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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Nov 30. 2016

과정의 예술, 절충의 미학

[연극을 이루는 또 다른 창작의 세계] ① 무대디자이너 편

일시: 2016년 10월 11일(화)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참석: 김다정, 박상봉, 신승렬 
사회: 부새롬
기록, 정리 : 허영균




 

부새롬

부새롬

반갑습니다. 현장에서 늘 만나던 분들인데,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니까 또 새로운 것 같다. 오늘은 무대디자이너들의 창작 세계, 다른 창작자들과의 협업과정, 한 편의 무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저도 아주 어릴 때부터 연극을 봤다. 그때는 연출가가 무대 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줄 알았다. 무대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연출이 시키는 대로, 무대도 의상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관객의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대디자이너란 직업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도 아직 많을 것이다. 누군가 ‘무대디자이너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여러분 각자가 내놓을 답이 궁금하다.





공간과 환경을 만든 일


박상봉

무대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연극에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일반적인 풍경에서 볼 수 없던 느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한정적인 환경에서 공간을 이어가야 하기에 생겨나는 다른 의미들이 있다. 연극 그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 특성에 반응하여 무대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공간에 따라, 텍스트에 따라, 연출가와 대화를 통해 공간을 이해하는 전혀 다른 키워드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매번 다른 개념으로 작업은 이루어지고 있다. 한정된 곳에서 한정된 표현을 함에도, 매 작업이 비슷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익숙해지지 않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직은 젊은 디자이너의 축에 들기 때문에 계속 찾아가고, 부딪히고, 깨지는 중이란 말밖엔 할 수 없다. 아마 10년 뒤에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다른 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승렬

무대디자이너는 공간을 다루는 직업이다. 극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확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 너머의 공간을 보게 하는 것이다. 무대미술을 다루는 책도 많지 않고, 무대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책도 없어서, 처음에 공부를 시작할 때는 건축학의 개념을 많이 참조하고 참고했다. 예전에는 건축이란 말이 없었고, 대신에 영조(營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영조는 ‘꾀하여 짓는다’는 뜻인데, 밥을 짓듯이 공간을 지어내는 사람을 무대디자이너라 생각한다.


김다정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무대디자인이란 텍스트의 배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텍스트를 읽으면서 작품의 배경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 작은 부분 같다. 요즘은 한 공연 안에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란 생각이 든다.





작품을 만나는 나만의 과정 Vs 협업의 과정


부새롬

아마 많은 관객이 김다정 디자이너가 언급한 부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희곡이 요구하는 공간을 그럴듯하게, 예쁘게 꾸며주는 사람이라고 무대디자이너를 좁게 생각하기 쉽다. 거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작은 주제로 돌아가 보자. 대부분 작품은 처음 만나지 않나?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자신만의 접근법이 궁금하다.


신승렬

공간을 잘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연출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고,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자주 바뀌는 편이니, 최대한 취향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업할 때 당시의 취향 자체가 작품에 영향을 많이 주더라. 취향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일단 연출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무대미술가로서 매우 중요한 점인 듯하다.


부새롬

하지만 대체로 미리 대본을 받아 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연출을 만날 수는 없지 않나?


신승렬

우선은 연출의 생각을 듣는다.


부새롬

연출의 생각이 자기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를 때도 있지 않나.


신승렬

물론 그럴 때도 있다. 연극이란 설득의 예술이기 때문에, 서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작업 초기 단계에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 나도 내가 생각하는 바를 설득하고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최대한 설득은 하지만 키를 잡은 것은 연출이니까 연출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새롬

연출의 생각이 터무니없을 때도 종종 있지 않은가?


신승렬

정말 많았다. 말도 안 된다 싶은 것도 많았고. 그러나 결국 마지막 결정은 연출의 몫이다. 무대에 올라가서야 연출의 고집이 이해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는 이 연출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최근 무대디자인을 시작하는 창작자에게는 아마도 이런 경우가 무대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부새롬

협업자의 숙명인 듯하다. 박상봉 디자이너는 어떠한가?


박상봉

내 작업은 어떤 프레임 속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텍스트를 읽었을 땐 여러 장면이 구상된다. 특히 요즘은 많은 텍스트가 영화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가감 없이 읽다 보면,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나 전환성이 훌륭하지 않은 극장일 때, 장면전환이 많이 요구될 때 그렇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텍스트에 적혀있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들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을 표시한 다음, 전환이 필요하지 않은 장면을 점검한다. 가장 먼저 거르는 것은 꼭 무대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이다. 꼭 필요할까?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진다. 무대미술은 공간을 다룬다. 극이라는 시간을 같이 안아주어야 한다. 장면만 생각하고, 장면만 그려낸다면, 세트 제작의 일과 다른 바가 없을 것이다. 텍스트가 흘러가는 시간과 템포 역시 무대미술가에게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장면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환을 많이 줄여가는 중이다.


김다정

김다정

대본을 먼저 받는 경우가 많아서, 대체로 대본을 먼저 읽는다. 만난 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면서 이미지, 단어,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해서 그와 비슷한 이미지, 자료를 찾아본다. 그 후에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얘기를 많이 하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연출이 있고, 디자이너에게 다 맡기는 부류도 있다. 그에 따라 나의 작업방식도 달라진다. 그림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이야기 속에서 꽂히는 것을 잡아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그 경우에는 리서치보다 연습을 많이 보고, 떠올리면서 창작을 해나간다.


부새롬

연출이 요구하는 것이 나의 상상과 완전히 다를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


김다정

나는 내 디자인을 먼저 어필하는 타입의 디자이너는 아니다. 연출에게 많이 맞춰주는 스타일이다. 정말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들게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했으나 얘기를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 달라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내 이상은 싸우면서 작업하는 것인데,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맞춰주고 있다(웃음).


부새롬

앞서 박상봉 디자이너가 필요와 불필요에 관해 이야기했다. 연출과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때도 있을 것이다. 무대나 작품에 대한 나의 개념과 스타일을 버려야 할 땐 없었나? 디자이너의 입장에선 버려야 하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모두 그려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나?


박상봉

연출의 주장이 나와 대척점에 있지만, 그 자체로 설득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리고 논리가 있다면 대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땐 정말 많이 싸운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구체화하길 원하는 그림이 다를 뿐, 원하는 것은 같을 때가 많다. 연출이 말하는 장면성, 장면의 크기를 읽어내 줄 필요가 있다. 연출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무대 장치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은 에너지다. 그만큼의 에너지. 경험이 없는 연출일수록 일차원적인 제시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때는 무대디자이너가 그 열망을 읽어내 줄 필요가 있다. 그 장면에서 연출이 보여주고 싶은 에너지를, 감각적으로 통일된 이미지로 채워줘야 한다. 즉, 무대디자이너가 무대디자인의 언어로 해석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난제 그리고 해결의 방법


부새롬

연출이 원하는 바를 무대디자이너의 언어로 통역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연출들이 머릿속에 떠올린 그림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보여줄 수 있는 효과인지 구분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다른 화제로 옮겨가 보자. 연출가의 협업 이외에 무대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난제들은 없나? 예를 들어 예산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내가 무대디자이너일 때는 극장을 선택할 때, 무대디자이너가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폭넓게 생각하고 답해 달라.


김다정

무대디자이너라기보다 한 명의 작업자로서 느끼기에 공연을 만드는 일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얘기도 많이 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런 일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라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도 극복해나가는 중이다. 이 점이 가장 힘들다. 그 다음은 역시나 예산이다. 저예산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작업을 경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디자인을 시작하면서부터 예산에 묶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더 멀리 보고 싶고, 더 크게 생각하고 싶은데, 스스로 이점에 묶여 발전을 못 하는 것 같아서 힘들다.


신승렬

신승렬

나는 목표가 같은 작업 환경일 때, 예산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내가 하고 싶다고 우길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어떤 연출인가? 어떤 사람인가가 작업을 함에 있어 많이 중요하다. 자신의 목표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미리 파악해야 한다. 공동의 목적을 같이 이룰 수 있다면 작업이 가능하다. 그 단계가 매우 초라할지라도.


부새롬

예산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글이 나가면, 많은 연출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웃음). 이 작품엔 이 정도가 갖춰지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예산 문제로 포기하는 일이 축적되면, 예술가로서의 디자이너를 지치게 한다.


박상봉

극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학로를 기준으로, 새로 지어지는 극장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프로시니엄 극장도 아니고, 프로시니엄을 흉내 낸 극장이 많고, 관객의 시각선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상업적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뻔한 극장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극장들은 왜 이렇게 프로시니엄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블랙박스 극장은 일종의 올라운드 롤플레잉을 가능하게 한다. 등, 퇴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새로운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유도된다. 연출가뿐만 아니라 무대디자이너에게도 환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 형태의 극장은 손에 꼽는다. 새로 짓는 극장 중엔 블랙박스 극장이 많아지길 바란다. 획일화된 공간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이 지점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은 듯하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으면 좋겠다.


부새롬

천장이 높은, 블랙박스 형태의 창고형 극장이 대학로에 하나라도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학교에는 더러 그런 공간이 있는 듯하지만, 오히려 현장에 없다는 것이 의아하다. 극장 외에 이색적 공간에서 작업해본 경험이 있나?





공간의 재생과 확장


박상봉

야외극을 해봤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거리가 주는 상황적 에너지는 물론 좋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면서 느꼈던 것은 딱히 공간적으로 사용할만한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한 공간을 점유하는 작업이라 할지라도, 장소 특정적이라기보다는 줄 쳐진 광장일 뿐이라 생각이 든다. 전기를 끌어오거나 하는 부분은 오히려 작업하기에 어렵다. 지자체 행사나 축제가 이런 경우가 많은데, 아직 딱히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없다.


신승렬

최근 세계적인 관심이 리사이클링 시어터에 쏠려 있는 것 같다. 특히 유럽 쪽의 관심이 뜨겁다. 우유갑을 이용해 극장을 만들거나 하는 식인데, 곧 무대 디자인이 아닌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빈 상가를 침입하여 극장을 만들거나 하는 것도 포함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한 일이라 진부하게 됐지만, 아비뇽 교황청에서 공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경복궁 같은 곳들에서 공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취지의 새로운 발견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공간들이 일시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찌 됐던 하나의 새로운 극장 형태가 탄생하는 것이니까.


부새롬

서울역구역사, ‘문화역서울284’가 대표적인 공간인 것 같다. 초창기에 그곳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굉장하더라. 그 안에서 진행되는 공연이 좋거나 말거나, 공간이 주는 느낌이 공연을 이겼던 경험이 있다.


신승렬

작년에 갔던, 뉴욕 브루클린의 BAM극장이 인상 깊었다. 옛날 극장인데, 화려한 장식들이 다 뜯어져, 뜯어낸 공간, 철근, 골조 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골조와 기둥 사이에는 시멘트를 투박하게 올려 두었다. 극장이 주는 힘, 에너지가 달랐다. 그 극장을 보며 감동했다. 공간을 재생시키는 일 역시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다. 재생 극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새롬

그 이전에 비해, 작가나 연출가, 배우 외의 나머지 창작자들의 위치와 위상이 중요해지고, 강화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예전보다 무대디자이너가 창작자로서 대접받고, 인정받고 있다고 실제로 느끼는지 궁금하다.


박상봉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문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무대를 구성하는 사람이 있고, 공간의 개념부터 같이 출발하는 연출가도 있다.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보기도 하고. 디자이너에게 참 민감한 부분인데, 연출가만큼 혹은 연출가보다 더 깊이 공간에 대해 해석해내야 하는데, 마치 모두 연출가가 해낸 것처럼 이해되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아쉽기도 하다. 무대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저 인테리어처럼 장치를 만들고, 무대를 세우지 않는다. 자신만의 미학성과 공간성으로 연극에 접근한다. 그런 공부를 하고 싶어도, 예가 많지 않고, 해외의 사례들은 국내의 실정과 다른 경우가 많아 참 어렵다. 좋은 작업자들이 나오려면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좋은 생각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한 분야의 수준이 높아질 텐데, 그런 사람들은 환경의 미흡함으로 인해, 많이들 연극계를 떠난다. 남들과 다른 생각 때문에 연극을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시선과 평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부새롬

처음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배우와 대화를 하다가 ‘그래서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이라는 말을 했다. 그때 대화 중인 배우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데, ‘누나는 연극을 하는 사람 아니잖아’였다. 그땐 너무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연습실에 있는 사람들만 연습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그런 인식이 남아있다고 보는가?


신승렬

사실극 위주의 극단도 있고, 디자이너까지 공동창작자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극단도 있다. 하지만 비율로 보면, 아직은 충분히 다양하지 않다. 그래서 디자이너에게도 다양한 작업 태도가 있기보다는, 특정한 몇 가지의 역할만 있는 듯하다. 세트 디자이너로만 취급되기도 하고, 아티스트로 여겨지기도 한다. 디자이너 스스로가 ‘내가 아티스트로서 서 있는가’라는 자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외부 환경에서 자신을 아티스트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기 스스로 아티스트로 서 있는가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제작비 개런티 합쳐서 얼마”라는 식으로 작업비를 이야기할 때 마음이 상한다. 다만 만원이라도 디자인에 대한 작업비를 따로 책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런 방식은 디자이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박상봉


박상봉

그래서 파트너쉽이 더욱 중요하다. 배우, 디자이너 구분 없이 모두가 한 연극을 잘 해보겠다고,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공연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오게 한 아름다운 불씨다. 아름답지만, 당연한 일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있는 일도 아니다. 디자이너의 경우엔 특히 더 한데, 배우들은 오디션이라도 있지만, 디자이너들에겐 인맥 말고는 딱히 자기 베이스를 찾을 방법이 없다. 다른 출구가 없는 것이다. 졸업한 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자기 존재를 알리고, 그들과 동반 성장해야 잘 될 수 있다. 나도 참 힘들었고, 다른 누구라도 힘들 것이다. 내가 준비되어있더라도, 내가 기획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힘든 분야다.


신승렬

스스로 자신을 아티스트로 여겨야 한다. 최근 미술 쪽에서는 연극, 공연 쪽에 침입을 많이 한다. 장르적으로 크로스오버가 많다. 반면, 연극 쪽에서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 공연에 대한 이해, 기술이 수준은 높지만 배짱이나 과감함,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이 하나의 예술 분야로서 넘나듦이 다양해지고, 더 과감한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단순히 연극판 안에서 수요와 공급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상봉

미술을 하다가 연극을 선택한 이유는 더 '살아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연극이 가장 실제적이고 에너지가 살아있던 예술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고,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지만, 연극이란 참 뛰어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공부가 되는 예술이다. 만일 미술만 했다면 이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 것 같다. 연극 자체의 예술성도 뛰어나지만, 연극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매우 뜨겁고 아름답고, 배우고 의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그것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많진 않아도 창작자들이 서로 많은 자극을 나눌 수 있는 생태계가 됐으면 한다.


김다정

공연하면서 무대만이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다 같이하는 과정이 배우는 것이 많다. 인격적 성장이 되는 작업이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기도 하고, 항상 작품을 할 때마다 성장하는 일이다. 그게 좋아서 계속하고 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다른 디자이너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부새롬

대학로는 참 가난한 공간인데, 막상 진입하기엔 어렵고 애매한 곳이다. 배우들에게는 오디션 보기도 힘들고, 무대디자이너는 오죽 하겠나. 어딜 가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참 모호하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같은 창작자로서 서로 대접해주는 방법밖엔 없는 듯하다. 공연 이후, 무대디자이너가 무대 이야기가 아닌 배우의 연기나, 음악이나, 의상 등 다른 부분에 관해 이야기 할 때 기분이 좋다. 자기 작업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 그 자체를 두고 풍요로운 대화를 할 때 매우 기분이 좋다. 이런 자리를 통해 무대디자이너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전 보다 정확하게 인식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허영균 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 디렉터

LIG 문화재단 계간지《interVIEW》의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재)국립극단 학술출판팀 에디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프로그래밍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며, 동시에 프린지페스티벌, 다리 인큐베이팅, 하이서울페스티벌 등을 통해 공연을 만들었다. 현재는 예술-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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