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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Nov 22. 2016

익숙해져버린 모든 것에 대한 반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드씨어터 대학로>


연극을 연극이게끔 하는 아주 중요한 특징은, 모든 것이 라이브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관객은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관객은 자신이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쓰러지거나 느닷없이 죽는다고 해도 놀라지 않고 꿋꿋이 참아내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가 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규정하는 것은 무대와 객석으로 이루어진 극장이라는 공간이다. 또한 그 공간 안에 속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이 켜져 있을 때만 살아 움직이기로 약속하게 된다. 하우스의 불이 내려가면 관객들은 입을 다물고 배우가 만들어내는 세계를 바라본다. 이 공간과 세계에 대한 약속들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게 굳어진 연극의 기본적인 룰이다.


다음, 대학로.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나와 뒤만 돌면 보이는 서울연극센터와, 대학로 곳곳에 숨겨진 극장들을 보여주는 지도가 있다. 연극 하면 대학로이고, 대학로 하면 연극이다. 주말이면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나 기분전환을 하러 삼삼오오 모여 온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꽉 메운다. 자연히 번화가가 된 대학로는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번쩍거리는 간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대학로의 모습이다.


그리고 <로드씨어터 대학로>는 우리가 기억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되짚어보면 그 이름부터 로드씨어터(roadtheater)다.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리라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 표가 한껏 났다. 그러나 이름만 들었을 때는 아직. 길거리 연극이 점점 선보여지는 추세이니, 그것과 크게 다를까 싶다. 그렇게 극장에 도착하면 안내원들은 곧바로 헤드폰을 나눠주고,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고 안내해주고, 혹여나 배터리가 없을까 염려하여 보조배터리까지 챙겨준다. 평소 극장에 들어설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을 머금지만, 그래도 아직 침착하다. 그러나 ‘극장으로 안내된 공간’에 발을 딛는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연극의 관객으로 참여하였지만, ‘관객’ 역을 맡고 있는 배우가 된다는 것을.



내용은 단촐하다. 연극 <햄릿>의 캐스팅 발표날, 공연이 엎어 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배우들은 실망해서 연습실을 떠난다. 관객은 조연출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끊임없이 안내를 받으며, 배우들을 찾아 온 대학로를 무대로 하여 쏘다니게 된다. 걷다 보면 대학로의 사람들이 민트색 헤드폰을 쓴 채 길거리를 걷는 관객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럼으로써 제 3의 관객들이 생긴다. 헤드폰에서는 때마침 나레이션이 나온다. “우리는 <로드씨어터>의 관객일까요? 아니면 배우일까요?” 어디까지가 무대고 어디서부터가 객석인지가 모호해짐과 동시에, 너와 내가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약속은 깨어진다. 


그렇게 쭉 연극을 따라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대학로의 모습은, 번화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대학로 한복판의 술집과 횡단보도, 연습실과 대학로 아주 깊숙한 곳 숨겨진 누군가의 집 앞에서, 우리는 이미 굳어져버린 대학로의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속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부딪힌다. 수없이 스쳐 지났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나뉘고,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대학로의 이면을 체험하게 만든다. 스스로 누르고, 듣고, 걷고, 보고, 접촉하면서. 그것은 그저 목격하는 것으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울림을 가져다준다. 사실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별 것도 없이 흘려보내고 있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되고 그것을 통해 특별해지는 과정이 마음에 어떤 전율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어설픈 희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배우들이 “공연을 한다구요?” 물으며 다시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그들의 <햄릿>을 만들어 공연하는 장면이 되었을 때, 관객들은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하는 관객의 역할로 극장을 채우게 된다. 감동의 순간에 함께하기를 원했던 걸까?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보잘 것 없게 느껴졌던 내 삶이 주인공의 삶으로 재현되어 기뻤던 순간들은, 그 대책 없는 희망으로 마치 판타지처럼 멀어진다. 분명 어쩔 수 없이 엉성했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조용히 밀려오는 감동에 묻힐 수도 있었 을텐데. 동화와도 같은 해피엔딩은 그 모든 엉성함들을 한꺼번에 부각시켰던 맺음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다정했다. 이 공연은 약속을 부수고, 화려한 공간의 화려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며, 평이한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특별하게 만든다. 관객들이 오감으로 체험하게 만든다는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 그 장르적 성격에 충실했던 공연이다. 내가 몸담고 있으면서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대학로의 ‘삶’이 비로소 새롭게 와닿았고, 그로써 이 공연이 내게 건넨 위로는 사뭇 따뜻했던 것 같다. “당신이 본 대학로”에 “오후의 대학로에 쏟아지는 햇빛, 습도, 소음, 거리의 행인들…….” 그 속에 녹아 있는 우리의 삶. 연극 한 편의 배우가, 또 주인공이 되어준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최성현 대학생

연극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ydh23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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