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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Feb 09. 2017

로봇에 민증을 허하라

[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차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종종 저 멀리서 경광봉을 아래위로 규칙적으로 휘젓는 분들을 보게 된다. 아 무슨 공사를 하나 하면서 가까이 지나가다보면 섬뜩해지곤 한다. 비가 심하게 오거나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이는 경우엔 까무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 집 건너 있는 요란한 간판의 휴대전화 매장들 중 유난스러운 곳에는 짧은 치마에 발토시를 입은 비쩍 마른 분들이 규칙적으로 행인들을 향해 끊임없이 배꼽인사를 한다.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정녕 이 자동인형에게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어 매장에 들어가 휴대전화를 사는 소비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생각해본다. 마찬가지로, 차도의 자동인형은 과연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 놓은 건지, 놀래키려고 놓은 건지,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고 자동차로 쳐도 된다고 놓은 건지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왜 사람 모양이어야 했을까. #그것도_누가봐도_가짜


공사중이어서 행복해요


ICT(뭔가 했네,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 IoT(이모티콘인줄, 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등 각종 있어 보이는 영문이니셜의 강국이자 디지털 융복합 창조경제혁신 문화융성 통일대박 4대 사회악 근절 코리아에서 이런 최첨단 휴머노이드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는 2017년, 유럽연합 의회는 최초로 국가차원에서 A.I.(인공지능)로봇의 지위와 개발 및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세계의 산업과 사회시스템에 빠른 속도로 그 영역과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무인주행자동차 시스템, 산업용 로봇 등을 포함한 모든 인공지능 로봇에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전자’인간’으로서의 특정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 예비군 훈련 받는 소리 같은 이 결의안은 실제적으로는 EU 안에 A.I.기술/윤리연구소를 새로 만들고 A.I.가 변화시킬 고용모델에 따른 조세시스템을 개편할 것을 핵심으로 권고하는데, A.I.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보편소득의 재원을 로봇의 소유주에게 부과한다는 정책이다. #고마워요_태권브이

A.I.로봇을 단순한 도구나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법적 존재로 인정한 이 결의안의 주요원칙은 놀랍게도 전설적인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진 자신의 소설 『아이,로봇(I,Robot: 1940~1950 연재)』에서 제시한 그 유명한 “로봇원칙”에 기반 하는데, 이는 “1)로봇은 인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2)1전제 하에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1,2전제 하에 로봇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로 이루어져 있다. 독립적으로 진화해 인간의 제어를 벗어날 수 있는 지금의 A.I.기술의 위험에 대한 대책으로는 제어불능 시 A.I.의 작동을 중지할 수 있는 “킬 스위치(Kill Switch)”의 탑재를 의무로 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쯤 되면 역시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원작인 S.F.소설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를 쓴 필립 K.딕(Philip K. Dick)이 입체영상이 되어 떠오르는데, 생명체에만 쓰이는 개념인 ‘삶’과 ‘죽음’을 로봇에 적용하여 인간의 본질을 묻던 이 질문들이 어느 샌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우리의 사회 시스템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SF_이즈_소오름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 <여인의 음모(Brazil:1985)>)


전자인간으로 규정된 A.I.로봇의 거의 대부분은 아마 인간의 외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거나 심지어 물리적인 모습 자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인간과 공존하며 세계의 중요한 변화와 어쩌면 부작용과 위험까지도 가져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발전은 확장하면서 인류의 공존에 끼칠 위험은 줄이기 위해 ‘전자인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개념 규정이 선행돼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에는, 즐겁지 않은데 웃고 있고 단순하고 위험한 작업을 반복하며 소모되는, 인간의 어설픈 모양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외형과 이들이 만들어낸 현상을 재현하는데서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과 과오, 무엇을 지향해야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규정의 범위가 과연 고정적이었나 생각해야 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종과 인종에 대한 착취와 배제, 소모와 공멸의 역사를 돌이켜봐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보듯, 그 역할의 큰 부분을 예술이 해왔다.

고정 불변의 개념과 규정 안에서 당위를 외치는 일이 예술이 수행해야 할 임무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은 늘 개념과 규정을 변화시켜오기도 했다. 그 임무를 부정하고 무력화시키는 어떤 흐름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은 예술의 당연한 태도이다. 더불어 그 현상의 개념과 규정의 범위가 과연 고정적인가 늘 생각해야 할 것이고, 예술의 본질과 과오,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단호하게 의심해야 할 것이다. 앞날을 예측하고 예언하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 아니라, 예술이 해내는 반성과 질문의 날카로움에 의해 이후의 개념과 규정이 바뀌는 것이다.


타이머로 내장된 ‘킬 스위치’에 의해 ’죽음’을 맞는 안드로이드 로이, 영화 <블레이드러너(Blade Runner: 1982)>)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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