젠가 출시해야 하는 구조.
그래서 이 반복은 “언젠가는 더 잘 알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 시인은 같은 반복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입니다. 실험적이고 비전통적인 아방가르드 문학가 답게요.
<오감도>에서 반복되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질문하게 된 주체의 위치입니다.
텍스트는 묻지 않지만, 나는 묻게 되죠.
“이게 뭐지?”
“왜 이렇게 써?”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지?”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묻게 된 나’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반복할수록 질문은 선명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제가 무너집니다.
묻고 있다고 믿는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지금 질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주체는 누구인가?
마침내 남는 문장 하나.
아무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소.
답변의 부재가 아닙니다.
인식의 인터페이스가 붕괴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상 시인은 질문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질문하는 인간을 만들어냈죠.
우리는 보통 인터페이스를 화면이나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나와 의미 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것이 인터페이스입니다.
질문의 형식, 언어, 프롬프트, 검수자 페르소나, 심지어 ‘나’라는 개념까지.
AI 에이전트는 이 모든 인터페이스를 한 번에 대신해주는 존재입니다.
질문을 생략한 채 결과를 먼저 내놓습니다.
분열을 거치지 않는 주체처럼 행동하죠.
침묵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합니다.
그래서 빠릅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누군가의 빠른 성과는 조급함을 주입하고
조급함은 서두르게 하고
서두른 선택은 깊이를 잃습니다.
깊이를 잃은 노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상 시인이 오늘날의 AI를 본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너무 잘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묻지 못하게 된다.”
<오감도>는
읽히는 텍스트가 아니라 독자를 처리하는 장치입니다.
설명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습니다.
나는 계속 불편해집니다.
“이게 뭐지?”
“왜 불안하지?”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죠.
나는 관찰자가 아니라
이미 이 장면 안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정체감이 서서히 드러남을 깨닫습니다.
이상은 독자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윤리를 텍스트가 아니라 독자에게 넘긴것이죠.
AI는 대신 판단해주고,
대신 말해주고,
대신 정리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빨리 안도합니다.
안도감는 스스로의 기준을 더 낮춥니다.
불안이 질문이 되기 전에,
질문이 형태를 갖기 전에,
자기 위치를 자각하기 전에
결론에 먼저 도달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진짜 만족이 아니라 안정에 기대기 때문입니다.
이상 시인의 관점에서 보면 AI는 “아직 질문이 미완성인데 벌써 정답을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도움이라기보다 사고의 조기 종결이죠.
AI를 대답자로 두지 말 것.
AI는 사고의 대행자가 아니라 사고의 마찰면이어야 할 것.
AI를 열기 전에 잠깐 침묵을 통과할 것.
불편함을 느끼고, 혼란을 기록하고, 질문을 엉성한 채로 두고, 그 다음에 AI를 쓸 것.
생각을 대신 맡기지 않고, 생각의 구조를 드러내게 할 것.
편해지기 위해 사유할 권리를 넘기지 않을 것.
그리고 이렇게 물을 것.
이 질문의 전제를 깨줘
내가 놓친 관점을 드러내줘
이 생각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 말해줘
이건 효율적인 질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유를 남기는 질문입니다.
그 결정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오감도>는 답을 얻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 답 없이 서 있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 태도가 있을 때만, AI는 생각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깊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줄 겁니다.
오늘도 재귀되지 않는 거울 없는 방에서 프롬프트를 씁니다.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묻지 못한 나를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서요.
S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