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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Mar 25. 2017

[2017년 예술지원제도를 묻다] ② 다년간 단체 지원

[연극人_웹진] '장기적', '단계별' 예술지원

연극人_웹진
[2017년 예술지원제도를 묻다] ② 다년간 단체 지원제도
'장기적', '단계별' 예술지원
똑같은 예술을 만들어내지 않는 제도를 원한다



일시: 2017년 2월 14일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사회: 최윤우 

참석: 고강민, 유영봉, 임후성

기록 및 편집: 김슬기


최윤우

최윤우
웹진 『연극in』의 기획연재 ‘예술지원제도’에 대한 두 번째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자리해 주신 분들은 극단 동의 강량원 연출님,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강민 대표님, 극단 서울괴담의 유영봉 연출님, 그리고 극단 피오르의 임후성 연출님입니다. 극단 동은 서울문화재단의 공연단체 다년간 지원에 선정되어 지난 3년간 지원을 받았었고요. 극공작소 마방진과 극단 서울괴담은 각각 경기문화재단과 서울문화재단의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극단 피오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에 참여하셨고요. 각각의 사업들이 목표하고 지향하는 바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오늘 좌담에서는 개별 작품 지원과는 다른 트랙에서 장기적인 지원이나 단계별 지원을 하는 예술지원제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현장의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창작 환경



최윤우
먼저 어떤 이유로 각각의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그리고 그 사업을 통해 어떤 활동들을 하게 되셨는지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도 구체적인 동기나 배경은 조금씩 다르겠지요.

고강민
극공작소 마방진은 2013년도부터 지금까지 경기도 구리아트홀에 상주단체로 들어가 있습니다. 당시 대학로에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임대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면서 새로운 공간을 찾고 있었죠. 그때 하던 작품들에 많은 인원들이 출연하기도 했고, 칼싸움을 한다든지 몸을 쓰는 장면들이 있어서 넓고 높은 공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마침 경기도 쪽에 구리아트홀이 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을 하게 된 거죠.
             

유영봉
저희는 지금 공연장 상주단체로 들어간 지 4년 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2013년도에 처음으로 이 사업에 선정되었을 때는 주로 마을의 빈 공간을 아지트로 만들어서 작업을 하던 때였어요. 사실 공연장 상주단체가 되면서 저희가 해오던 거리예술을 이 사업의 취지에 맞춰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구민회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주차장, 배드민턴 코트, 건물 옥상 같은 다양한 공간들을 활용할 수 있었어요. 말하자면 공연장이라기보다 ‘공간’ 상주단체가 된 거죠.


최윤우
2016년부터는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으로 들어가셨잖아요. 두 공간의 차이로부터 생긴 변화라든지 옮겨가고 난 이후를 이전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유영봉
2016년부터 상주단체 육성지원의 공간 조건이 ‘공연장으로 등록된 공공 공연장’으로 한정되었죠. 마침 그때 예술가들이 모여서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을 공동 운영해보자고 하던 때여서 저도 작은 역할을 맡고 있었거든요. 사실 저희는 극장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활동을 하지 않으니 이 사업이 저희에게 딱 적합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 응했던 이유는, 성북구라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면서도 애초에 군시설이었던 이 극장의 장소성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우리 활동에 맞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공간을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북구는 저의 삶터이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예술가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며 예술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최윤우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이 2009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사업이라면, 공연예술창작산실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작했던 창작팩토리 사업을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예술지원제도인데요.


임후성

극단 피오르는 2012년 창단했으니 실상 매우 신생 극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위한 기회와 재원을 마련하려고 이런저런 예술지원제도의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성공하지 못했죠. 아마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신뢰를 얻기도 어려워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창작산실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업이 대본을 공모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극단인지, 연출가가 누구인지, 혹은 극단 연혁이나 제작 능력 등에 상관없이 대본만 놓고 심사를 했기에 저희한테도 기회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거죠. 대본 공모 이후 시범공연을 통해 실연으로 갈 작품을 선정하고, 그렇게 해서 무대화된 공연들을 재지원하는 심사가 또 있어요. 이 사업을 통해서 두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최윤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각의 사업들이 개별 단체들 입장에서는, 봉착해있던 공간의 문제를 해소하거나 지역에서의 활동 거점을 마련하는 방식, 그리고 연극계 진입을 위한 경로로서의 역할을 한 것 같은데요. 공연단체 다년간 지원은 보다 근원적으로 그 가능성이 온전히 열려 있다는 점에서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 형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량원

일단 3년이라는 시간이 보장되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극단 활동을 정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전에는 저희 극단도 개별 작품 지원을 받아서 공연을 해왔는데, 마침 당시에 극단 내부적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이 사업을 통해서 장기적으로는 극단의 구조를 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서울문화재단 쪽에서도 극단 체제 자체를 정비하려는 저희 의도에 동의를 해주셨습니다. 그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우리의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찾아나갔던 거죠. 사실 창작자들이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들을 할 수는 있지만 극단 입장에서 다 같이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임후성

강량원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무엇보다도 한 극단, 그 극단의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기 전에 스스로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지켜주고 그 호흡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하나의 생각이 잘 익어나가는 과정이 만들어지는 거고, 그것은 최종적으로 무대화된 공연만으로 성과를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원제도에 맞춰가기, 지원제도를 활용하기



최윤우
지금 다년간 지원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잠깐 얘기해주셨는데요. 이어서 각각의 지원제도를 경험하셨던 입장에서 그 사업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개선되어야 할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것들은 없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년간 지원의 경우 2016년도에는 신규 단체 공모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장에 꼭 필요한 제도이고, 다른 사업들 역시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문제점들을 개선해가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임후성
사실 저희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극단 입장에서는 창작산실과 같은 기회가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죠. 다른 사업에 비해서 지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제작 여건을 갖추는 것도 가능했고요. 하지만 창작산실은 기본적으로 경연이기 때문에 뽑히면 희열이 있지만 그 과정이 비릿하죠. 과연 이 작품이 선정될 수 있을까 주눅이 들기도 하고요. 한 번은 쇼케이스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은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본도 어려운데 공연은 좀 쉽게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였죠. 물론 저희가 잘하지 못했으니 떨어졌겠지만, 관객을 만날 때는 쉽게 가야만 한다는 게 좀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도대체 이와 같은 지원 사업을 통해서 무엇을 시도할 수 있는지 모순을 느꼈던 거죠.


강량원

그런 점에 있어서 다년간 지원은 비교적 자유롭고, 그것이 이 제도의 큰 장점이라고 봅니다. 극단에서 하고 있던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반영하고, 결국 그동안 우리가 풀지 못했던 일련의 문제들을 하나의 맥락 안에서 공연화할 수 있었거든요. 우리가 처음부터 그것을 의도했다기보다는 다년간 지원이라는 이 사업이 예술가로 하여금 다른 방식의 제작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행정적 편의에 맞춰 예술적 행위들이 중단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해왔다면, 이 사업 기간 동안에는 단지 하나의 공연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가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점검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이제 3년이란 지원 기간이 다 끝났는데도 큰 불안이 없는 것 같아요.


유영봉

실은 공연장 상주단체로 받는 지원금이 개별 작품 지원을 세 번 받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다만 안정적인 창작 환경이 갖춰진다는 게 장점인데, 저희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해요.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워크숍을 한다든지, 시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 관객들이 참여하는 작업 등을 통해서 하나의 순환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다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나가려고 합니다. 단지 양질의 콘텐츠 하나를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맥락은 아닌 거죠.


강량원

다년간 지원도 상주단체 지원과 마찬가지로, 개별 작품 지원으로 쪼개 놓고 보면 현격히 많은 지원금을 받는 건 아니에요. 다만 실제로 이 사업에 신청할 수 있고 선정될 수 있는 단체들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큰 특혜처럼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 단체들도 결국 개별 작품 지원을 신청하게 될 거고, 무대에 올리는 공연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다년간 지원이나 개별 작품 지원이나 비슷한 규모거든요. 다년간 지원이 현장의 창작자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에 대한 합의는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은데, 그럼 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 전략들을 찾아야지요. 이 사업에 선정된다는 것이 다른 이들의 기회를 뺏어가는 것처럼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강민

마방진도 공연장이 위치한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활동해온 극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시선들에 부딪칠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상주단체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 여러 모로 저희에겐 좋은 기회가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네트워크나 여타 자본을 활용해 극단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더 전파력 강한 단체로 거듭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오히려 매년 사업을 준비하고 계획하면서도 행적적인 절차와 이유 때문에 그것이 가능할지 그렇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니 지치는 일이 많았죠. 새해가 되면 적어도 4월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 놓고 있다가, 다음 해를 기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은 8개월 안에 해당 사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임후성
창작산실의 경우 오히려 지원제도가 지원금을 주는 것으로 완료되는 것 같은 인상이 강했는데, 전문가들이 지켜보고 피드백을 한다든지, 극단의 철학이 지원사업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조율하는 과정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관객들과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사업 주체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같고요. 전반적인 예술적 마감 처리 장치가 보완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도 변화, 그 일률적 적용과 그로 인한 문제들


유영봉

최윤우

사업을 주관하는 쪽에서는 지원제도를 시행하면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개선해가기 위해 기존 사업의 구체적인 조건들을 변경하거나, 사업 자체를 완전히 다른 사업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데요. 제도 변경으로 인한 현장의 혼선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들 수 있을까요?


임후성
지난 4년간 계속 이 사업에 관계해오면서 체감했던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최초에는 이 사업이 창작 희곡에 상당히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은데, 독회나 쇼케이스에 참여하면서 심사 기준이 점점 달라져간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대본 공모가 아예 없어졌죠. 희곡이 아니라 공연 그 자체를 일종의 텍스트로 보는 것으로 시각이 옮겨 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극작가가 아니라 기획이나 연출가 중심으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고요. 물론 이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고 보지만, 한국 연극계 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었던 작가의 영역이 없어져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고강민

예전에는 상주단체 육성지원 지원금을 단체에게 줬는데 작년부터 극장에 주는 걸로 바뀌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단체가 공연을 만들어도 극장이 투자한 것처럼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극장 담당자들은 행정적으로 극장이 지원금을 받아서 단체에게 지급하는 것이니, 공동제작으로 극장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얘기하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단순히 타이틀이 문제 되는 게 아니라 극장이 공연권을 소유하게 되어버리거든요.


유영봉

사실 이건 단체 쪽에 지원금을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희 같은 경우 다행히 공연은 극단이 제작하는 거고 극장은 파트너십 정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행정적인 문제는 공연장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실은 예산을 집행하고 지출하는 행정 업무를 극장 쪽에서 처리하니까 극단 내부적으로는 편해진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단체 쪽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윤우

그런데 올해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신청 현황을 들어보니 중견 극단들이 대거 지원서를 접수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개별 작품 지원이 아닌 상주단체 지원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현재 우리 연극계의 극단들이 단순히 작품 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술지원제도의 방향성을 점검해봐야 하는 시점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고강민

상주단체를 신청하려는 극단들이 스스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은 공연장 활성화와 단체 활성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단체 입장에서는 관객개발이나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 공연을 만드는 것 이외에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사업들을 더 안고 갈 수밖에 없죠. 저는 이 과정에서 오히려 단체가 가진 고유의 창작 역량이 저하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거든요.


강량원

지원에 조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적입니다. 다년간 지원이 이상적인 이유도 수행해야 할 조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3년 동안 4 작품을 만들면 되죠. 물론 해마다 중간 심사를 받기는 하지만 다른 지원제도에 비해 조건이 없는 편이고, 그것이 예술가들에게 허락하는 자유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영봉

여러 단체와 극장들이 있고 그들 각자의 고유성이 있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한 특정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개선안을 모든 단위에 적용해버린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우리는 지금 이 상태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일방적으로 바뀐 규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장의 예술가들은 답답하죠.


강량원

저희가 다년간 지원을 받을 때 함께 선정된 단체가 극단 작은 신화인데, 극단 동과 작은 신화는 너무 다른 단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지워버린 채 사업에 맞게 저희의 활동을 바꾼다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년간 지원 자체가 각자의 영역을 허용해줬기 때문이죠.


유영봉

예를 들어 저희는 처음에 구민회관이라는 공간에 상주단체로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오아시스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이 있었죠. 그런데 구민회관에서 도움을 못 받은 단체들이 있었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정식 공연장 등록이 된 곳만 상주단체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 거예요. 무엇보다 저는 지원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연극 전반을 넓게 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장르의 구분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고, 관객을 만나는 방식도 다양해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죠. 단순히 몇몇 실패 사례들 때문에 사업 전체를 수정해가는 건 퇴행이 아닐까요.


최윤우

사실 현장에서는 민간 극장과 단체를 매칭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있었죠. 사업 조건을 공공 공연장으로 한정하게 된 배경에 영향을 끼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민간 극장이 연습실이나 사무실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거예요.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프로그램이 없어 텅 빈 채로 운영되는 공공 공연장들을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으로 채워보려는 의도도 있었을 거고요. 상주단체들이 해당 공연장을 활용하는 일수가 10여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모순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요.



예술지원제도가 자생적 예술가를 키울 수도 있다

고강민

최윤우 
이처럼 예술지원제도가 가진 이런저런 한계들을 따져본다면, 무작정 예술가들이 지원제도에 의존적이라고 얘기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순수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정당한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고, 그 과정에 예술 현장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겠지요. 

유영봉 
저는 한편으로 공모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모라는 게 널리 알려서 그중에 일부를 선정하겠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보면 현장에 어떤 예술가들이 있는지 모른다는 얘기이기도 하거든요. 

임후성 
공모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게 말하자면 추천 제도일 텐데요. 공모가 민주적인 것을 강조한다면 추천은 역사나 전통을 신뢰하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추천제의 경우는 끼리끼리 판을 독식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임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죠. 두 제도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강량원 
사업을 주관하는 쪽에서 지속성을 가지고 현장을 지켜보면서 그 목소리들을 제도에 반영해가야 하는데, 담당자들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 현장에 맞는 행정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는 거죠. 

유영봉 
기본적으로는 연극계를 조금 더 연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연극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누구를 예술가라고 지칭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죠. 사실 지역 공동체라는 코드도 기금을 만들어놓으니 현장에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나타난 경향이라고 보는데요. 저희는 벌써 5년째 상주단체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사업의 취지에 맞춰 작업을 하면서 쌓인 피로도가 분명히 있어요. 지원금을 안고 활동하는 게 불편하지만 자립하기에 힘든 구조이니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다른 단체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돌아가야 하는 게 맞고요. 오늘 이 자리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구체화되는 것들이 있는데, 다양한 목소리들을 나눌 수 있는 토론회 자리 같은 것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강량원 
두 가지 이야기를 좀 나누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현재의 지원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를 논의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지원제도 자체의 목적이나 취지를 논하는 거죠. 다만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는 사실이고요. 더불어 궁극적으로 그 지원이 개별 작품을 위한 제작비를 보조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혹은 예술 집단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후성 
예술지원제도의 시작과 끝에 예술가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연극 생태계라는 것도 그 과정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 같은데, 예술 혹은 예술가의 개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과 그 영역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시대적 당위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긴 이야기를 해나가는 출발로서 의미도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유영봉 
절실함이라는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저희는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시장을 품는 준비 단계로서 이 지원제도에 기대고 있거든요. 지원 사업에 응하는 것이 현재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향후 자립을 위한 절실함에서 시작된다는 거죠. 연극계 전체로 이걸 확대해보자면, 모든 창작자들에게 그 준비단계라는 것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원제도도 그만큼 디테일해져야 하는 거고요. 

고강민 
사실 지원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언제나 지적되어 오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분노, 다른 한편으로는 자책감 같은 것이 들어요. 모두들 알고 있지만 관성적으로 해오던 것들이 있죠. 제도가 바뀌면 불만이 있지만 그저 따라가기에 바빴고요. 그러니 이제 예술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현장의 요구들로부터 비롯된 합리적인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임후성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행되고 있는 좋은 것들이 없어지지 않게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제도를 바라보고 오래 준비하다가 그것이 없어졌다고 해서 실망하고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되면 곤란하니까요. 우리 안에서 불필요한 교란이 일어나지 않게 경계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최윤우 
두루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리가 현재의 지원제도 안에서 받고 있고, 받아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술가들과 예술 단체들의 활동성이 어떤 형태로 보장되고 장려되느냐에 따라 건강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요. 오늘 좋은 의견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슬기 공연 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 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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