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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가 아닌 ‘주거문화재’

중계본동 104마을

by 서울문화재단

상계(上溪), 중계(中溪), 하계(下溪). 뭔가 시리즈 같은 이 동네 이름들은 전부 중랑천의 상류, 중류,하류라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 시내 계(溪)자를 쓰고 있었나 보다. 중랑천과 우이천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반달 모양인 데서 월계(月溪)라고 이름 붙여진 옆 동네에 비하면 조금은 심심한 작명이다. 원래는 경기도 양주군이었으나 1963년에 서울 성북구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1973년 7월 1일 도봉구의 신설로 관할구역이 변경되었고, 1988년 1월 1일 노원구가 설치되면서 노원구 중계동으로 바뀌었다.


1988년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이 지역의 달동네와 판자촌의 재개발 및 강제 철거에 대해 다루었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의 이미지가 강렬해서인지 지방에서 올라온 필자에겐 ‘이 일대는 왠지 가난한(?) 동네’라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재개발 이후 중계동에는 유명 학원가가 밀집하고 또 소위 ‘강북 8학군’이라 불릴 정도로 교육환경이 좋은 새로운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104마을(백사마을)은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서울에서도 홍제동 개미마을과 더불어 몇 안 남은 달동네이다. 산 104번지에 위치해 있어 104마을이라 불렸다는데,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나무가 너무 빽빽해 앞이 안 보일 정도라고 해서 무시울(무수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967년 대대적으로 진행된 도시정비사업에 의해 강제 철거당한 청량리, 용산, 마포 일대 철거민의 이주정착지로 지정되었고, 1972년부터 2008년까지는 개발 제한구역에 묶여 있어서 지난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불암산 둘레길

104마을을 찾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하철 1호선 창동역, 4호선 상계역 등에 내려 1142번 버스를 타고 중계본동 종점에 내려서 마을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 104마을만 보러 갈 생각이라면 이 행로가 정상(?)이긴 하다. 두 번째는 지하철 7호선 공릉역이나 6호선 화랑대역에 내려서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 가다가 중계본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방법이다. 가벼운 산행까지 겸해보고 싶다면 이 코스를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에는 두 번째 코스를 택했다.


7호선 공릉역에 내려 공릉산 백세문을 향해 걷다 보니 자전거길과 화사한 꽃이 있는 작은 정원들이 보였다. 기존에 경춘선이 다니던 철길이 없어지면서 생겨난 ‘마을의 뜰’. 구청에서 지원해서 만들었겠지만, 군데군데 동네 주민들이 직접 가꾸는 참여정원들이 곳곳에 있다. 설렁설렁 동네 마실 나온 듯 걷고 싶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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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병원 앞을 지나 큰길에 다다르면 ‘공릉산 백세문’이라 적힌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가는 등산로 초입이자 서울둘레길 1코스인 불암산, 수락산 코스의 시작이다. 지하철역에서부터 대략 15분 정도가 걸렸다. 초입에 둘레길 및 등산 코스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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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능선을 따라 오르는 그리 가파르지 않은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104마을 갈림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는 중계본동을 알려주는 표지판 방향으로 하산하면 된다. (예전에는 104마을 표지판만 찾다가 지나쳐버렸던 적이 있다. ‘중계본동’ 표지판이 나오면 그때 내려가야 한다.) 사실 한 시간 남짓한 코스라 가벼운 산책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생수통 하나 들고 산 기운을 즐기기엔 딱 좋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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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마을


그렇게 15분쯤 내려오다 보면 104마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뭔가 서울이라기 보다는 근교의 전원 마을을 찾은 듯한 느낌.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텃밭들 너머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바로 벽화들. 전래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해학적인 그림들에서부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림들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퇴적층 사이사이로 열린 갤러리를 우연히 발견한 듯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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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들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드리워진 미술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 독특한 색감을 드리운다. 박제화된 예술이 아닌, 일상으로서의 예술 같은 느낌. 그 배경들 속에서는 주민들이 햇살 아래 널어놓은 빨랫감조차 누군가의 붓터치 못지 않은 감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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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마을 시장길


중계로 6길을 따라 쭈욱 내려오다 중계로 4길과 맞닿는 즈음까지 오면 104마을을 소개하는 벽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왔더라면 사실 여기서부터가 104마을 탐방의 시작이 되었을 터다. 산책을 하면서 벽화를 통해 104마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집단 이주로 인해 천막 안에서 비를 피하며, 주어진 200장의 시멘트 벽돌로 직접 자신들의 집을 지어야 했던 이들, 1980년 들어 하나 둘 생겨난 니트편직공장(일명 요꼬 공장)에서 새롭게 삶의 터전을 찾았으나 IMF 이후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다시 한 번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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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길을 돌려서 내려가다 보면 시장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꽤나 번화하였을 터인데 지금은 어찌 보면 흔적만 남아 있다. 마치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기분. 낡은 간판들, 먼지 쌓인 좌판 조차도 꽤나 정겨워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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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마을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또 하나의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어쩌면 이곳은 서울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달동네’가 아니라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고이 간직한 ‘주거문화재’가 아닐까. 고단한 현대사를 지내온 그 시절 서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런 살아 있는 문화재.


지금은 꽤나 소문이 난 부산 감천문화마을이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옆 동네였다.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택들의 태반이 산복도로를 따라 산등성이까지 자리잡은 부산을 떠올려 보아도, 이 정도로 지난 시간의 모습을 간직한 곳은 찾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더 가다듬는다면 그 풍치는 감천문화마을을 충분히 넘어서리라 생각한다. 단순한 재개발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도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을 모아 새로운 재생의 공간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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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찾아가는 길


1)지하철 1호선 창동역, 4호선 상계역 등에 내려 1142번 버스를 타고 중계본동 종점에서 하차

2)지하철 7호선 공릉역, 6호선 봉화산역에 하차 후 공릉산 백세문에서 시작한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 가다가 중계본동 방향으로 하산



글·사진 박정선

골목길에 대한 집착(?)이 있는 남자.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부산 촌놈이 아무리 살아도 어딘가 정이 안가는, 낯선 서울이라는 녀석의 속내를 궁금해하다 <아지트 인 서울>이라는 책을 내고 말았다. 다음 스토리볼 <결혼해도 똑같니?> ,<기춘씨에게도 봄이 올랑가봉가?>등의 컬럼을 연재하기도 했고, 스타트업 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다 지금은 커머스 업계에서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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