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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Sep 08. 2016

신파, 그 본질적 의미를 묻다

남산예술센터, 다르페튜토 스튜디오 <아방가르드 신파극>


‘신파(新派)’만큼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쓰이는 말도 없을 듯하다. 일본에서 나온 신파라는 말은 본래 17세기 말 시작된 민권운동을 바탕으로 성립된 목적성 뚜렷한 연극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파에 해당하는 양식화된 가부끼에 대항하고자 발생한 새로운 연극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특히 한국사회에서 신파 혹은 신파극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과장된 상황설정으로 관객을 울리는 데 목적을 둔 극이라는 오명은 오랫동안 신파라는 단어가 거둬내지 못한 굴레였다.


연극 <아방가르드 신파극>은 신파에 덧씌워진 이와 같은 이미지를 벗겨내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파극의 내용이 아닌, 본래 신파라는 이름이 지녔던 역동적인 움직임 혹은 경향성이다. 양식화되어 머물고 굳어지려는 예술과 예술가의 태도를 경계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에서 신파극에 ‘아방가르드’라는 단어가 붙었다. 이번 공연은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 프로그램이자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와 공동제작으로 만들어진다.




“신파는 어쨌든 구파라는 걸 전제해야 나올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근데 우리는 구파, 즉 가부끼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신파만 이야기해요. 결국은 가부끼가 양식화되면서 무너져 내린 지점에서, 그 자리에 신파라는 새 이름이 들어온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 신파를 이야기하고자 했을 때 가부끼의 원형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적극 연출가



극단 다페르튜토(Dappertutto, ‘어디로나 흐르는’)의 최근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공연은 연출가의 타이핑으로부터 출발한다. 무대 뒤편에 거대한 스크린이 드리워지고 여기에 연출가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타이핑하는 식이다. 이윽고 연출가는 무대로 나와 공연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한다. 왜 가부끼가 구파로 취급 받게 됐는지에 대해 4개의 장을 거쳐 시간의 역순으로 살펴본다는 내용이다. 공연팀은 가부끼를 1~4차로 나눴다. 여기서 1차 가부끼는 여자들의 무용극, 2차 가부끼는 미소년들의 무용극, 3차 가부끼는 분라쿠의 인형 조로리를 활용한 성인 남자들의 극을 뜻한다. 비록 인기에 편승하다 결국 풍기문란으로 부침을 겪기는 했지만 가부끼에는 이때까지만 해도 서민들의 공연예술답게 노나 교겐 등의 귀족예술을 탈피하려는 정신이 유지됐다. 그러나 4차 가부끼, 즉 신파극으로 넘어오면서 가부끼도 결국 특정 양식으로 굳어지고 만다.


성인 남자들이 인형 조로리의 대본을 가지고 공연을 만들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난 뒤 결국 가부끼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채 비대해진 양식성만 축적하면서 뇌사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은 오늘날 예술 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페르튜토와 적극 연출이 결국 주목하는 것은 신파의 진정한 의미다. 마치 디오니소스처럼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던 가부끼의 형식은 마침내 한 곳에 머무르면서(‘어디로든 흘러간다’는 다페르튜토의 사전적 의미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결국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과거를 통해 보는 미래


“연극이라는 장르가 하나 있고, 그 속에서 디오니소스가 뭉개지고 태어나고 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발견해서 양식화한 후 그걸 가지고 관객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민중을 기반으로 한 예술은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계속 저돌적으로 가곤 했다는 생각입니다. 관상용으로 만드는 귀족 예술이 아닌, 아무 것도 없는 쪽으로 가는 민중의 예술에는 훨씬 더 본질적이고 낮은 데로 향하는 힘이 있어요.” -적극 연출가



<아방가르드 신파극>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로 쓰인 것은 <폴린의 위기>라는 무성 흑백영화다. 주인공 폴린이 결혼하기 전 1년 동안 파란만장한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기를 이룬다. 적극 연출가는 현대에서 신파(新派), 즉 새로운 경향에 가까운 것은 무성영화라는 생각에 이 영화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은 바로 새로워지고 싶은 연극이라는 장르의 욕망이다. 영화 장르가 무대 멜로드라마의 모든 효과를 가져갔지만 무대라는 배경과 객석 사이 이뤄지는 상호작용만큼은 결국 가져가지 못한 만큼 도입부에서만 영화의 설정을 차용한 뒤 나머지를 무대 언어로 확장해 풀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모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파악해가는 것처럼 <아방가르드 신파극>도 공연이 흘러가는 동안 각종 연극적 실험을 감행하며 연극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즉 이 공연은 새로운 경향(신파)이라는 키워드 아래 미디어가 장악한 세계 속 새로운 연극성을 찾아나서는 과정,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무용수들을 대거 등장시킨 점이 특히 흥미롭다. 배우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연극의 경향을 탈피해 무용수-배우는 몸짓과 언어화되지 않은 발성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극장에서의 말하기라는 것마저 사실은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일종의 틀에 갇히게 되면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읽히는 대목이다. 


공연의 막바지에 이르면 무대 위 스크린이 걷히고 관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의 관객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다름 아닌 미래의 관객 모습이다. 끝없이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공연이 종국에는 무대를 넘어서서 관객의 모습까지 변모시킬 수 있다는 상상력이 흥미롭다. <아방가르드 신파극>은 이처럼 전체적으로는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되면서도 양식화되지 않은 과거의 것, 과거의 정신 중에 미래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죽음과 재생의 역동적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실험을 거듭하는 연극, 앞으로 만나보게 될 진정한 의미의 신파 연극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사진_남산예술센터 제공




일시: 9월 7~11일 수목금 8시, 주말 3시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구성·연출: 적극

안무: 밝넝쿨

드라마터그: 방혜진

출연: 김은경, 노래, 리우 용신, 박한결, 박형범, 밝넝쿨, 윤성원, 이지형, 정이수, 주하영

문의: 070-4912-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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