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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Nov 15. 2016

배우 자신을 위한 대관식

나는야 연기왕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쉽게 평가한다. ‘저 배우 연기 좋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점이 좋았는지 정확히 말하기란 어렵다. 표정, 발성, 감정, 동작 등 연기의 요소들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지만 딱 하나 뭐라고 꼬집기 어렵다. 애초에 좋은 연기라는 기준이 있고, 그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연기라고 지칭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린피그’의 연극 <나는야 연기왕>은 이런 지점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가운데 노래, 춤, 힙합, 연기까지 참가자들의 경쟁을 통해 1등을 가려낸다. 요즘은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1등도 잘 기억해주지 않지만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경쟁을 이어나간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1등에 오른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봤다. 참가자의 어떤 면이 심사위원 그리고 대중에게 가장 뛰어나다고 참가자를 지지하게 하는지 고민한다. 연기란 무엇일까? 어떤 연기가 잘하는 연기이며 좋은 연기란 또 무엇일까?      



그린피그는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과 뜨거운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공연단체’로 한국 연극계에서 화제작과 문제작을 지속해서 생산해내고 있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추구해온 이들은 <나는야 연기왕>에서 오디션이 요구하는 연기에 도전하며 진정한 연기에 대해 배우 자신들의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치정>, <두뇌수술> 등을 연출한 그린피그의 윤한솔 연출은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재현’을 거부하는 연기라고 정의한다. 이는 배우 자신과 극 속의 허구적 인물을 일치시키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인 고전적인 사실주의 연기와 다르며 관객들이 기대하는 사실성에 기초한 연기와도 다르다. 윤한솔 연출도 ‘연기하지 않는 연기’에 대한 ‘부정형’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극은 1막과 2막으로 구분된다. 1막이 시작하고 배우들은 일제히 무대로 등장한다. 반원 모양으로 둘러싼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디션을 준비한다. 14인의 배우들은 저마다 각자 준비해온 오디션 연기를 시작한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김광림의 <날 보러 와요>, 장진의 <아름다운 사인> 등 배우의 개성에 맞게 준비한 연기를 세 대의 카메라 앞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중앙에 있는 카메라는 고정되어 무대 전면을 담고 왼쪽에 있는 카메라는 배우의 동선을 따라간다. 오른쪽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 혹은 동작이 아닌 손과 발을 지속해서 비춘다. 배우의 표정과 동작이 아닌 손 혹은 발을 비추면서 배우는 무엇으로 연기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뒤에 있는 스크린을 통해 세 대의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도중에 다른 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 나중에 등장한 배우는 먼저 연기를 하고 있던 배우가 자신에 대해 쓴 글을 읽는다. 배우의 연기와 배우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글이 충돌하기도, 보완되기도 한다. 배우의 대사가 끝나고 나서도 자신에 대한 글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그 글 속에서 배우 자신이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왜 연기를 하는지, 연기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는 부분부터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과 덩치가 큰 콤플렉스까지 스스럼없이 담겨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은 막심 고리끼의 <밑바닥에서>를 연기한 박하늘 배우의 질문이다. 배우는 ‘나는 왜 연기를 그만두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일반적으로 연기에 대한 질문은 나는 왜 연기를 ‘계속’하는 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그만두지 않는가’를 질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인 질문에서 배우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박하늘 배우는 자신을 맨 뒷줄의 배우로 칭하면서 못하는데 잘할 가능성이 있는 배우라고 명명한다. 낭독이 끝나고 다른 배우들은 오디션의 풍경처럼 연기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 낮게는 4점부터 높게는 9점까지 서로의 연기를 평가한다. 



2막에서는 ‘연기하지 않는 연기’에 대해서 탐구한다. 연기왕이 되기 위한 왕의 독백을 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멕베스>, 김광림의 <홍등지는 살아있다> 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자신이 선택한 배역과 동일시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배역과 배역의 대사를 바라보고, 배역의 말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들은 텍스트를 일차적으로 암기하고 발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연출하고 사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타인에 의해서 평가받는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맞서는, 가면을 쓰지 않은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며 스스로 왕임을 선언하게 된다. 



<나는야 연기왕>을 통해 소위 말하는 잘하는 연기와 못하는 연기의 기준은 무엇인지, ‘잘하는 연기’라는 부정확한 실체를 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또 진짜 같은 연기가 가장 진실 되지 않은 연기일 수 있음을 고민하게 한다. 윤한솔 연출에게서 시작된 질문은 배우들에게 번졌고 <나는야 연기왕>이라는 실험을 통해 관객들에게 주어진다. 과연 배우들은 자신들에게 왕관을 씌워줄 수 있을지 관객들은 오염된 ‘좋은 연기’라는 기준을 버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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