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비가(悲歌)
출판사 포새인의 신간, 새주 작가의 『마지막 정오』는 한 여배우의 죽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죄와 애도, 그리고 진실에 대한 치열한 탐구다. 작가는 안나라는 인물의 자살을 단순한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각자가 감당해야 할 죄의 무게를 응시한다.
노아는 뇌과학 교수이자 유명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는 자폐 아들 지후를 잃은 후, 전처 연재와의 참혹한 기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안나는 그에게 일종의 구원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이들을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 그러나 안나 역시 구원받지 못했고, 노아는 또다시 죽음 앞에서 무력한 자신을 마주한다.
작품의 진짜 힘은 이훈이라는 인물에게서 나온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 사업가는 "진실의 흐름"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내세우며 노아를 따라 한다. 그는 안나에게 접근해 교묘한 질문들로 그녀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의 말들은 진실처럼 들리지만, 실은 안나의 상처를 더 깊이 파고드는 칼날이다. 작가는 이훈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그리고 '선의를 가장한 악의'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희라는 인물 또한 흥미롭다. 노아의 조교이자 안나에 대한 악플러인 그녀는 자신의 열등감과 시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가 녹음한 테이프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배신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증거가 동시에 누군가의 죽음을 방조한 흔적이 되는 아이러니.
작품의 구조는 4부로 나뉘어 있지만, 시간은 비선형적으로 흐른다. 노아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 3부에서 노아가 연재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은 특히 강렬하다. 연재가 목에 옷을 감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꿈속에서 노아가 연재를 창밖으로 던지는 환상 같은 순간들. 이 장면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노아가 평생 짊어져야 할 '죄책감의 형상화'다.
작가가 포착한 가장 섬세한 부분은 안나의 트라우마다. 고모부와의 관계가 암시하는 성적 학대, 그리고 그것이 안나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작가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은밀하게 암시한다. "내가 내 입으로,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수치스럽고 두려운 줄 아세요?"라는 안나의 고백은 그 상처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제목인 『마지막 정오』는 작품 말미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정오는 하루 중 가장 밝은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노아가 연재를 다시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정오였다. 춥고 비참한 겨울이 끝나고 척박했던 땅에 한 줄기 빛이 내리쬈다"라고 쓴다. 이것은 '구원의 암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일까.
아쉬운 점도 있다. 이훈의 "진실의 흐름"이라는 개념이 때로 과도하게 철학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독백들이 설명적으로 흐르는 부분에서 서사의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또한 2부와 3부 사이의 전환이 다소 급격해, 독자가 시간과 장소를 파악하는 데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정오』는 죄와 용서, 애도와 구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용기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쉬운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죄와 상처를 응시하게 만들고, 진실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안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 짊어져야 할 '질문의 시작'이다.
"영원을 스치는 순간"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더 애절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영원을 스치듯 살아가지만, 그 짧은 스침 속에서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놓치고만 살 것인가.
이 서평은 포새인 출판사의 도서협찬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